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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랍 Jul 12. 2022

기다림은 실망의 다른 얼굴

막연한 기다림은 뒤에 따라올 실망감의 다른 얼굴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막연한 기다림 속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부조리극이다. 극 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도’라는 사람을 끝없이 기다리지만, 그 사람은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고 그저 막연히 올 것이라는 말을 믿고 한 자리에 멈춰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들은 기다리는 ‘고도’가 정확히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막연히 기다림을 이어간다. 그렇게 그들은 극의 마지막까지 고도를 만나지 못하고 한 자리에 머무른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 읽었을 때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왜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것을 기다리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들의 기다림의 이유는 어쩌면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말연시가 되면 사람들은 많은 기대를 담곤 한다. 다가올 새해는 더 나은 하루가 될 것이고, 새롭게 세운 목표가 이뤄지리라는 바람을 담아 기대하는 바를 적어놓곤 한다. 새 학기에도 그렇다. 야심 차게 새 학기 목표를 세우고 이에 닿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이렇게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닿으면 무언가 나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 막연히 나아간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게 극적인 연출을 주인공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명확히 정해두었다고 생각했던 어느 지점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우리의 삶은 이전과 똑같다. 작은 요소들이 일부 바뀌었을 수 있지만, 결국 우리가 맞이하는 것은 똑같은 아침과 점심과 저녁이다.      


이는 우리의 삶이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와 같은 결말을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도 막연히 ‘고도’를 기다리는 극 속의 인물이 되곤 한다.     


기다림은 사람을 기대하게 만들고, 기대하는 사람은 결국 실망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다리며 상상한 것은 언제나 현실에서 다가오는 그 무엇보다 크고 화려하고 극적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생일공포증’에 빠진 적이 있다. 흔히들 생일은 1년 중 가장 축복받고 축하받아야 하는 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축복과 축하를 기대하는 일이 너무나 두려웠었다. 기대하면 실망할 것이 뻔하고, 그 속에서 하염없이 작아진 나를 마주하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생일 전날이면 모든 SNS를 비활성화하고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날인 척 연기하곤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여전히 나는 비활성화된 그 무엇들 사이에서 내 특별한 날을 알아주는 이가 있기를 여전히 기대했고, 또 실망하고 혼자 상처받았다.      


생일공포증에서 벗어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기대하는 일을 멈추기 시작하면서였다. 기대하지 않고, 먼저 사람들과 약속을 잡거나 혼자만의 계획을 세우며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나를 괴롭히던 생일공포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던 것 같다. 막연한 기다림은 나중에 찾아올 더 큰 실망의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어느 순간 나는 막연한 기대감을 마음에서 내려놓기 시작했다. 어쩌면 어렸을 적 마주한 어른들의 무표정은 그들도 이 과정을 거치며 기대감을 마음에서 내려놓은 과정을 거쳐온 흔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찾아왔다.     


이제는 생일이나 특별한 날을 바라보는 막연한 기대감은 마음에서 내려놓았지만, 아직 내려놓지 못한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은 영원히 곁에 남아줄 것이라는 기대, 나의 아픔을 조금은 이해해주고 먼저 손 내밀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내가 상대에게 전한 마음의 무게만큼 나에게도 같은 무게의 마음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 등 사람에게 향하는 기대감은 그대로 남아있다.     


하지만 나는 너가 아니고, 너는 내가 아니기에 내 막연한 기대는 결국 상대에 대한 실망으로 변하고 또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로 이어진다. 그러다 보면 나는 조바심을 느낀다. 어쩌면 나도 상대에게 실망만을 안겨주는 사람이 아닐지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구체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아직은 어렵다. 사람에게 정확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왜 원하는지도 명확하지 않기에 나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인물이 된다.    

  

부디 내가 누군가에게 막연한 ‘고도’가 아니길 바란다. 달려가고 있지만, 실망을 안겨주는 그 무엇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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