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토요일 저녁 6시. 시간이 되는지 묻기에 된다, 답했습니다. 장소는 광장동 워커힐, 그것도 16층 클럽 라운지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토요일. 저녁시간. 워커힐. 클럽 라운지. 여자 단둘이서 만나자 하니, 의아함을 넘어 걱정까지 됩니다. 묻고픈 심정은 계란 한판 숫자만큼이나 되었지만 고스란히 접어접어 그대로 두자 했습니다.
말하려 했다면 진즉에 했을 터. 대면하고 만나서 할 얘기일 수도 있으니 존중하자, 싶었지요. 일주일이 후루룩 지나고 오늘, 약속 날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가는 워커힐입니다. 한참 일하던 삼십 대 시절에는 이곳에서 워크숍이니 세미나 또는 해외 바이어 식사 미팅으로 몇 번인가 방문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추억이라기보다는 기억 속 장소에 친구의 초대를 받고 오게 되니 감회가 새롭지 말입니다. 그보다도, 친구의 부름에는 이유가 있을 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16층 버튼을 꾹 눌러봅니다.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혼자 앉아있는 여성을 찾아 둘러보았습니다. 사색에 잠긴 듯 탄산수를 마시고 있는 진주 귀걸이를 한 친구가 보입니다. 웃으며 다가갔고, 활짝 웃으며 있는 그대로의 반가움을 드러냈습니다.
'뭐야, 뭐야. 미영 씨, 여기서 만나다니 너무 좋잖아.'
'어서 와요, 언니. 시간 내 줘서 고마워요.'
간단하되 진심이 담긴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미영 씨는 사실 연령으로 치자면 9살 정도 어리지만, 친구라고 생각하기에 동생이라 부르지 않고 이름에 ~씨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답니다.
'여기 너무 좋다. 뷰도 좋고, 칵테일도 맛있고 음식도 맘에 쏙 든다.'
'그쵸. 작년이랑 재작년에도 왔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이번에는 언니랑 오게 되었네요.'
'맞다. 여기 그전에도 왔었다 했지? 근데 나는 왜... 물론 좋지만.'
'언니라면 그럴 거 같았어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올 거라고요.'
그 말에, 동그래진 눈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웃었습니다. 얼른 자초지종을 더 얘기해 봐. 하는 표정으로 말이죠.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며 한 설명은 이랬습니다. 남편 회사에서 직원 보상 차원으로 워커힐 숙박권을 주는데, 이번에도 받게 되어 오게 되었다. 클럽 라운지는 저녁시간이 되면 어린이 입장 불가이기에, 아들은 아빠에게 맡기고 홀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함께할 사람을 언니로 정했다.라는 거죠. 와우, 고마울 따름이지 말입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과 불빛이 조화롭게 보입니다. 멋들어진 야경 속에서 마시는 라임 가득한 하이볼이 이렇게나 맛있었나 싶습니다. 상큼함을 느끼며 입을 뗐습니다.
'근데 말이야. 이유 없이 토요일 저녁 그것도 워커힐에서 만나자는 약속 잡으니깐 솔직히 혼자 좀 생각은 했어. 무슨 일인가 하고.'
'무슨 생각 들었어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묻는 미영 씨입니다.
'세 가지 정도 예상했어. 첫째는 심각하게 할 이야기가 있는 건가? 이혼인가? 말도 안 되는데 설마 그건 아니겠지, 했고. 두 번째로는 말 못 할 고민이 생겼나? 했었어. 그리고 세 번째는...'
'이혼은 땡이고, 고민도 땡이네요. 세 번째는 뭐예요?'
'만나는 이유를 먼저 얘기 안 한 거 보니, 구태여 묻지 말자. 만나면 알게 되겠지. 했어. 근데 다행이다, 이혼은 아니어서.'라며, 둘이서 호탕하게 큰소리로 웃었네요.
서울 야경을 배경 삼아, 편안한 상대와 마주하고 담소를 나누는 이 저녁 평화롭습니다. 하이볼 두 잔에 선라이즈 칵테일까지 마시니, 기분은 기분대로 좋습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현재 진행 중인 목표와 그 의미에 대한 이야기도 차분히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에는 아주 중요한 약속 하나를 하고 왔답니다.
'우리 이 년 후에 여기서 다시 만나볼래?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근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다시 칵테일 한잔하러 여기 오자.' 하고 말입니다. 약속 잡은 후 언니가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며, 시간 내줘 고맙다는 미영 씨의 말에서 숙성된 와인의 달콤함이 물씬 느껴졌네요.
미영 씨와 함께했던 맛있던 음식, 깔끔한 칵테일 맛이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후년 다시금 방문할 그날을 위해 속도를 내어 달려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