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보일 듯이 말 듯이 핀 꽃
그 후, 주말 아침에 큰애와 세 식구가 산책을 나갔다. 아파트 붉은 담장 길을 걸으며,
"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한적하고 , 산책로도 잘 되어 있어서 건강관리에 도움 되고, 적당히 문화혜택도 누릴 수 있으니~ 무엇보다 큰 병원도 가까우니~
흐유~ "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다니. 곧 후회가 되었다. "엄마, 기도해 보세요! 엄마가 기도하면 주셨잖아요. 지금껏 우리 그렇게 살았잖아요. " 큰애의 말에 아연실색했다.
"정답이네. 하지만 너무 센 것 구하는 거 아냐? 너무 과분한 것은 아닌가? 염체 없이~"
스물여섯, 직장인 아들의 담담한 믿음 앞에 부끄럽기도 해서 간절히 기도했다. 절실한 만큼. 아들의 원룸에 셋이 지내는 것을 보고 누가 이 길(목회자)을 가겠다고 선뜻 나서겠는가.
당시 이곳은 전국에서 부동산 오름세가
1위였고, 주변 도시들도 모두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 있었다. 대부분 계약만 하고 입주는 2~3년까지 밀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친정과 시가와 지인이 사는 서울은 엄두도 못 내고, 생면부지 타향이지만 아들의 직장이 있고, 마지막 임지가 멀지 않은 이 중. 소 도시가 마음에 들었다. 먼저 동생은 비용 따지지 말고 살만한 곳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참으로 양심적인 부동산 중개인을 만나게 하셨다. 그를 감동시켜서 매물이 안 나오면 자신의 전세물을 빼서 우리가 살도록 하겠다는 약속까지 하고 밤잠을 설쳐가며 맘을 써서 신자의 집을 (여유분의 집인데, 남편의 중병 치료비 필요) 강권해서 , 피차 손해가 안 되는 매매가에 내놓게 해서 이사가 가능하게 되었다. 칠월부터 찾아서 시월에 입주하게 된 기적이 일어났다. 방문객마다 맨 위층이라서 천장 고도 높고 전망도 좋아서 넓어 보인다고 실평수를 궁금해하는, 산책로가 있고 조용한 수변의 이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하셨다.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께서)
나는 첫 해에는 시간 날 때 작은 원탁에 앉아서 수변을 내려다보면서 차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책도 읽을 양으로 베란다를 초록초록한 힐링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대형 화분에 토란을 심었는데, 자주 준 물을 먹고 웃자라는 바람에 베란다의 초록한 분위기에 한몫을 단단히 했다. 그런데 줄기는 세 번이나 베서 데쳐서 갈무리를 하는 반면, 가을 수확 때 보니 원뿌리 옆에 정말 콩알만큼 한 아기토란이 조랑조랑 달려 있을 뿐이었다.
그 후 어느 날, TV 방송에서 전에 골목에서 본 그 작물이 울금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듬해는, 울금종자를 아들이 온라인으로 구매를 해줘서 베란다 텃밭이란 한계에 맞춰 대형 화분 한 개에 다섯 톨만 심고 나머지 열댓 톨은 텃밭이 넓은 지인께 드렸다.
그래서 울금을 심고 기대 반 우려 반 하면서 설명서의 지시대로 잘 심고 '혹시 잘못되었나? 왜 싹이 안 나오지?' 하고 의아할 때쯤, 그러니까 심은지 두 달이 지나서야 외떡잎식물이 뾰족 아기 손가락 내밀듯 나오고, 그때부터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서 키다리가 된 것이었다. 베란다 문을 열고 나의 힐링공간을 오픈할랴치면 방문객마다 이 울금의 기세에 놀라곤 하였다. 그렇게 두어 달을 자라더니 줄기사이에서 꽃이 피었다. 대개 기대이상으로 예쁜 꽃은 선인장류나 혹은 란류, 심산의 야생화 등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꽃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줄기사이에서 하얀 관 같은 꽃, 밑에 계란의 노른자위 색깔의 앙증맞은 쪼꼬미가 여럿 달려있어서 관상의 맛을 더했다.
올해도 이 꽃을 억센 줄기 사이에서 찾아내면서 문득 떠오른 단상이 있어서 적어보려고 앞의 긴 글을 썼다.
"조물주는 왜 너처럼 예쁜 꽃을 줄기 사이에 숨겨 두셨을까? 가만, 그러고 보니, 깊은 산속에도 이름 모를 어여쁜 야생화를 고이 감싸두셨지? 간절히 찾는 자에게 더 큰 기쁨과 소중한 가치로 '환희'라는 보상을 하시는 것일까? "
* 글이 길어집니다. 세 번째로 이어가겠습니다.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