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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awrithink Jun 03. 2019

책이 좋은 부부의 책방

김소영, 오상진 부부의 '책 발전소'에 다녀온 이야기

창업의 모범적인 시작은 '무언가를 [너무 좋아]하는 것'부터라고 생각한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음악과 사람을 [너무 좋아]한 점이, 츠타야의 전신이 되었고,

일론 머스크는 우주와 도전이 [너무 좋아] 스페이스 X와 더 보링 컴퍼니를 시작하였다.


무언가를 너무 좋아하는 것은 대개 그 주변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주변인들은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쉽게 알고 있다. 그런데 무언가에 절실히 '홀릭'된 상대가 내 아내나 남편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지지해줄 것인가 / 온 힘을 다해 말릴 것인가? (이거, 맥주 한 잔 들이키며 토론해야 할 것 같은 질문이다)


얼마 전 광교에 새로 들어선 '책 발전소'에 들렀다. 김소영 전 아나운서와 그의 남편인 오상진 전 아나운서가 차린 책방으로 이미 입소문이 난 곳이다. 그녀는 빛이 드는 책방 입구 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맞이하고, 그는 두 팔을 걷고 계산대에 서서 직접 계산을 담당한다. 그들의 창업과 창업 이후의 행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인의 창업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공인이 '책 가게'를 열었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특별히 느껴진다. 나는 그녀가 광교에 세 번째 책방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부터, SNS를 통해 간접적인 소식을 받아보고 있었는데 책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보며 어떤 진실됨을 느꼈다.

단편적 흥미가 아닌 신중하게 대하고 싶어 하는 마음. 정말 '책'을 좋아하고 사뭇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녀는 이러한 일을 벌이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행복하고 싶어서'라고 포부 있게 이야기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를 위해 가진 것을 일부 포기하고 발을 내딛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단순히 그녀가 공인이어서 호기심 반으로 책방을 찾아온 사람들(=나)은,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고 곧이어 구매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것이 김소영/오상진 부부가 공인이기에 만들 수 있는 <긍정적 파급력>이다.


일본 시민들에게 츠타야란, 획기적이고 특별한 공간이 아닌 일상에 스며든 당연한 공간이 되어있을 것이다.

파리 시민들에게 모네의 작품은 특별할 때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보고 싶을 때 언제나 도보로 찾아가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와 같은 시간과 공간에 사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좋아하고', '그것을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확장하는 행위는 주변인의 입장에선 매우 복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발전소'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의 느낌이 딱 그랬다. 나와 가까운 곳에 이렇게 책 방을 열어주셔서 참 감사하다. 복되었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그 공간 안의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행위를 하면서 같은 느낌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서서 책을 읽는 사람,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사람... 그 공간을 저마다의 방법으로 소비하고 있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구석구석에 두 분의 흔적이 깃들어있다

책 발전소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큐레이션(Curation)' '손글씨'였다.

이 곳은 '모든 책이 있는 곳'이라기보다, '여러 가지 책이 있는 곳'이다. 책 자체가 아주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부부의 다양한 관심사를 자랑하듯 여러 가지 주제로 공간이 나뉘어 있다. 진열장의 대부분은 책이 한 권씩, 표지가 소비자를 마주하는 방향으로 진열되어 있었고 그 책들마다 부부가 손글씨로 짧게 적은 감상평이 꽂아져 있었다. 책 발전소의 브랜드 상징 요소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대체 왜 그래...

책방 주인이 책을 참 많이 읽었고, 좋아하는구나를 단번에 각인시키는 작지만 강한 상징.

오상진 전 아나운서가 유년기에 좋아했던 책, 책방 사업을 시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책 등 저마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즐거운 한 줄 평이었다. 그리고 이 점이 다른 서점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목적 없이 서점에 들어와 작은 한 줄 평들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서점의 중심부터 구석까지 배회하고 있다.

결국은 그 책들 중 하나를 집어 구입하게 될 지도 모른다. 계획에 없었던 책을 말이다.

나 또한 한 줄 평을 읽으며 거닐다 나의 취향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책을 찾아 한 권 구입하게 되었다.

기존의 서점이 내가 목적한 책을 위해 가는 곳이었다면, '책발전소'는 목적 없이 머물다 갈 수 있는 책방이다.

두루마리 종이에 인간미 있게 써 내린 BEST 10

큐레이션의 본질은 '내 취향과 안목을 너에게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큐레이션 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그 분야에 대해 드넓은 관심이 필요하다. 한 단어로 말하자면 '넓얕(넓고 얕은)' 지식이랄까? 만약 내가 SNS에서 팔로잉하는 관련 종사자가 500명이 넘고, 매일 습관처럼 포스팅을 찾으며 그것을 '단톡 방'에 Ctrl+C / Ctrl+V 하고 있다면, 또 누군가가 꺼낸 업계 인물이나 브랜드를 '아 그 사람/그 브랜드~?' 하며 금방 알아채고 있다면, 당신은 큐레이션에 소질이 있는 것이다.


김소영 전 아나운서의 큐레이션도 흥미로웠다. 그녀가 '책 발전소'를 위해 일본과 영국 등 다양한 서점을 발품 팔아 돌아다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서점의 본질에 대해 오래 고민한 것 같았다.

내가 영국 여행 당시 느꼈던 서점들의 개성을 '책 발전소'에서도 사뭇 느낄 수 있었는데, 작고 비좁은 서점임에도 불구하고 취향이 잘 묻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책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흥미 있게 머물 수 있을 정도로 친근하게 큐레이션 한 책방이 '책 발전소'이다.


책을 소비하는 방식은 오디오북이나 E-book 등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지만, 주류는 단연 종이 책이다.

아직까지 그 무엇도 책 장을 넘길 때 발생하는 오묘한 만족감을 대체하지 못했다.

이렇게 보물 같은 책이라는 요소가 다양한 관점에 의해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같은 현상을 다르게 보는 시각, 그들만의 맥락으로 새로움을 창출해내는 능력. 새로운 것을 소비자들에게 소구 하는 저마다의 방식. 우리의 일상을 복되게 해 주는, 브랜드 창업가들이 지닌 공통점 아닐까.

음악과 책, 음식을 소비하는 공간 '츠타야', 온 세상 초판본을 다루는 '골즈버러 북스'처럼 우리네 일상을 다채롭게 만드는 멋들어진 서점으로 점점 더 발전하기를 바라며.


우리나라에는 책 읽는 부부의 한 줄 평이 일색(一色)인 '책 발전소'가 있다.

모나카, 추억 돋는 맛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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