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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그리드 May 30. 2024

전철의 끝 : 종착지



7호선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다는 아이의 소박한 소망,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노선도 그려 넣을 종이와 연필을 챙기고 초록색 텀블러에 물도 가득 넣었으니 준비는 되었습니다. 


파란 넥타이를 매겠다며 긴 팔 셔츠를 꺼내달라 합니다. 더울 텐데, 싶었으니 바람대로 화이트 셔츠와 타이를 건네주었습니다. 만족스러운 웃음 띄며 고마워. 라며 짤막한 표시를 하더니 후다닥 방으로 뛰어가 무언가를 챙겨 나옵니다. 카디건입니다. 진한 남색과 하얀 셔츠의 어울림을 이미 알아채버린 아들. 입고 싶은 마음 잘 알지만 , 무리임을 상기시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오는 길 '엄마는 남자 멋을 모르나 봐...' 한 소리 들었지만요. 








공룡보다는 자동차파인 아들을 둔 덕에 세네 살 적부터 당일치기 버스 여행은 물론이고 전철 여행도 심심찮게 했지만, 전철노선의 마지막 종착지까지 가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일 줄이야, 싶을 정도로 기분전환 제대로 하고 왔답니다. 특히 7호선 끝자락 도봉산역에서 종착역인 장암으로 가는 길이 환상이었는데요. 도심 지하터널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이 각인되었지 말입니다. 



약간 흐린날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마음 후련한 풍경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완전한 예상 밖이었네요. 아들도 엄마도 두 모자간에 우와~ 우와~ 예쁘다~ 그러게 진짜~ 와~ 감탄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지요. '거바. 오길 잘했지 엄마!' 뿌듯하다 못해 의기양양한 아들의 목소리에 인정하고 말고의 대답으로 '고마워. 덕분에 엄마 멋진 구경하게 되었네. 진심 담아 답해 주었습니다. 정말로 고마웠거든요. 



종일 아파트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내다가 탁 트인 산자락이 보이는 곳을, 전철의 진동을 느끼며 탑승하는 기분을 제대로 맛보았지 싶습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전철노선도며 내부 이곳저곳을 놓칠세라 관찰하는 아들을 지켜보는 내내 흥미롭기 그지없었고요. 오늘하루, 분명한 기억으로, 추억으로 남음에 틀림없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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