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구름을 본 적이 있나요?
뉴스레터를 쓰는 오늘은 날이 아주 맑습니다. 주말이라 여유롭게 달리기를 하고 왔는데요, 공기는 차가웠지만 저 높은 푸른 하늘 위 구름이 아주 많았습니다. 모두 제각각의 모양을 띄고 있었죠. 구름을 보니 얼마 전 출근길 보았던 하늘 위 구름도 떠올랐습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그날은 흐리고 먼지가 조금 많았습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요, 그리고 어느 특정 부분은 아주 새하얗고 깨끗한 구름이 있었죠. 정말 특이한 하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먹구름과 맑은 구름이 같이 있지?’
라는 생각과 동시에 알랜 왓츠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사람들은 잘못된 결정을 할까 절대 끝이 날 수 없는 고민을 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모양의 구름을 본 적이 있습니까?”
잘못된 구름은 없다는 말, 자연에는 좋고 나쁨 즉, 선과 악이 없습니다.
그저 존재할 뿐
오늘은 자연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자연에는 선과 악의 개념이 없습니다. 자연은 그저 존재할 뿐이죠.
명리학을 살짝 들여다봅시다.
자연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둠과 빛의 구분에서 시작된 음양의 개념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의미로 발전하게 됩니다.
밤과 낮, 겨울과 여름, 남자와 여자, 사는 것과 죽는 것, 해와 달, 차가움과 뜨거움 등,,
모두 양적인 요소와 음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자연, 즉 우주를 구성하게 됩니다.
• 음(陰)의 특성 - 사고 지향적, 현재의 가치 중시, 내향적, 수동성, 실리(힘, 세력 존중), 여성, 왼쪽, 가을, 겨울, 물, 끝, 밤, 땅, 계곡, 어둠, 수축, 수렴, 하강, 부드러움
• 양(陽)의 특성 - 행동 지향적, 미래의 가치 중시, 외향적, 능동성, 명분(기세, 의리 존중), 남성, 오른쪽, 봄, 여름, 불, 시작, 낮, 하늘, 봉우리, 밝음, 팽창, 발산, 상승, 단단함 음양의 상징 태극
서로 반대의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양과 음의 개념은 상호 보완적인 존재입니다. 어둠은 밝음이 있을 때에만 어둠이고요, 밝음 또한 어두움이 있을 때 밝음이라는 개념이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양과 음은 완전히 분리될 수 없습니다.
어둠으로 충만한 우주에 빛이라는 존재가 있다.
- 떨림과 울림 중 -
그렇다고 해서, 음과 양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느냐 한다면- 아닙니다.
음이 음으로써만 존재하고, 양이 양으로서만 존재한다면, 자연은 서로 양분되어 극과 극에 치닫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음은 양의 특성을, 양은 음의 특성으로 서로 향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말이죠.
우리가 음이라고 불리는 성질들은 하강하려는 힘, 비워 내려는 운동성을 상징하게 됩니다. 음은 끊임없이 양과 교류하며 양의 기운을 흡수해 힘을 응축, 즉 수렴합니다.
양의 기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승하려는 힘, 채우려는 운동성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 양은 끊임없이 음과 교류하며 음의 기운을 양분 삼아 힘을 발산하게 됩니다.
우주는 마치 파도치는 것처럼 순환하고 흐르며 자연을 구성합니다.
해는 떠올랐다가 다시 지고, 달은 차면 기우는 것처럼
겨울이 끝나면 더 추운 빙하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봄이 오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우리 사람의 세계는 어떨까요?
우리의 현실세계는 꽤나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입니다. 경쟁의 세계가 명확히 있어 어쩔 때는 누군가를 제치고, 쟁취해야만 하죠.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자연에서 도태되지 않고, 성장의 성장을 거듭하여 진화하게 해 주지만, 어쩔 때 이러한 것들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길거나 짧거나
이것은 좋은 것, 저것은 나쁜 것
저 사람은 나랑 달라서 싫고, 이 사람은 나와 비슷해서 좋아하고
1등과 2등 그리고 꼴등까지
어떠한 개념을 가져다가 붙여 좋고 나쁨을 대입하거나,
어떤 것이 최고인지 우열을 가려냅니다.
또 나 그리고 너라는 관계 속에서 비교하기도 하고요.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나에 대한 중요성으로 인해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인위적 행위, 과장된 행위, 계산된 행위, 부산하게 설치는 행위, 억지로 하는 행위, 남의 일에 간섭하는 행위, 함부로 하는 행위 등..
그렇기에 우리는 관계 속에서 많은 고민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고민과 더불어 세상은 자꾸 ‘이것도, 저것도 해야만’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공은 누구의 기준인 걸까요?
우주의 시선, 자연의 시선, 신의 시선에서 보면 그저 똑같은 사람인 것을요.
우리가 하늘을 볼 때 잘못된 모양의 구름을 본 적이 있나요?
펜듈럼은 목표를 이루려면 ‘싸우라’고 강요한다. 당신은 자신과 세상을 향해 선전포고를 해야 한다. 펜듈럼은 우선 자신과의 싸움부터 시작하라고 부추긴다. 펜듈럼은 당신이 완전하지 못하며, 그래서 자신을 바꾸지 않으면 목표를 이룰 수 없으리라고 믿게 만든다. 자신을 바꾸고 나서는 세상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 착수해야 한다.
