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솔직하게 나를 마주하는 순간
나는 하얀 구름조각들이 소복히 내리는 겨울을 좋아한다.
따뜻한 햇살이 아름다운 봄의 화려함도 좋고, 강렬한 태양이 주는 생명력의 활기가 가득한 여름도 좋고, 모든 것이 결실을 맺는 깊은 가을도 좋지만, 지나간 세월속 잠시 잊혀진 기억의 부품들을 하나하나 끼워맞추는 이 겨울이 좋다.
내 온몸을 두텁게 둘러싼 목도리와 코트의 따스함은 쓸쓸한 추위에 누군가의 온정을 기대하고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 온정을 찾아가라는 듯이 지나간 눈길 위에 남는 발자욱은 그리움이 깊어갈수록 깊게 파인다.
내리는 하얀 눈들은 내 어깨에 쌓이며 잊고 있던 소중하고 아픈, 때로는 따스하고 아련한 추억들을 조금씩 짊어지고 내려와 짓누른다.
아, 내가 당연시해서 잊고 지나쳐온 고마운 것들, 외면하지 말아야 했던 누군가의 외로움, 사랑하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 누릴 수 있었던 작은 행복들의 파편들까지.
추억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후회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모르는 이 모든 것들이 소복히 쌓이면 내 마음과 머릿속은 털어내고 쓸어담으며 지나간 것들과 잊혀진 것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말을 걸어본다.
유난히도 겨울이 추울 때는 모든 잔해와 잔상으로 남겨져버린 과거들에게 따스한 온기로 맞이할 수 없는 날들. 꼭 이 날엔 눈이 많이 내린다.
나는 겨울에 눈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잘못만드는 것도 있겠지만 소중히 내 잔해와 잔상들을 끌어모아 정성껏 만든 눈사람이 언젠간 따스한 햇살에 녹아 무너져 내릴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눈사람을 만들고 사진으로 기억하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진으로도 다 담아내지 못하는 무수한 이 잔해와 잔상들이 눈사람이 되어 사라지는 때가 되면 다시 잊혀지는 듯 한다.
그래서 시를 쓰는 것일까. 하얀 눈밭에 모든 역사를 보내고 시든 잎사귀들이 셰월을 쓰는 것처럼, 하얗고 보드라운 종이에 잊혀지기 싫은 잔해와 잔상들을 펜끝으로 꾹꾹 눌러 담아 써내려간다.
가끔 추운 한겨울에도 눈길을 거닐고 있는 나는 잊혀져가는 것들로부터 얘기를 듣는다. 앞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늘 기억되는 작품들을 만들어 가자고. 잊혀지는 잔해와 잔상이 아닌, 기억되어 늘 행복에 사는 내가, 우리가 되어 가자고.
그때 즘이면 눈사람을 만들어 보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