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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는MK May 20. 2023

축을 세우기 위한 하루하루

의존으로부터의 독립

 작가로서의 나의 '축'

어제 소책자가 나왔다. 제목은 <작가로 산다는 것>. 2022년 겨울부터 2023년 봄까지, 18번의 금요일마다 내 글을 읽어줄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글을 썼다. '아. 이 느낌, 나는 이걸 원했기에 작가가 되고 싶었구나'를 매 순간 업데이트 하며 느꼈고, 책을 실물로 빚으면서도 실감했다. 나는 머리로 알고 있는 작가의 이미지로 살고 싶었던 게 아니라 현실에서 마음으로 느껴지는 연결을 원했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과의 연결을 일상으로 데려와 현실로 만들었다. 그들의 일상과 나의 일상이 '글'로 인해 미세한 파동을 주고받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래서 때로는 감동과 웃음과 눈물과 성찰이 있었다. 그게 나의 실존하는 창작이었던 것이다.


이전의 창작들이 질이 낮았다거나 형편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창작의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많이도 휘청거린 나날들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문체가 좋아서 그 특유의 어투를 흉내 내어 쓰고 내 것인 척할 때도 있었다. 이런 소재를 잡으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까? 에 골몰하며 관심받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몇 주 안 되어서 흐지부지 해질 때도 있었다. '사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지만, 그 이야기를 꺼내면 형편없는 내가 드러날까 봐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후줄근한 나의 현실은 적당히 숨겨둔 채 적당히 귀여운 그림과 적당히 착해 보이는 글을 쓸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을 해도 나다운 창작은 아니었기에 결과물이 나온 뒤에는 갈증과 답답함이 따라왔다.


그런데 이번 연재 프로젝트는 내게 어떤 의미였던가. 작가로서의 나의 중심, '축'이 세워지는 경험을 했다.


아침에 세우는 나의 '축'

아침 7시. 부드럽게 눈이 떠진다. 기분 나쁜 꿈은 잘 꾸지 않게 되었다. 뭔지 모르지만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으로 눈을 뜬 뒤, 바로 물 한잔과 함께 유산균과 혈관약을 먹는다. 그리고 아직 떠지지 않는 눈으로 짧은 명상 책 2-3 페이지를 읽고 모닝페이지를 쓰기 시작한다. 3P를 다 쓰면 30분 정도 걸린다. 시계를 보고 여유가 좀 있으면 한 문장 3년 일기를 펼치고 2023년의 오늘을 적는다. 밀린 오늘들도 틈틈이 적어둔다. 가끔 2022년의 오늘을 마주하면 2023년의 오늘인 나와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느껴본다. 일 년 사이에 나는 참 다른 존재가 되었음을 느끼면 기분이 또 새로워진다. 아침 7시에서 8시 30분까지, 약 1시간 반 동안 내면 속에서 한참을 유영하다가 샤워를 한다. 그 뒤의 일상은 변한 것이 없다. 짜장 이를 산책시키고, 아침밥을 만들어 먹고, 엄마를 돌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집안일을 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나는 나의 중심이 여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은 뒤부터 미라클모닝이 괴롭지 않게 되었다. 머릿속으로 이해한 미라클 모닝과 그것을 수행하는 나 사이에 얼마큼의 먼 거리가 있었는지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무엇을 중심에 두고 살아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는 일조차 수행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옹이와 나이테와 '축'

소책자가 나온 날 점심 12시, 수정님을 만났다.

수정님은 이름 그대로 투명하고 단단한 존재였다. 암투병 중인 그녀는 자신의 고통도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나의 우울과 안위를 걱정했다. 그리고 맑게 웃으며 처음 가보는 동네의 제과점에서 약과라테와 과자를 사주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최근에 수정님이 그린 그림을 보여줬다.

 

아직 다 채워지지 않은 빛나는 별 모양의 소나무잎들과 옹이, 나무의 몸에 박힌 가지의 밑부분이었다.


"엠케이, 그거 알아요? 옹이는 점점 흡수되면서 더욱 단단해진다는 거. 나무의 몸통은 팔이 잘려나간 곳을 자신의 살이 되도록 빨아들여요. 그래서 흔히 '굳은살'을 비유적으로 말하기도 하고, 가슴에 맺힌 감정 따위를 말하잖아요. 가슴에 옹이 맺혔다. 손바닥에 옹이 맺히도록 일했다.... 그런데 소나무를 그리다 보니까 옹이가 참 예쁘지 않겠어요? "


그 말을 하는 수정님이 나를 보며 옹이처럼 예쁘게 웃어주셨다. 엠케이의 옹이도 분명 단단할 거야. 분명 예쁠 거야.라고 말해주듯이.


수정님. 수정님은 어떻게 이렇게 옹이처럼 아름답고 단단할 수 있어요? 나는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다. 수정님은 내게 디저트도 좀 먹으라며 설탕 묻은 약과를 포크에 콕 찍고는 노래하듯이 말씀하셨다. 매일매일 축을 자알~ 세우는 거지요, 뭐. 밖에서 자꾸 찾지 마세요. 민경님 안에 있는 중심이 예쁘게 잘 닦여있으면 되는 거여요. 민경님이 매일매일 자신의 마음을 밝고 예쁜 것에 비추면 되는 거여요. 그렇게 매일매일 차곡차곡 쌓는 거지요.

수정님이 그린 소나무와 옹이


상처가 있는 나무가 아름다운 무늬를 남긴다는 말을 눈앞에서 봤다. 옹이 박혀 생긴 무늬는 나이테에 독특한 모양을 남겨주는데, 수정님이 그린 옹이 속에서 나는 시간의 축을 봤다. 그리고 나를 관통하는 시간들 속에서 이제부터 세워야 할 나의 축에 대해서, 나의 나이테와 옹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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