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랍 Jul 21. 2022

어떤 흔적

잊혀지지 않기 위해선 잊지 않아야 한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아침부터 평범한 인도 위에선 대여섯 명의 사람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작업의 목표는 오래된 공중전화부스의 철거였다. 지나칠 때마다 아직 공중전화 부스가 있다는 것에 신기해하곤 했지만, 정작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아마도 나처럼 신기해만 할 뿐 아무도 이용하지 않았기에 그 쓰임을 다하고 이제는 거리에서 물러서기 위한 공사를 진행 중인 것 같았다.     


다음날 같은 거리를 지나갈 때는 공중전화부스는 사라졌다. 다만 보도블록 위에 네모난 흔적만이 희미하게 남아 이 자리에 무언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걸 보며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느껴졌지만,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었기에 그냥 지나쳤다.     


그렇게 반년이 지났고, 모르는 사이에 보도블록은 모두 새것으로 바뀌어있었다. 봄에서 여름의 문턱의 길 위에는 어떠한 과거의 흔적도 없었다.      


그때 알았다. 길 위에서 사라진 공중전화부스의 자리를 보며 느꼈던 감정의 정체는 허무함과 불안감이었다. 어쩌면 나도 누구에게도 흔적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      


누군가 내게 ‘당신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지만, 상대는 말했다. “00씨는 혼자 되는 것을 참 많이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이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그 두려움의 정체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혼자 되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 남겨지는 것, 버려지는 것이 내게 가장 두려운 일이다.     


인간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동물이기도 한 모순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마음을 건네기도 하며 또 싸우기도 한다. 그 경험이 쌓이면 누군가와는 다툼 끝에 다른 길을 걷기도 하고, 어떤 이와는 좋은 기억이 쌓여 일상을 공유하거나 같은 길을 오래 같이 가곤 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그 누구도 나와 함께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지곤 한다. 혼자인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다른 이들에게 나는 쓸모가 없는 존재로 남았기에 버려졌다는 생각이 마음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리라.     


쓸모를 증명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타인에게 해줄 수 있는 선의 도움을 건네는 것과 내가 맡은 일을 문제 없이 해내는 것, 내가 상대의 기쁨이 되는 등의 일은 노력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지만, 결과를 알 수 없기에 늘 사람과의 관계에서 불안함의 씨앗은 마음 한구석에 자라고 있다.      


불안함의 씨앗은 나중에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자양분 삼아 마음 안에서 줄기를 키우고 꽃을 피운다. 평소와는 조금은 다른 메시지 답장 혹은 조금은 톤이 다른 목소리를 마주하면 조금씩 불안감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한다. 단순히 상대가 목소리가 잠겼다거나, 한 손을 쓸 수 없어 메시지를 간결하게 보낸 것일 수 있지만, 순간의 온도변화를 틈타 불안의 씨앗은 기어이 꽃을 피워 그 향기로 온 마음을 뒤덮는다.    

 

그 결과 나는 다급해진다. 상대에게 내가 잘못한 것이 있었는지 나의 어떤 행동이 상대의 변화를 만든 원인인지 모든 기억을 꺼내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하지만 나는 타인이기에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한다.  

    

모든 내부 조사를 마치고 결국 나는 거리에서 사라진 공중전화부스처럼 쓰임을 다했기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다시 나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또 무너진다.   

   

그렇게 무너진 어느 날에는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 믿는 이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보려 한다. 나는 지금 너무 많은 두려움이 찾아와 힘들고, 곧 사라져버릴 공중전화부스가 된 것 같으며 반년이면 그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잊혀질 그 무언가로 사람들에게서 버려질 것 같다는 내용을 조심스레 적는다.     

 

하지만 그 메시지가 전송되는 일은 없다. 그 대신 ‘비가 오려나 봅니다. 늘 조심하시길’이라는 투의 가벼운 안부를 묻는 메시지가 장문의 글의 자리를 대신한다. 당신의 일상도 결국 나만큼 무거울 것이기에 거기에 굳이 나의 무게를 더하고 싶지 않아 짧은 메시지만 보낸다.      


항상 감사하게도 이 과정에서 내게 손을 내밀어주는 소중한 이들이 있다. 짧은 순간이지만 이들은 나의 곁에 있어줄 것이라 말하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라고 말해준다. 이렇게 소중한 이들이 남긴 말들은 쌓이고 쌓여 불안의 씨앗을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기억이 된다. 


이 과정들을 반복하다 보면 어쩌면 사람은 기억을 꺼내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닐지 생각한다. 

     

기억을 꺼내먹고 사는 것이 사람이라면 나쁜 기억을 털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했던 것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는 일도 중요해진다. 행복했던 기억은 좋은 음식처럼 나의 일상을 건강하게 해줄 테니 말이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에서 사라지는 딩동을 기억하는 건 결국 조이(기쁨)였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일상 속 마주하는 기쁨은 우리가 잃어버린 수많은 행복의 흔적의 결과물임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오늘도 나는 슬픔과 기쁨의 흔적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긴 글을 썼다. 


이전 06화 안전거리 유지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