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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Jun 28. 2024

스펀 폭포 가는 길

예스지 투어(2)


투어 버스를 타자마자 가이드님이 밀크티를 건네주었다.

비옷 속에서 몸의 모든 세포까지 축축하게 젖어있던 상태였다. "탁" 비닐을 통과하는 빨대의 통쾌한 소리.

쭈욱 빨아 댕겼다. 목구멍으로 쑤욱 빨려 들어오는 밀크티. 너무 차가우면 목구멍이 수축되어 잠시 얼얼해져 더 이상 마시지 못한다. 그때 상태가 그랬다.

'물 마시고 체한 거는 약도 없대이' 어릴 때부터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 할매에게 들었던 말이다. 급속 냉각된 목구멍에게 잠시 시간을 준 뒤 버블을 먹었다. 원래부터 버블의 쫄깃쫄깃함을 좋아하는데, 더 쫄깃하고 맛있었다.    


예류에선 그래도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스펀 가는 길에선 버스 창문에 부딪치는 빗방울이 장난 아니었다.

안갠지, 비 때문인지 모르지만, 바깥이 보이지 않았다.

원래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표면적인 이유는 축축한 공기가 몸까지 스며드는 것 같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른이 된 어느 날 '나는 왜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던 적이 있다. 도종환 님의 시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처럼, 사람 역시 상처 없이 자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비와 관련된 좋지 않은 기억들이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게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진짜 비 오는 날 몸이 찌뿌듯해서다. (하하하)  


가이드는 스펀에서 풍등을 날릴 신청자를 받았다. 나도 다른 사람들도 손을 들었다. 가이드가 자리에 앉기 전에 투어객 한 분이 가이드에게 질문을 했다.


투어객 1: " 풍등이 산으로 날아가면 혹시 산불 나지 않아요?"

가이드 :  "스펀은 일 년 365일 중 300일이 비가 와서 나무들이 축축하게 젖은 상태라 산불은 나지 않아요."

나 : " 여기 오는 관광객들 대부분이 풍등을 날린다면 오염도 많이 될 것 같은데 풍등 수거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요?"

가이드 : " 여기 사는 어르신들이 수거를 해요. 수거한 풍등을 가져가면 관공서에서 돈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투어객 2 : " 풍등이 어디에 떨어질 줄 알고 수거를 하신다는 거예요?'

가이드 : " 풍등 안에 기름 심지가 있어요. 그것이 꺼질 때까지 날아가는데 그날 바람 방향에 따라 대충 어는 지점인지 알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주민들이 다 토박이니까 알 수 있나 봐요.ㅎㅎ"


버스 안이 난데없이 질의응답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 덕분에 궁금했었던 것을 알게 되었고, 혹시나 내가 날린 풍등으로 불이라도 날까 걱정했던 마음도 덜 수 있었다.


풍등을 날리기 전 스펀 폭포로 향했다. 비옷을 입어도 우산을 써야 했다. 강도 높은 머리 마사지를 받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사방천지가 초록이었다. 그때 본 풍경이 마음에 스윽 들어왔다.

우리보다 먼저 온 버스 손님들인지, 나란히 개울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비 오는 수채화'가 있다면 이 풍경을 두고 말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연달아 사진을 찍었다.

[스펀 폭포 가는 길]

폭포 도착하기 전, 일행들과 후랭크 소시지와 마늘 간식을 먹었다. 가이드가 풍등 신청을 받을 때, 이것도 같이 신청을 받았었다. 생마늘을 소시지에 끼어 먹는다는 발상을 누가 했는지 모르지만,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이때 맛있게 먹었던 것이 생각나서 단수이에서도 먹었지만, 기억에 남을 맛이 아니었다.

음식 맛은 손맛도 중요하겠지만, 그날 누구와 어디서, 분위기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는 거 같다.


간식을 먹고 스펀 폭포로 다시 향했다. 비가 많이 와서 우레와 같은 폭포 소리에 순간 귀가 멍했다.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와 피어오르는 물안개 그리고 숲. 비는 왔지만 그 모든 풍경들이 너무 좋아 넉 놓고 바라보았다.


" 저기, 사진 좀 찍어주세요."

버스에서 나와 대각선에 앉았고, 처음 질문을 던졌던 그녀였다. 버스에선 몰랐는데 옆에 선 남자애는 그녀의 아들이었다. 추측이 가능한 것은 얼굴이 완전 붕어빵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아들은 사진 찍는 걸 별로 내키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연속 사진을 찍고 폰을 돌려줬다. 그러자 그녀가


" 혼자 오셨죠? 폰 주세요. 찍어 드릴게요."

" 괜찮습니다."

" 전 아들과 왔는데 억지로라도 찍어야 돼요. 사진 밖에 안 남잖아요. 핸드폰 주시고 거기 서보세요."


그녀의, 그녀에 의한, 그녀가 믿는 신념 덕분에 스펀 폭포에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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