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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Jul 01. 2024

천등

 

그녀와 내가 말을 하게 된 것은 붓 덕분이었다.

풍등에 글을 적기 위해선 붓이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많아서 붓이 부족했다.

스펀 폭포에서 사진을 찍어 준 모자(母子)는 행동이 민첩했다. 둘은 사이좋게 각각 두 칸에 소망을 적고 내게 붓을 주고는 기찻길로 갔다.

 

풍등 길이가 내 허리 높이였다. 4칸의 색지에 소망을 담아 적어야 했다. 갑자기 소원을 적으려니까 생각이 안 나서 머뭇거렸다. 그렇다고 빈칸으로 두기엔 아깝고.

어찌어찌 다 채워 갈 때 건너 칸에 있는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에서 내릴 때 보긴 했지만, 당연히 일행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녀가 뻘쭘하게 서있었다.


" 저기, 붓 드릴까요?"

" 다 적으셨어요?"

" 네. 여기."


짧은 그녀의 말속엔 경상도 억양이 묻어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붓을 건넸다. 그리고 풍등을 들고 기찻길로 향했다. 기찻길 곳곳에 풍등을 날리기 위한 사람들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온 사람은 없어 보였다. 커다란 풍등을 혼자 날릴 생각을 하니 좀 난감했다. 사진도 좀 찍고 싶은데 그것도 고민이었다. 그때 조금 전 붓을 주었던 그녀가 왔다.

" 저기" 말이 그녀의 귀에 닿기도 전에 다른 아저씨가 그녀를 데려갔다. 금방까지 사진을 찍어주든 풍등 아저씨가 " 혼자?"라고 내게 물었다.

죄지은 것도 없지만 괜히 주눅이 들어서 모기 소리로 대답했다.


"  네. 사진 좀 찍어주세요?"

" 오케이"

 주눅이 살짝 들었지만 할 말은 다 하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웃겼다.

[한 바퀴 돌고 버스를 타러 가는 길]

퍼붓는 비는 좀처럼 줄어들 생각이 없었다.

비가 그칠 생각이 없는 거처럼 풍등을 날릴 사람들 역시 계속 버스에서 내리는지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았다.

혼자 온 나는 졸지에 이름도 모를 아저씨와 풍등을 맞잡았다. (아저씨는 풍등 뒤에 쪼그려 앉아서 내게 풍등을 돌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아저씨가

" 여기요?"라고 불렀지만 나는 풍등을 돌린다고 카메라를 볼 겨를이 없었다.

아무튼 두 분의 도움 덕분에 소원이 적힌 풍등이 빗속을 뚫고 하늘 위로 두둥실 떴다.

커다란 풍등이 하늘을 솟아오를 때 기쁨은 잠깐이었다. 다음 대기자 분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기 때문에.


아직 버스를 타기 전까지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한 손엔 닭날개 볶음밥을 들고 땅콩 아이스크림은 먹으면서 풍등이 흘러가는 방향을 따라 걸었다.

이름 모를 다리에 당도했을 때 조금 전의 그녀가 스펀 폭포에서 만났던 모자를 찍어주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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