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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희 Sep 22. 2023

강아지풀

   약속은 지켜야지

올여름, 무던히도 폭우가 심해선지 산책로변에 무수히 피었던 개망초는 보이지 않고, 강이지 풀이 수북하다.  초여름, 아기 솜털같이 보송보송하던 연록의 강아지풀이 어느새 연한 갈색으로 스티치를 하고 있다. 한 해살이 들풀이라서 세월이 빠르기도 하다.

강아지풀을 보고 그냥 지나갈 리가 없다. 카메라 셔터를 찰깍 눌러 폰 앨범에 저장했다.

강아지풀이 또 한 장  우리 아들들과의 가족사를 이어간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다. 하루종일 안팎으로 바빠서 아이들과 저녁 늦게서야  마주하게 되었다.

 " 얘들아, 숙제는 다했니? " "넵"

" 시간표대로  책가방은 챙겼고? " " 네에~"  " 준비물은? " " 저어~그게, 그러니까 엄마~"  둘째가 책가방에서 부스럭거리더니 알림장을 내밀었다. 알림장엔 준비물이 강아지풀이라고 되어 있었다. 과학 준비물이었다. " 강아지풀? " ,

" 엄마 그게 뭐예요? "  " 아, 뜰에 많이 났던 풀인데 , 그 왜 있잖아, 꼭지 부분만 떼서 보면 털벌레 같고, 손가락 끝으로 건드리면 벌레가 기어가듯 앞으로 움직이고, 뽑아 들고 살갗을 간지럽히면  으아~  소스라치는… "   " 모르겠는데요. "  "그런데, 그게 있을까?  지금 언 땅이 채 풀리지 않았는데~ 강아지풀이 나올 때가 아닌데~ ,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 감사기도 하고 자자. 낼 일찍 마른 것이라도 있는가 찾아보자꾸나. "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율곡 이이의 < 자경문 >에 관해 들었다. 자경문은 율곡 선생이 어머니 신사임당을 여읜 후 상심하여 방황하다가, 일생동안 이뤄야 할 자신의 모습을 정하고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  적은 글로  '스스로 경계하여 조심하는 글'이란 뜻이다.  그의 신념을 열한 가지 원칙으로 적은 글인데 구체적인 목표와 생활지침에 맘이 끌려서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중 열 번째  원칙은 지금도 실천되고 있다. 덕분에 불면증을 모르고 살고, 엎드려서 책을 보는 일도 없고, 헛된 망상에 시간을 낭비하며 자리에서 뒹구는 일도 없다.  

자경문의 열 번째 원칙은 " 잘 때와 병이 들었때를 제외하곤 잠자리에 눕지 않는다"이다.


나는 우리 아들들에게도 딱 한 가지라도 , 그들에게 유익될 행동지침이 있었으면 싶었다.  남편은 가훈을 " 경천애인(敬天愛人)"으로  정했다.

그리고 우리는 "알림장"을  도구로 "약속"을  지키는 습관을 가졌으면 했다. 하나님, 학교,  선생님, 친구, 부모,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시간, 준비물, 과제, 가정통신, 학부모참여, 등등을 통해서.

* 앨런 코엔은 "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신뢰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가치가 있다. "

 링컨은 " 약속을 지키는 것은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의 특징이다. "라고 했다.

* 메이아 앤젤루는 "약속은 사회적 관계에서의 상호존경과 책임을 보여준다."라고 하고, 카네기는 "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남과의 약속도 쉽게 저버릴 수 있다."

나아가서 나폴레옹은 약속의 중요성을 중시한 나머지 " 약속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까지 했다.

수많은 약속 중에서 시간 약속만  생각해 보더라도 밥을 거르더라도 늦지 말고, 미리 가고, 지키지 못할 이유가 생기면  미리 알리고, 부득이 시간 내에 못 갈 때에도 반드시 전화로  사죄하고 사유를 전해서 상대방의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고, 시간약속을 잘 지켰더라도 당연한 것이니 , 못 지킨 사람을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헤아림은 돌아오기 때문이다.


다음날 땅거미가 걷히자 뜰 이곳저곳을  살폈다. 겨울 동안  마른 잡초 속에 강아지풀이 혹시 있을까 하고 찾아 나선 것이었다. 알림장을 통한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때가 때인지라, 풀숲사이엔  마른 강아지풀은 없었다.  그 많던 강아지풀이 어쩌면 하나도 없는지. 아들은 왜 하필 이 계절에 준비물이 강아지 풀이냐고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어  아이들은 등교를 했다. 아이들을 학교로 보냈지만 우리 부부는 분명 선생님께서 학습에 필요하니까 준비하라고 하셨을 텐데, 총알도 없이 전쟁터에 나간 병사처럼, 행여 준비물 없이 학습의욕도 상실한 채, 흥미 없이 시간을 때우고 있지는  않는지…

 갑자기 강아지풀이 있을 만한 곳이 떠올라서 이십여 분을 차로 달려 시내로 들어갔다. 꽃집이었다. 평소 교회 꽃꽂이 때문에 단골이 된 가게로 절친한 사이였다. 자초지종을 듣고 마른 꽃꽂이 소재 중에서 강아지풀을 두 줄기 뽑아 주었다. 어찌 갔는지 모르게 재빠르게 학교에 도착했다. 아들의 교실 창너머로 살피는 중,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께 준비물을 구해왔다고 드렸더니, 순간, 선생님은  ' 굳이 그걸… ' 하는 눈치셨다.

" …  "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강아지풀만 보면 잊지 않고 그때 얘기를  한다.  왜 부모가 그렇게 알림장에 집중했는지를 알고 있다.  서로가 약속한 일, 그 아무리 사소한 약속이라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약속은 손가락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란다. * 크레이그 그로쉘 목사는 " 약속은 신뢰를 키우고 신뢰는 관계를 강화한다 "라고 했다. 하나님의 언약

(God's Covenant) 은 성경(구약, 신약)에서 알려주는데, 신뢰를 바탕으로 신적인 힘을 갖고 있다. " 약속 "이란 이 한 단어가 얼마나 넓고 깊은 가치와 힘, 관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가히 헤아릴 수 없다.


* 메이아 에인절로(Maya Angelou) :

      1928.4.4~2014.5.28  

       미국의 시인, 작가, 배우

*앨런 코엔 :

     성공학 강사, 연설가, 칼럼니스트

* 크레이그 그로쉘 목사 :

       미국 라이트교회 (다섯 번째 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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