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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Jul 03. 2024

지우펀, 혼자 떠나온 두 여자의 동행

예스지 투어 마지막

이름 모를 다리에서 사진을 찍어 준 인연으로 마지막 코스인 지우펀에는 동행이 생겼다. 

대구에서 서 온 그녀는 퇴근하자마자 대구 공항에서 밤늦은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3박 4일 일정 중 마지막 코스가 예스지 투어고, 투어가 끝나면 다시 타오위안 공항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대구로 가서 출근을 한다고 했다. 예류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찍어 사람이 없어 찍지 못했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니 집에 있는 딸들이 생각났다. 원래 나는 사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스지 투어를 오기 전까지 대만에서 내가 나온 사진 한 장이 없었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혼자 여행이니만큼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진 않는 나 역시 가는 곳마다 한 장 정도는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버스는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갔다. 지우펀은 우리로 치면 산동네였다. 한참을 오른 버스가 주차한 곳 바로 옆에 작은 집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집이 아니라 묘지 같았다. 궁금해서 가이드에게 물었다.

묘지가 맞다고 했다. 타오위안 공항에서 MRT를 타고 타이베이를 올 때 보았던 작은 집들 역시 묘지였다는 거.

이곳 장례문화는 잘 모르지만, 살아있는 가족과 죽은 가족의 경계란 없어 보였다. 함께하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작은 집들을 뒤로하고 마을로 내려왔다. 올라간 만큼 내려와야 했지만 동행이 있어 심심하지 않았다. 그 동행자 속에는 스펀폭포에서 사진을 찍어 준 모자도 함께였다.

아들의 엄마는 미미에서 누가 크래커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 서고, 아직 사지 못한 펑리슈를 사기 위해 낼 새벽도 줄 설 거라며 야심 차게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나보고 어떤 걸 샀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사지 않은 나는 할 말이 없어 미소만 지었다. 아들의 엄마는 대만 오면 무조건 미미 누가 크래커랑, 00의 펑리슈는 필수 여행기념품이라며 꼭 사가라고 했다. 신나서 말하는 엄마를 두고 아들은 혼자 걸어내려갔다.

[찻집 가는 길]

가이드는 일행들을 찻집으로 데려갔다. 주는 차는 마셨지만, 생각보다 비싸고 우리나라 녹차맛이랑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 나는 사지 않았다. 다행히 다른 분들이 많이 사서 별 눈치 보지 않고 나와 대구아가씨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차를 마시고, 두 시간 정도 여유 시간이 주어졌다. 가이드가 일행들을 펑리슈 가게로 데려갈 때 나와 대구아가씨는 슬쩍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지우펀, 붉은 등이 없는 방향]

골목마다 붉은 등이 켜져 있었다. 대만에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가 찍어온다는 지우펀의 골목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라더니 오래전에 보았던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풍경이었다. 나와 대구 아가씨는 골목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메인이 아니어서인지 사람들이 한 두 명뿐이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결코 가지 않았을 막다른 골목길. 비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날씨기도 했지만, 그곳이 산과 가까이 있어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어두워진 지우펀의 골목 끝에서 우리 둘은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대구아가씨가 말했다.


" 일정이 빡빡해서 미미에 가지 못했어요. 누가 크래커 사시려면 여기서 같이 가실래요?"

" 선물 아직 안 샀어요? 

" 다른 거 샀긴 한데, 내일 출근할 때 빈손으로 가기가 좀 그래서요."

" 대만 간 거 직장 사람들이 다 알면 빈손으로 출근하긴 좀 그렇겠다. ㅎㅎ 가봅시다." 

[막다른 골목길, 우리 뒤에도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지우펀의 핵심 골목이라고 할 수 있는 관광상품을 파는 골목으로 향했다.

상점마다 자기 집 누가크래커와 펑리슈를 먹어보라고 했고, 우린 마다하지 않고 시식했다.

골목 상점 대다수가 누가크래커와 펑리슈를 파는 가겐데 생뚱맞게 붓을 파는 가게가 골목 중간쯤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붓 7자루를 샀다. 알고 지내는 지인들 모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까 과자보다 붓이 더 적합할 거라는 판단에서. 대구의 그녀와 나는 다행히 서로 입맛도 비슷했다. 커피누가크래커를 파는 그 집에서 우린 의기투합해서 5+1을 샀다. 5통 값으로 6통을 구입한 우리는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타이베이로 돌아오는 버스 안 제일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 혹시 가봤는데 진짜 별로 다하는 곳 한 군데만 말해 줄 수 있어요?"

" 타이베이 101 타워 전망대요. 혹시 다녀오셨어요?"

" 태국에서 야경을 봐서.. 야경은 거기서 거기일 것 같아 일정에 넣지 않았어요. 근데 별로예요?"

" 비가 와서 그런 건지, 올라갈 때, 올라가서도 제대로 안 보이고 뿌옇더라고요."

" 비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꼭 추천하는 곳은요?"

" 우라이 온천이요. 그 온천 때문에 대만에 한 번 더 오고 싶을 정도로 좋았어요. 꼭 가보세요."

" 대중교통으로 가기 쉬워요?"

" 대중교통으로 가기는 좀 힘든데, 정말 좋아요."

" 내일 비 오면 온천 갈게요. ㅎㅎ" 


죽이 잘 맞는 친구처럼, 타이베이 시내로 들어오는 동안 내내 우린 속닥거렸다. 


" 어디서 내려요?"

" 전 공항 가기 전에 망고 팥빙수 먹으려고요. 그래서 타이베이 역에서 내려요."

" 그렇구나. 난 시먼딩에서 내려요. 조심히 한국 들어가세요. "

" 네. 남은 여행도 즐거운 시간 되세요."


29세 처음으로 혼자 떠나왔다는 대구의 그녀와 

55세 처음으로 혼자 떠나온 나. 

우리는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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