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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희 Jun 26. 2024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5)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리에게

1994년 10월 초 오후였다. 대전 병원에 입원한 교인들의 병문안을 가게 되었다. 먼저, 대학병원에 들러서 위로하고 빠른 쾌유를 위해 기도했다.  병원을 나오며 산부인과 진료를 받아보고 싶었지만 다른 병원 위문도 남아있고, 병원 퇴근시간도 가까워서 아쉬운 발걸음을 다음 방문해야 할 혜화한방병원으로 재촉했다. 연세 든 권사님께서 뇌졸중으로 입원해 계셨는데 빠른 처치와 치료로 많은 차도를 보이셔서 퇴원을 앞두셨다. 감사기도와 격려를 드리고 병문안을 마치니 오후 여섯 시가 넘었다. 병원을 나와  천변도로를 얼마 지나지 않아 우회전을 하자 빨간 벽돌의 산부인과 전문병원의 간판이 기다렸다는 듯 내게 다가왔다. "여보! 저기 빨간 건물, 산부인과 병원 있네요! 한 번 가 볼까요? "


남편은  일과에 피곤한 모양이었다. 아니, 산부인과에 대한 인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차에 남아 기다리겠다고 했다.  나는 미지의 세계를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어색하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앳된 간호사가 내원이유를 묻고 친절히 소변검사를 안내했다.  검사를 마치고 기다리는 잠깐동안에 이곳저곳에 게시된 담당의사의 프로필을 볼 수 있었다.  불임전문의사며, 독일에서 학위를  받았단다. 남자분이었고, 나중에 간호사를 통해 안 정보는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침례교 집사이셨다. 드디어 결과를 들으라고 원장실로 안내되었다. 결혼은 언제 했으며 , 임신이력에 관해 묻더니, "임신입니다." 했다. " … " 임신이라고요?  정말이세요? 순간, 웃을까 울을까 어찌할 줄 몰랐다. 간절히 쉬지 않고 기도했으면서도  베드로의 출옥을 믿지 못했던 교회와 소녀 로데의 바이블 스토리처럼.( 신약성경 사도행전 12:1-19 )


나는 넋이 반이나 나가서, 그래도 남편과 같이 들어야 현실확인이 될 것 같았는지 차에 있는 남편과 다시 한번 같이 듣겠노라고 했다. 아니, 가슴이 숨도 쉴 수 없이 벅차올라서 남편께 설명할 수 없기도 했다. 어리둥절한 남편이 불려 오자,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게 자세히 다시 설명해 주셨다. 임신을 축하한다고 하고, 하마터면 흘려버릴 뻔했다면서 잘 안정될 수 있도록 등산 같은 과한 활동은 삼가야 한다고 했다. 한 달 여 간은 누워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드라마틱한 임신 소식이잖은 가!  그 당시, 이는 내게 찾아온 기적이었고,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로부터 보름 남짓은 병원 정기검사받으러 가는 일과 집안에서의 일상,  예배 외엔 절대 안정을 하도록 했다. 연로하신 친정어머님은 "네가 '엄마' 소리 못 듣는가 싶어서 애가 탔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다.  그날로부터 딸의 살림을 맡아 주셨다. 대구 시가의 어머님을 비롯한 어른들도 한결같이 축하하고 , 기뻐하셨다. 기다리며 기도한 보람이 있다시며. 다행히 검사결과 태중의 아기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입덧도 없어  전과 별다름이 없었다. 우리 부부는 말할 것도 없고, 양가 모두 , 따뜻한 소망으로 훈훈함이 가득했다. 혼인 때부터 숨겨져 깔려있던 관계의 경직이 풀어지고 녹아져서 이제야 한 집안이 된 듯하였다. 오가는 말이 온통 덕담이고 축복이었다. 다만 사과가 먹고 싶은 것이 달랐을까? 마침 사과가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어서 친정아버지는 서울서 남쪽을 오르내리며  맛있다는 산지의 명품 사과를 실어다 주셨다. 자그마치 두세 궤짝의 사과를 먹어치웠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대단한(?) 일을  내가 했다고? , 또한 남도 거의 다하는 그 임신을 십 년이나 늦게 하면서 , 나만 하는 척 여왕처럼 섬겨주심에 취해 있었던가! "


대의명분에 일생을 보내신 아버지로부터 많은 자식들 중 남달리 사랑을 많이 받았음이 이 순간  떠오르며, 당연히 받았던 것이  가슴이 아파서  못다 한 감사를 수 없이 되뇐다.

 "아버지! 감사해요."


