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로부터의 독립
오전에 웨비나에 참석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삶을 점검하는 모임이었는데, 나의 4월을 회기 하면서 불쑥 이런 단어가 튀어나왔다. '신뢰. 나는 자기 신뢰가 부족하구나.'
그것은 마치 TV 리모컨 배터리 같았다. 계속 쓰면서 인식도 못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닳아서, 어느 날 갑자기 TV 채널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혹시 케이블이 고장 났나? 모니터가 고장 났나? 리모컨 버튼이 고장 났나? 물음표를 매단 채 엉뚱한 곳에서 열심히 고장 원인을 찾아도 소용없다. 일단 리모컨 배터리가 다 닳았으면 다른 채널로 돌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다른 장면을, 다른 세상을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의 '자기 신뢰'라는 배터리는 그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방전되어 있었다.
4월. 돈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고 싶어서 돈에 관련한 스터디를 했다. 그림으로 사람들과 즐겁게 연결되고 싶어서 그림 모임을 리드했고, 웹툰 작가로서 진로 특강을 위해 중학교를 방문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고 꽤나 진취적이었다. 하지만 그걸 소화하고 있는 나는 정작 마음 한 구석으로 불편함을 느꼈다. 홍합껍데기 같이 새까맣고 단단한 것이 내 마음을 꽉 물어제끼고 있는 느낌. 그 검은 감정의 정체는 무의식 중에 내뱉은 내 목소리로 깨달았다. '내 까짓게'
니 까짓게는 들어본 적 있는데 내 까짓게는 또 어디서 튀어나온 신조어란 말인가. 발음하면서도 어색해서 한 번 놀라고, 내가 나에게 뱉은 냉소적인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게다가 이와 같은 비난과 조소의 말들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나에게 딱따구리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림 모임에서 취지에 맞지 않아 나가버린 사람을 대할 때 '거 봐라. 재미없어서 나간 거잖아. 재미있는 척, 뭔가 있는 척하면서 사람들을 모아놓고서 사실 넌 제대로 된 걸 제공해주지 못했지?'라고 냉소했다. 예술강사로 교사 세미나에 나가게 되었을 때도, 처음 써보는 어플과 양식 때문에 원고 작성에 애를 먹으면서 '할 줄도 모르면서 뭘 하겠다고 나댔어. 괜히 하겠다고 해서 서로가 난처해졌잖아.'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웹툰 작가로서 진로 특강을 하고 난 뒤 학생들이 싸인을 요구해왔을 때도, '싸인은 무슨. 아이들이 잔뜩 기대했을 유명 웹툰작가도 아니잖아, 너. 실은 실패한 이야기만 잔뜩 해놓고 그럴듯한 척하고 있네.'라고 조소를 했다. 그래, 나는 내 편이 아닌걸로도 모자라 스스로를 1그램도 신뢰하고 있지 않았던 셈이다.
항상 외부에 있는 것들로 '되고 싶다'는 감정을 채웠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나는 될 수 없는데 되고 싶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작가가 되고 싶다 생각했고, 웹툰을 보고 만화가가 되고 싶다 생각했다. 코칭을 받고 코치가 되고 싶다 생각했고, 예술가, 예술강사로 불리는 사람들이 왠지 멋있어서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채워온 멋진 이미지들은 꿈이 되었고, 그 부푼 풍선 같은 꿈은 현실의 바늘에 찔려서 하나 둘 터져버렸다. 외부의 정보들로만 채워진 내 세상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지 알게 된 나는 이따금 공허해졌다.
래퍼 스윙스가 말했었다. '킴 카사디안이 멋있고, 아리아나 그란데가 멋있고, BTS가 멋있어. 그렇지만 아무리 멋있어해도 내가 그들이 될 수는 없는 거잖아.' 맞는 말이다. 열렬히 동경해도 그것이 곧 내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외부의 것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원래 있었던 것을 밖으로 꺼내 보이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일이었던 것이다.
외부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 세상에 나와 있는 것들, 완성된 것들은 받아들이기가 쉽다. 그러나 내 안에 있어서 실존하지 않은 것들, 아직 세상에 없는 것들을 믿기는 어렵다. 내 안에 있는 것을 꺼내 보이는 것 또한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홍합껍데기 같이 단단한 내 안의 심판자가 비난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일단 못 미더워하고, 의심하고, 하찮게 본다. 그뿐인가. 타인이 거기에 조금이라도 반응하거나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면, 나는 그 누구보다도 더 신랄하게 내가 꺼내놓은 것을 비난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의 것들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멋짐, 누군가의 성공, 그것처럼 되기 위한 연습은 나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내 안의 것을 꺼내놓을 때 나 자신에게 정중해지는 연습. 나에게 필요한 연습은 오직 그것 하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