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 두 발 다 들었다.(7)

남편의 마지막 길

by 김승희

남편은 마지막 목회지에서 26년을 사역했다. 명절 휴가조차 제대로 가지 않았고, 혹여 외출을 하더라도 눈길·밤길을 달려 강단을 지켰다. 교회의 진입로를 정비하고, 교회에 밭이 물린 주민에게 땅을 사며, 무허가 예배당을 정식 허가를 받고, 다시 온전한 예배당을 건축했다. 말씀을 전하는 손길 외에, 그의 손에는 늘 작은 손수레가 있었다. 교회 뜰의 돌, 유리조각, 쇠붙이, 나뭇가지, 휴지와 빈 병까지 치우며, 교회를 몸과 마음으로 지켰다.


그러나 헌신의 대가는 혹독했다. 병으로 안식년을 맞이했고, 결국 강단에 다시 서지 못한 채 사임했다. 치매가 찾아왔고,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며 기억을 잃어갔다. 뇌출혈로 쓰러진 뒤에는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야 했다. 수술과 회복을 반복하며, 병원과 요양병원을 오가던 시간은 길고도 고통스러웠다. 나는 회복을 믿고, 간절히 기도했다. 청력은 살아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의 귀에 대고 힘주어 말했다. " 여보, 지금 천국을 구경하느라 깨어나지 못하는 거죠? 잘 보고 오셔서 깨어나면, 더 확실히 증거 하게 되실 거라 믿어요. 기다립니다. 여보, 사랑해요. 전보다 더, 더, 더."


코로나로 면회가 금지되자, 병원 순회 전도사님의 도움으로 휴대전화로 목소리를 들려드리고 눈 맞추기를 시도했다. 그것도 여러 사정으로 쉽지가 않았다. 연결이 안 되는 날은 미칠 것 같았다. 고맙게도, 역시 목회자인 시누이 남편의 "매일 아침 기도 전화" 덕에 마지막 석 달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떠도, 저녁에 눈을 감아도, 땅을 보아도, 하늘을 올려다 보아도 눈물이 흘렀다. 겉으론 눈물이 말라 보였지만, 가슴속은 늘 눈물로 가득했다.


임종이 다가오자 나는 남편에게 속삭였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요. 저와 아들들이 다 인정합니다. 자랑스럽고 감사해요.

더 잘해보자고 투정 부렸지만, 그건 제 욕심이었고, 당신은 받은 달란트만큼 성실히 일하셨어요. 당신을 존경해요.

이제 아픔도 걱정도 없는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 다만, 먼저 가셔서 우리를 위해 꼭 기도해 주세요.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 당신께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언젠가 그곳에서 다시 만납시다. 그때는 환하게 웃으며

만나요.”


장례 내내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하관의 순간, 유골단지를 품에 안았을 때 무너졌다. 그것은 차갑지 않았다. 아홉 달 동안 그토록 보고 싶고 만지고 싶던 사람. 채 식지 않아 뜨겁기까지 한 체온. 그 뜨거움이 내 품에 닿자, 땅속 깊은 용암이 터지듯 절규와 눈물이 솟구쳤다.


나는 또다시 두 손, 두 발을 들 수밖에 없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남편의 주인도, 나의 주인도, 우리 모두의 주인도 하나님이시다.


저희 부부 사진을 AI로 생성한 이미지.


이제 그는 영원한 화원으로 갔다. 손수레를

끌며 가꾸던 교회 화단, 수선화와 담쟁이덩굴 , 백합의 향기가 여전히 그를 기억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지금은 하나님 품 안에서 완전한 안식으로 피어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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