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선선해진 덕분인가요. 8살인 아들이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며, 말을 걸어옵니다.
"엄마. 나 좋은 수가 생각났어! 놀이터에서 어린애들 노는데 자꾸 오토바이가 들어와. 그래서 안전지킴이를 해야겠더라. 아파트 애들도 같이 하자고 해볼까?"
무슨 말인고 하니. 아이가 말하는 오토바이는 배달 오토바이를 얘기하는 것인데요. 놀이터가 있는 아파트 1층은 오토바이 진입이 금지된 구역이에요. 그럼에도 몇몇 배달기사님들이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는 바로 앞으로 붕~붕~ 위험천만한 일들이 가끔 벌어지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길가에 놓인 노란 표지판을 보게 되었답니다. 갑자기 핸드폰을 빌려달라며 사진 좀 찍을 것이 있다네요. 알겠다며 건네주니 건물 앞에 놓여있던 '오토바이 통행금지' 사인 표시였네요. 보자마자, 아마도 매일같이 노는 곳인 아파트 놀이터의 배달 오토바이가 생각났나 봅니다. 그날 저녁. 거실 테이블에 스케치북을 올려놓고 슥슥 무언가를 적기 시작합니다.
"회의인데 빠르게 해야 하는 걸 뭐라고 해? 빠른 회의? 대책 회의?" 묻습니다. 긴급이라는 단어를 알려줬네요. 스케치북 상단에 <긴급 모집 공고> 크게 적더니, 아파트 친구들도 같이 해야겠다며, 회의 소집을 하겠다고 합니다. 하려는 바를 어렴풋 알 것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모른척하며, 하고자 하는 바를 슥 물었더니, 의기양양하게 이렇게 답합니다.
"아파트 친구들 모아서, 긴급 대책 회의를 열어야겠어. 놀이터에 오토바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가 캠페인을 해야겠어. 놀이터가 진짜 위험해."
예상했던 시나리오. 그런데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일단 하려는 바를 조금 도와주기로 했어요. 그렇게 하여 완성된 '안전지킴이' 긴급 모집 공고문. 사인을 받아야 하기에 한 장씩 프린트도 마쳤습니다. 주말, 조금은 늦은 저녁이기에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아침에 확인할 수 있도록 친구들 집 현관문에 한 장씩 붙여 두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놀이터 오후 6시. 세 명의 아이들이 지킴이가 되고 싶다며 모였고, 이틀 뒤 마지막 한 명까지 추가 합류하며 다섯 명의 안. 전. 지. 킴. 이 완전체가 만들어졌지요.
하루 한 번씩 놀이터에 모여 회의도 하고,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캠페인을 할지도 정해가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그들만의 회의에서 나온 의견 중 하나인 오토바이 진입금지 포스터를 만들고 관리사무소 허락하에 아파트에 붙여놓기도 했답니다.
태권도 학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즉시 호루라기 목에 차고 지킴이 활동하는 아이. 피아노 학원에서 끝마치자마자 놀이터로 와서 오토바이 오는지 지켜보는 아이. 술래잡기하다 오토바이 오는지 보랴 바쁜 아이. 네 발 자전거로 아파트 끝에서 끝까지 계속해 돌아다니며 진입하는 오토바이 있는지 확인하는 아이. 달리기가 빨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살피는 아이. 모두가 제각기 할 일들을 해 가며 바쁘다 바빠 놀이터입니다.
비가 내리는 날임에도 장화에 비 옷까지 챙겨 입고 나갑니다. 안전 수칙 지켜가며,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배달 기사님께는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전하기도 하고요. 아파트 놀이터로 진입하는 오토바이 기사님께는 '주차장으로 들어와주세요. 놀이터에 아이들이 놀고 있거든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예의를 지켜가며 말할 줄 아는 아이들입니다. 실제로 놀이터로 들어오는 오토바이가 점차 줄어드는 모습을 보니, 정말이지 아이들 덕분인가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대견한 모습에 칭찬의 표현으로 간식 응원을 해주는 엄마들입니다. 달콤한 간식을 먹고 힘이 나서인지 더욱이 열심이네요. 그렇게 지난 9월을 보낸 아이들은 이제 다음 캠페인을 준비 중에 있는데요. 다음 달 미션은 '금연 캠페인'이라고 합니다. 아파트 관리소 소장님께도 이미 허락을 받아두고, 아이들이 직접 그린 금연 포스터를 곳곳에 붙이기로 했답니다. 척척 알아서 아파트 지킴이를 해 나가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입니다. 어림에도 불구하고 생각하는 마음 씀씀이는 누가 뭐래도 국가대표급이네요.
그리고, 엄마들은 그저 행동하는 아이 옆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여주며 응원만을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