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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Jul 05. 2024

화시지에 야시장, 비단구렁이

녀석의 눈과 마주쳤다. 

동남아의 필수 코스인 야시장과 마사지 숍. 대만 역시 야시장이 아주 중요한 여행지다.

그전까지 가족들과 동남아 여행을 가면 필수적으로 매일 밤 마사지를 받았다. 물론 근처에 야시장이 있으면 빼놓지 않고 들렀다. 그러나 혼자 떠난 대만에선 매일 마사지를 받는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룡산사역 앞에서 본 풍경]

대만에 있는 동안 숙소를 옮기지 않고 계속 한 곳에 머물렀다. 그곳은 창문을 열면 용산사 지붕이 보였다.

용산사 건너편에 화시지에 야시장이 있었다. 매일 혼자 길을 찾고, 돌아다니다 보면 야시장 갈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나마 야시장을 간 곳이 화시지에 야시장이다. 단수이를 다녀오면서 스린 야시장을 갔긴 하지만, 북적이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기 싫어 쓱 훑어보기만 하고, 숙소 가기 전에 들린 곳도 화시지에 야시장이었다.


화시지에 야시장을 처음 간 날은 대만 첫날밤이었다. 타이베이 역에서 잠시 국제 미아를 경험한 내가 어렵게 숙소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야시장이 있는지도 몰랐다. 원래 첫날 계획은 네 군데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침 겸 점심을 진천미에서 먹은 후 디화제와 화산 1914 문화 창의 산업 원구만 갔었다. 비도 많이 왔고, 오전에 너무 많은 에너지 소비로 체력이 바닥인 상태였다. 더 어둡기 전에 숙소에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숙소가 있는 룡산사 역에 도착하니 배가 고팠다. 숙소가 저렴이라서 아침 조식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 내아침을 미리 준비해서 숙소에 가져가거나, 아침부터 밥집을 찾거나. 물론 아직 숙소 주변 지리 파악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때의 경험에서 얻은 팁, 차라리 첫날은 다른 장소 말고 숙소 주변을 둘러보며 지리 파악을 먼저 하는 걸 추천한다. 

[룡산사의 밤]

화시지에 야시장은 비가 와서인지 인적도 드물고, 포장마차, 노점도 없었다. 비도 피할 겸 아케이드가 설치된 곳으로 갔다. 아케이드가 설치된 곳에 있는 상점들도 일찍 문을 닫은 곳이 많았고, 한산했다. 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먹을 걸 사지 못할까 걱정한 것과 달리 편의점에서 파인애플을 샀고, 시장 만두집에서 만두 한 팩을 샀다.

[보기와 달리 향신료 냄새가 강했던 만두]

일용할 양식을 구매해서 인지 만두의 온기 때문인지 시장을 둘러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다 녀석을 보고 말았다.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구렁이를 그린 것이었다. 그래서 그 보아구렁이의 속을 그려 주니까 그제서야 이해를 했다.  - 어린 왕자 중-


좋아하는 책 '어린 왕자'의 첫 장면이다. 책에 있는 보아뱀 그림은 하나도 무섭지 않아서 뱀에 대한 선입견을 없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는 아니었다. 유리 칸막이에 갇혀 있는 엄청 큰 노란색 덩어리. 코끼리를 삼킬 정도의 무시무시한 보아구렁이는 아니지만 아주 큰 비단구렁이였다.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리는 그 찰나의 순간에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오금이 저려 걸음조차 뗄 수 없었다. 분명 갇혀 있어 탈출하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무서웠다. 


해리포터의 비밀의 방에서 스네이프 교수 첫 수업시간에 해리와 뱀의 대치 장면이 나온다. 그때도 차마 보지 못한 뱀의 눈을 실제로 맞닥뜨린 거다. '만두 사고 곧장 숙소나 가지.' 스스로에 대한 질책과 '제발, 딴 데 봐라. 제발' 간절한 나의 기도 사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은 혼돈이었다. 녀석은 늘 보던 인간이라 내게 별 관심이 없을 텐데도 나는 그 녀석이 눈을 다른 데로 돌릴 때까지 녀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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