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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는MK Mar 17. 2021

이 늙음을 싫어합니다

 

사람의 노후가 늙은 호박 만큼만 넉넉하고 쓸모 있다면 누가 늙음을 두려워하랴.



박완서 작가의 말처럼, 나의 늙음이 넉넉하고 쓸모있다면 한 해 한 해 나이 드는 것이 오히려 기다려질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늙음은 '낡음'과 '고갈'에 가깝다.


이와 뼈가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때, 어떤 고통과 불편을 주는지 잘 알고 있다. 할머니와 엄마와 아빠를 통해 그 과정을 계속 지켜봤가 때문이다. 사람이 언제쯤 눈이 침침해지는지, 그래서 언제쯤 책을 멀리하고 언제쯤 맞춤법을 계속 틀리게 되는지, 언제쯤 책상에 오래 앉아있기 힘들게 되는지 그 시기를 잘 알고 있다. 게다가 그 시기가 머지 않았음을, 내 차례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나는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신체의 고갈을, 내 몸의 낡음을 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신체가 더 이상 싱그럽지 않다는 건 그다지 슬프지 않다. 어릴 때 내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 좋았던 건 시간을 수도꼭지 틀어놓듯 펑펑 써도 남아돈다는 안도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잘 모르는 젊음의 불안과 기능을 서서히 잃어가는 늙음의 고통 중에 무엇이 더 두렵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이십대의 그 막막함은 정말이지 다시는 겪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서히 낡아가는 나를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좀 더 '젊은이'로 남고 싶어서 발버둥 치고 싶다.


그래서 하루치의 에너지를 풀 가동하며 살고 있다. 눈이 침침하지 않을 때 열심히 넷플릭스를 보고, 이가 성할 때 매 끼니를 최선을 다해 씹어먹고, 아직 그리고 쓸 수 있을 때 매일 매일을 창작해낸다. 그 창작이 쓸모 있는지, 가치 있는지는 그 다음 문제다. 왜냐하면 이 기능이 사라지는 날은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날은 내가 살아온 날보다 짧으며, 내 예상보다도 훨씬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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