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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랍 Jul 05. 2022

안전거리 유지하기

‘보이는 것보다 사물이 가까이 있음’ 그 애매함에 대하여

2012년 1월이었다.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학원에 등록하고 필기시험을 본 나는 처음으로 운전석에 앉아 자동차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석에 앉았다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 ‘나도 정말 운전자가 되는 건가?’ 싶은 마음이 공존하던 때 옆자리에 강사분이 들어와 자동차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건 룸미러고요, 이걸 통해 뒤를 봐야 하니까 잘 신경 써야 해요. 그리고 이건 도로 주행할 때 제일 중요한 사이드미러입니다. 저기 쓰인 문구를 항상 생각하며 거리를 조절해야 해요. 그래야 도로 주행하면서 사고가 안 납니다.”     


‘보이는 것보다 사물이 가까이 있음’, 사이드미러에 적힌 한 줄의 문장은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사이드미러에 보이는 물체와 멀어지라고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가까이 다가오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대응하라는 뜻인지 모호한 문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대체 저 문장이 뭘 어쩌라는 건가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아무 말 없이 강사님이 시키는 대로 충실히 수업을 따라갔고, 조금은 모호해 혼란스러웠던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는 말은 곧 일상에서 스쳐 간 수많은 단어의 조합 중 하나로 지나갔다.     


하지만 사이드미러에 적힌 문장을 처음 봤을 때 들었던 의문은 마음 한구석에 남았었다. 이 질문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나를 곤란하게 한 것은 운전면허를 따고 6년 뒤였다.     


2017년, 많은 꿈을 가지고 들어갔던 첫 직장에서 나는 운이 좋게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가의 매니지먼트 업무를 볼 수 있었다. 페스티벌 현장과 작은 공연장에서 지켜보며 행복해했던 아티스트와 생활을 같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민폐 덩어리가 됐다는 자책감에 1년 만인 2018년에 퇴사했다. 그렇지만 내가 담당했던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일은 계속 이어졌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아티스트의 지인도 가까운 팬도 아닌 모호한 존재가 됐다.     


개인번호가 폰에 저장됐지만, 절대 연락할 수 없는 상대. 공연장에서 마주해도 오히려 더 반갑게 다가가지 못하고 수줍게 인사와 선물만을 건네고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연을 보며 더 많이 울기 시작했던 것도 아마 이쯤이었다.      


“과연 나는 이 사람들에게 얼마만큼 다가가도 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내지 못했던 나에게 ‘보이는 것보다 사물이 가까이 있음’이라는 문구가 다시 찾아왔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을 혼란스러움도 함께 말이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도 이러다간 사고로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공포감은 이내 이전에 보였던 거리보다 더 멀리 떨어지도록 부추겼다. 너무 멀리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어도 먼저 멀어진 것은 나였기에 다가가는 일은 너무나 어려웠다.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면 바로 공포감이 찾아왔으니까.  

   

그 이후 나는 일터와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람들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 혼자 너무 가깝게 다가가면 관계의 사고가 일어날 수 있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상대와 나의 방향이 달라져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가 머릿속 한가운데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연애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소위 ‘밀당’을 전혀 못 하는 나에겐 경고 메시지를 머리에서 내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 가까워지면 시끄럽게 울리는 자동차의 후방주의 센서처럼 경고음이 들리는 듯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를 가지고 나는 다시 의사 선생님과 마주했다. 어쩌면 전에 들었던 ‘인간관계는 쌍방과실’이라는 말의 연장선이 이 생각과 맞닿아 있을 것이라는 예감과 함께.      


나의 장황한 설명을 듣던 선생님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운전할 때 도로에서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고, 00씨만 혼자 거리를 조절하나요? 00씨가 깜빡이를 넣고 차선을 바꾸거나 앞에 무슨 일이 생겨서 급정거해야 할 때 비상등을 켜면 다른 운전자들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나요?”     


그렇다. 결국 나 혼자 해결할 일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해결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선생님은 앞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놨다.     


“운전도 그렇지만 인간관계도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과 나의 상태를 보며 흐름을 맞춰가는 거예요. 일방적으로 내가 깜빡이를 넣은 뒤 상대를 보지 않고 차선을 바꾸려 한다면 사고가 나겠죠. 그러니까 우리는 사이드미러를 보면서 상대의 거리를 보고 내가 어떻게 해도 될지 생각하는 거고요. 인간관계에서도 상대와 나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건지, 나는 멀어져야 할 것인지 혹은 다가가도 괜찮은지 이런 판단은 결국 나와 상대를 관찰하며 함께 해야 하는 일이에요.”     


이른바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법에 대한 말들도 이어졌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얼마나 신호를 자주 보내느냐예요. 감으로만 모든 것은 할 수 없기에 조심스럽게 신호를 주고받으며 상대와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해야 해요. 그래야만 우리는 사고 없이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거예요.”     


선생님의 상담이 끝나고 운전도 인간관계도 모두 초보인 나는 “그게 이론은 알겠는데 실천이 안 돼요!”라는 혼잣말을 외쳤다. 하지만 사이드미러에서 처음 마주했던 ‘보이는 것보다 사물이 가까이 있음’이라는 문장의 주는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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