…
그러나 그들의 오류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고 믿는 데에 있다. 그들은 평생 투쟁의 상태에 있다.
-트랜서핑3-
인간은 현재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그것이 곧 나아지리라는 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태도로는 바라는 미래가 결코 오지 않는다.
-트랜서핑3-
궁극적인 현실이 분별조차 없는 비어 있는 상태라면, 그리고 해탈이 이 공한 본성을 깨달음으로써 찾아지는 것이라면, 나는 왜 상대적인 결과가 목적인 수행을 해야 하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이원적이고 상대적인 세계에 살고 있으므로 그러한 세상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수행을 하는 것이다. 육도 윤회의 존재에게는 이분법과 양극성이 의미를 지닌다.
-꿈과 잠 명상 중-
나 그리고 너를 구분 지어 생각하는 서양철학과는 다르게
동양철학의 패러다임은 이렇다고 합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서양 학문에 익숙해져 있지만,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관계를 넓혀가는 것에는 익숙할 겁니다. 알게 모르게 음양에 대한 이야기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자연이고, 인간은 인간인데 왜 알아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 수 도 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리고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런 것 같습니다.
동양철학의 도덕경처럼, 서양에서 말하는 우주의 법칙처럼-
우리는 이러한 이치(?)들을 알면 좀 더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도움을 받는 것 같습니다.
우주의 입장,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나의 삶을 조금 더 잘 살게 만든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 막연함, 두려움 등
우리가 이런 감정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한 치 앞을 모를 때인 것 같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뉴스레터를 작성하고 있는 저는, 이런 사상들 그리고 자연, 우주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한 사실들이 자연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완벽할 수도 있겠구나 하며 이해될 때가 많거든요. 실제로 시간이 지나 보면, 그때의 그 절망과 슬픔이 나에게 필요한 일이었을 수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전환점이 되는 일이었을 때가 많았거든요.
빛 안에서 빛을 그리면 아무것도 없지요. 어둠 속에서 어둠을 그려도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꼭 인생 같지요. 슬플 때가 있어야 즐거울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좋은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좋지 않았던 일들이 결국은 좋았던 것처럼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다.
오히려 자연은 음양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서 부지런히 변화하고 있다.
하이에나에게 잡아먹는 어린 영양은 자연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법칙입니다.
우리는 어린 영양에게 감정을 대입하여 하이에나는 나쁜 동물, 어린 영양은 불쌍하고, 보호해 줘야 하는 동물이라는 기준을 세우죠.
하지만 자연은 자연대로 흐르게 둬야 합니다. 인간이 개입하는 순간, 먹이사슬의 균형은 깨지게 됩니다. 점점 영양은 늘어나고, 하이에나는 줄어들어 생태계 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인간의 잣대를 가지지 않고, 그저 자연의 흐름에 맞춰서 살 때
오히려 우리는 자연의 흐름을 타고 더 멀리, 더 높이 날아갈 수 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자연의 현상을 이해하고 깨닫고, 그저 그 흐름에 올라타는 것입니다. 어떠한 기준이나 잣대도 들이밀지 않고요, 우리는 그냥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흐름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뉴스레터에서 이야기해 볼게요! 이야기가 아주 길어질 것 같으니까요.
하타는 해와 달이라는 뜻입니다. 음과 양의 조화를 바라는 드로우 하타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외적인 것들도 중요하지만, 내적인 것도 중요합니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정의할 수 없으나 둘의 조화는 중요합니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 = 이론으로 깨닫는 진리 그리고 행동
아웃풋이 있어야 인풋이 있다. = 경험으로부터 깨닫는 진리
어떤 것을 먼저 키워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둘의 균형은 중요합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뭔가 잘 못될 때도 있다. 높이 오른 사람은 다시 잊히거나 떨어진다.
나쁜 일만 일어나지 않음. 시험에 떨어졌지만 전환점이 되어, 오히려 좋은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단단함이 있어야 유연함도 그 단단함을 기반으로 멀리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유연함만 있다면, 우리 몸은 부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고요.
너무 고집만 부린다면, 결국 그 고집으로 인해 부러져 버리고 맙니다.
너무 상황에 흔들린다면, 결국 중심을 잡지 못하고 주변이나 상황에 휩쓸리게 됩니다.
지금 일어난 상황에 우리의 기준을 대지 말 것,
또한 그 기준이 영원하다고 믿지 말 것
완벽한 상황이라고 믿고 그저 할 일을 할 것
여러분의 삶은 어떤가요?
요가, 명상을 하고, 스스로를 천천히 들여다보고 발견하며,
삶의 균형과 조화를 향해 가고 있나요?
오늘의 뉴스레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잘못된 구름은 없다.
자연은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은 그저 존재한다.
인간의 세상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자연의 흐름에 맡기자.
모든게 완벽하다.
참고문헌
바딤 젤란드 저,「리얼리티 트랜서핑 3」, 정신세계사, 2019
텐진 왕걀 린포체 저,「티베트 꿈과 잠 명상」 , 정신세계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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