 매월 정기 검진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우리 케이스를 케어 겸 연구대상으로 삼고 세심히 살펴 주었다. 비용도 할 수 있는 한 절감해 주었다는 것을 둘째 임신 때 진료비를 보고 알았다. 우리는 성별이 궁금했으나 감히 묻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얼마 만에 주신 자녀인데 감히 천기를 넘나들려고 해! 이런 오만 방자한 …" 하실 것 같아서.

더러는 묻지 않아도 넌지시 알려 주기도 한다던데 나의 의사 선생님은  끝내 함구하셨다. 아기용품을 준비면서  분홍컬러? 아님 블루?  망설이게 되었는데  노 집사님의 태몽과 시어머님의 손금해석을 바탕으로 모두 블루로 준비했다.


그즈음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나는 당시 버스기사석 정면 등에 걸려있던 작은 사진 속의 기도하는 소년 사무엘 ("오늘도 무사히")와 흡사한 우리 주일학교 어린 소년들이 식사기도하는 모습의 사진을 침대맡에 걸어두고 닮은 아들이 태어나길 소망했다. 또한  성악가 조수미의 자장가와 태교음악 CD를 들었다. 요즘은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당시엔 극히 드물고 새로웠다. 남편은 들고 날 때마다 손을 얹고 축복했고. 별 탈 없이 정기진료를 받았는데, 유난히 배가 부르니까 의사 선생님은 " 쌍둥이인가? " 진담인 듯 농담도 하셨다.

막바지에 임신부종이 나타났다. 임신 초기부터 자연분만 하고 싶었는데 의료법대로 35세 이상 노산이라서 제왕절개를 권유받았다. 임신 부종이 있고 보니 더 이상 선택의 여지도 없어서 출산 날짜를 잡았다. 의사가 허락한 기간 내에  내가 원하는  시간을 예약할 수 있다는 것이 자연분만하고 달랐다. 주일을 지키고 월요일 출산, 토요일 퇴원하길 원했다. 출발하기 전, 집안을 찬찬히 둘러봤다. 산모랑 아기가 회복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 만족스러웠다. 남편은 손을  잡고 굳이 예배당으로 가더니 머리 위에 손을 얻고 축복의 기도를 드렸다. 더없이 성스럽게.


이렇게  첫아이를 출산했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한 잘 생긴  아들이었다. 그러나 손 대면 사라질듯한  아주 조그만 아기였다. 2.5kg!  

유난히도 부른 엄마배에서 너무 작은 아기가 나왔다. 게다가 수술받은 엄마의 초유를 먹일 수 없고 , 유축기로 짜서 버리자니  맘도 몸도 아팠다. 아이도 젖을 빨 수 없어서 종합병원으로 전원을 해야 했다. 인큐베이터 관리를 받아야 했다.

아기는  종합병원에, 산모는  산부인과의원에 따로 입원을 해야 했을 때 아기엄마는  맘과 몸이 아파서  눈물로 지냈다. 그렇게 울면 시력이 나빠진다는 주위의 걱정도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10년 만에 주신 귀한 생명을 소홀하게 여긴 죄책감에 후회하고, 또 반성했다. 남편과 집안 어른들이 아기 보러 종합병원에 가신 동안 산모는 유축기로 퉁퉁 부은 젖을 짜내며  아기가 보고 싶어 울고, 미안하고 애처로워서 가슴 아파했다. 그때, 벽에 걸렸던 -가시면류관을 쓰셔서 피범벅으로 일그러진 처절한 예수님의 모습- 성화에서 울부짖듯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 네가 네 아기를 사랑해서 우는구나. 가슴 아파하는구나. 나도 내 양무리를 사랑하여 이와 같이 피를 흘렸단다. 네 교회, 교우들을 네 아기와 같이 사랑하길 원한다."" 아! 주님~~"

지금도 선명한 그 음성!

산부인과 회복실 벽에 그런 성화가  걸려있었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기억은 생생하니 실로 간절하고, 신비스러운 현현임에 틀림없다. 그 후로 목회현장에서 그 체험을 묵상하며  자신을 가다듬고 간구하며 몸부림칠 때가 자주 있었다. 사랑을 부어주시라고.

 

산모는   입원 6일  만에 귀가했다. 아기를 병원 인큐베이터에 남겨둔 채. 여름 출산이라 해도 바람맞으면 안 좋다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속바지에 원피스 차림으로 새벽부터 예배당살이를 했다. 자신만 편히 산후조리하는 것이 미안하고 뻔뻔스럽다는 생각에.

주님의 자비와 용서를 바라고 아기의 건강을 위해서 빌고 또 간구했다.

입원 보름이 지나고 아기도 건강히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아기는 엄마젖을 먹으며 초보지만 애달프도록 지극한 부모의 정성과 주위 분들의 축복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갔다. 11년 간의 우여곡절 끝에  배 씨 가문의 맏이로 자리매김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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