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했다가 아닌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물어오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의 마음 상태에 따라 최고로 꼽는 영화는 매번 바뀌곤 한다. 하지만 어떤 영화가 가장 당신을 많이 울렸냐고 묻는다면 언제나 한 영화를 말하곤 한다. 그 영화는 바로 애니메이션 영화 ‘업’이다.
영화 ‘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평생을 함께한 사랑을 떠나보낸 한 할아버지가 추억이 담긴 집을 잃을 수 없어 풍선을 매달아 한 보이스카웃 소년과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부분은 바로 첫 5분이다. 어떠한 대사도 없지만, 사랑하는 한 연인의 삶을 큰 울림을 주며 보여준다. 그리고 이 5분은 영화의 남은 시간 동안 왜 할아버지가 추억이 묻은 집을 버릴 수 없는지를 충분히 설명한다.
나는 이 영화를 정말 사랑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첫 5분부터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약 두 시간 동안 대사 하나하나에 흔들리며 눈물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리 물을 마셔두고, 눈이 퉁퉁 부어도 괜찮도록 일정 정리를 해둬야 한다.
‘업’을 보며 끝없이 울었던 이유는 이 영화가 정확히 나의 약점을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을 힘들어하고, 추억이 담긴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내용의 영화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결국 사랑했던 것과 언젠가는 이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마주할 때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사람의 얼굴이 스쳐 간다, 사랑했던 사람들의 얼굴과 하루가 멀다고 함께하던 이들, 그리고 언제나 그리운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사라진다. 그 중에선 이미 너무나 멀어진 이들이 있고, 아예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제는 얼굴마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사람들도 있다.
추억의 상자를 꺼내어 머릿속에 남겨진 흔적들을 마주하면 참 많이 웃었고, 울었던 기억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중에서 잡아보려 끝없이 노력했지만, 결국엔 놓쳐버린 헬륨 풍선 같은 관계들을 바라보며 무력함을 느낀다. 과연 내가 놓쳐버린 이들에게 나는 어떻게 남았을지, 흔적이라도 남긴 했는지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기에 내가 놓친 그들에게 끝없이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곤 한다.
기억의 상자를 마주할 때마다 지금의 사람들과의 관계도 끝없이 돌아보게 된다. 나는 과연 저 사람과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을지, 내가 저 사람의 악몽이 되는 것은 아닐지에 대한 두려움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그렇게 조바심에 휘둘리다 보면 결국 전하고 싶던 말을 마지막까지 하지 못하는 일도 부지기수로 벌어진다.
어쩌면 그렇기에 정말 아끼는 사람에게는 흔한 말인 ‘밥 한번 먹어요’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곤 한다. 지켜지지 않을 공수표를 건네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고, 그 약속을 지키며 소중한 사람과 언젠가 돌아볼 순간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 쉬운 인사말조차 건네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영원하지 않다. 언제라도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사람은 다른 환경 혹은 다른 세계로 날아가곤 한다. 나 또한 일상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섬에 도달하니까. 엉뚱한 섬에 도착한 나는 날아간 이에게 어떻게 연락해야 할지 고민하다 다시 또 급류에 휩쓸리는 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과 이별하게 된다.
영화 ‘업’은 시간의 파도에 휩쓸리는 내게 하나의 답을 알려준다. 영화 후반부에선 추억 그 자체인 집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던 할아버지는 결국 위기에 빠진 소년을 구하기 위해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내려놓고, 집과도 이별한다. 그는 새로운 모험을 위해 지금까지 해왔던 모험의 흔적들과 이별하는 것이다. 그렇게 과감하게 옛 추억을 내려놓은 그는 새로운 가족을 꾸리고, 과거가 아닌 현재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영화는 말한다. 과거의 흔적이 아닌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을 바라보고 지키라고. 그래야만 당신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 일상을 살아갈 수 있으니 과거를 가끔은 놓아주라고 당부한다.
멀어진, 멀어지고 있는 이들의 연락처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살펴보곤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너무나도 뜬금없이 ‘잘 지내?’라고 묻고 싶은 마음을 깊이 묻는다. 그리고 최근 연락 목록을 다시 바라보며 나의 일상을 함께하는 이들에게 조금은 무뚝뚝해 보이는 ‘밥 먹었어?’라는 말을 전해본다.
언젠가 ‘업’을 봐도 울지 않는 날이 오면 그때는 기억 속 사람들에게 미안했다는 말이 아닌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