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에는 두 주인공이 이별을 연습하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주인공인 차우는 여자주인공 리첸에게 모두를 위한 이별 연습을 제안한다. 차우는 “다시는 전화하지 않겠소.”라는 말과 함께 마지막으로 리첸의 손을 잡고 뒤돌아선다. 리첸은 돌아선 차우의 모습을 보고 슬피 울고, 차우는 다시 돌아와 연습인데 이렇게 슬퍼하면 어떡하냐며 다독인다.
이 장면을 처음 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심야 라디오에서였다. 라디오에서 명작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에서 화양연화의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그중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이별 연습 장면이 언급됐다. 소리로만 접한 이별 연습 장면은 슬펐지만, 이들이 어떤 눈빛을 주고받았을지 모르기에 조금은 막연했다.
이후 학교 도서관에서 힘들게 찾은 DVD로 여러 번 영화를 돌려보았다. 아마도 이별 연습에 담긴 감정을 조금 더 이해해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별을 연습하는 두 사람의 눈에는 아직 감정이 남았지만, 놓인 상황 때문에 관계의 끝이 오고 있음을 인정할 수 없어도 받아들여야 하기에 느껴야 하는 후회와 두려움, 안타까움이 모두 있었다.
살면서 마주한 수많은 사람, 함께 울고 웃기도 했고, 진심으로 마음을 전해주었던 사람과의 관계가 갑자기 끝나면 나는 화양연화의 장면을 떠올린다. “멀어진 이와의 이별 연습을 했더라면 혼란스러운 마음이 덜했을까”라는 상상을 하며 이미 다시는 닿을 수 없는 사이가 된 사람을 마음속으로만 불러내 “다시는 전화하지 않겠소.”라는 말을 전해보곤 한다.
관계의 끝에 허전한 마음을 부여잡고 관계의 끝이 보인다면 다음에는 이별 연습을 해보겠다고 다짐하지만, 또다시 실패한다. 왜냐하면 관계 속에 있는 나는 내 앞에 혹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평생 내 곁에 있을 것임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의 잡음이 있더라도 이는 금방 사라질 것이라 애써 무시한다.
그 결과 교통사고처럼 관계의 끝은 다시 찾아온다. 이별을 맞이한 순간은 덤덤하지만, 다음날, 다음 주, 다음 달이 찾아오면 남아있는 떠난 이의 흔적이 다시 마음을 뒤흔든다. ‘떠나보낸 사람을 한 번 더 잡았더라면, 내가 그 순간에 더 괜찮은 사람이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괴로워지기도 한다.
그러다 예고 없이 찾아온 이별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차우처럼 덤덤히 “전화하지 않겠소.”라고 말하며 뒤돌아설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본다. 아니면 끝이 날 것임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그 순간을 늘려보려 최후의 발악을 하지 않았을지 지금의 내게 물어본다.
질문의 답은 항상 발악하는 쪽이었다. 거짓말처럼 어제까지 웃던 사람과 한순간에 관계가 끝날 것이라면, 그 이유라도 물어보고 싶고, 내가 그 순간에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당신이 나를 떠나지 않았을 것인지 물어보며 매달렸을 것이다. 마치 차우의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아내던 리첸처럼.
다시 화양연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별 연습을 하던 두 사람은 오히려 그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어지지 못하고, 이들도 연습한 것과는 달리 조금은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하고 다시는 스치지 아니한다.
어쩌면 왕가위 감독은 연습한다고 이별은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지 상상해본다. 영원할 듯 붙어 다니던 사람들이 다시는 마주하지 않기 직전 마지막 순간은 생각보다 평범하고 무난한 순간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헤어지는 순간을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이별의 순간이 지나가고 후회하지 않기 위한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밥은 먹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걱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가 한 번이라도 더 같이 밥을 먹고, 아프지 않나 확인하는 것 말이다.
상대가 얼마나 괜찮고 가치 있는 사람인지,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말해주는 일을 미리미리 성실히 해둔다면 만남의 속성인 헤어짐이 찾아와도 조금은 덜 후회하지 않을까.
이별에 대해 생각하다 뜬금없이, 내 곁에서 나를 참아주고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막연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말속에 감사의 마음과 나름의 이별 연습에서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을 함께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