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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awrithink Dec 27. 2022

결(結)의 의미

나의 해는 이어서 계속됩니다

..and they all lived happily ever after

어릴 적 듣던 「옛날 옛적에~ 」의 이야기는 항상 「행복하게 잘 살았대요」의 결말로 끝나곤 한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야기 작가들은 서사를 끝맺는 순간에 일종의 교훈을 전하며 아름답게 마무리 짓고 싶어 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도 분명, 행복한 엔딩을 바라는 인간의 본성이 만든 산물일 테다. 정작 인간의 삶은 그들이 만드는 이야기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데, 바로 '끝'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죽음을 끝이라고 한다면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적어도 내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내 삶의 엔딩을 볼 수 없다.

죽지 않는 한, 삶은 이어진다

삶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굳이 '열두 달'의 개념을 만들어 같은 크기로 조각조각 잘라 해석하고자 하는 이유는 시작과 끝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무한한 흐름을 붙잡아 1월, 2월, 3월..이라는 말뚝을 박고 그 구간을 기억하며 의미를 두는 것. 이것은 이야기 속 기승전결의 구조와도 유사한데 열두 달을 이 관점으로 재해석해보면 1~3월은 일어나 준비하는 기(起)의 단계, 4~6월은 행동을 시작해나가는 승(承)의 단계, 7~9월은 도약하거나 전환의 기회를 갖는 전(轉)의 단계, 10~12월은 지금과 같이 한 해의 여정을 거두고 끝을 맺는 결(結)의 단계로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한 해라는 이야기 달리기

기승전결의 시간을 사는 인간은 어쩌면 근면함이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될 수도 있겠다.

연초에는 신년 계획을 부지런히 세우고, 연말에는 자신의 기/승/전을 돌아보며 회고를 한다. 대한민국은 사계절이 뚜렷해 기후마저 기승전결과 맞물려있으니, 시간 흐름에 민첩하고 '빨리빨리'를 외칠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12월, 연말이다. 그리고 '결'의 시간이다.

'말(末)'이나 '결(結)'이나 모두 마지막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 두 글자를 붙여서 이야기의 끝맺음, '결말'이라 부른다. 나는 어릴 때 끝이 무서워서 행복한 영화를 즐겨 봤다. 결말에 우환이 없는 류의 영화들. 반대로 공포영화는 보는 내내 우환이 가득하고 대부분 찝찝하게 끝나기 때문에 절대 보지 않았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나는 끝이 싫었다. 왁자지껄 친척들이 모여 놀다 흩어지는 명절의 끝도, 나를 키워주신 이모와 함께 보내던 시간의 끝도, 보랏빛 해가 넘어가며 어두워지는 하루의 끝에선 마음이 뒤숭숭했고 마음깊이 새겨진 동화책 속 인물의 끝을 받아들이지 못해 마지막 장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왔다갔다한 기억도 난다. 왜 그토록 끝이 두려웠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던 '행복한 영화'의 구조는 항상 비슷하다. 결말의 영역에 견고한 울타리를 쌓고 일정한 양의 행복함을 가두어 두는 구조. 그것이 우리가 소위 말하는 '해피 엔딩'. 그것은 인간이 바라는 일종의 유토피아 같은 것이다. 사실 12월도 다른 달처럼 후루룩 지나갈 뿐인데, 연말에 너무 큰 의미부여를 하거나 뭔가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했다고 느끼면 새해에도 마음이 허하거나 불편했던 것 같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삶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면 살아가는 이야기 속 '결'을 조금 달리 바라볼 수 있다. 한 해의 끝을 결말이 아니라 다음 해로 넘어가는 정거장 정도로 생각하면 해마다 '마무리' 하거나 끝맺음 짓지 않아도 된다.


삶과 이야기의 다른 점 두 번째는, '소망'의 사용 가능 여부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만든 이야기는 대개 결말이 정해져 있고, 내가 소망한다고 해서 이야기를 바꿀 수 없다. 이야기는 

'결'의 순간 멈추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매 해 '결'의 순간마다 소망이라는 카드를 씀으로써 이야기 구조를 새롭게 하고 이어나갈 수 있다. '결'의 순간 우리는 삶의 극장을 떠나지 않고 소망한다. 

다음 해에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건강하기를, 바라왔던 것이 이루어지기를,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킬 수 있기를.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찰나에 탄식하거나 망연자실하는 사람은 드물다. (Y2K를 기억하는 세대라면 조마조마했던 때는 있었겠지만) 헌 해는 쿨하게 보내고, 새해의 기쁨을 나누며 행복이 가득하기를 서로 기원한다. 이 또한 서로의 삶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망은 다음 해의 우리를 어렴풋이 비추어주는 별자리가 되어주며, 삶은 우리에게 꾸준히 걸어 나가라고 무언의 권유를 해온다.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행복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하루 중 해가 가장 밝은 정오에 에너지가 차오르며, 시작도 끝도 아닌 수요일을 가장 좋아하지만 이제는 끝을 두려워하기보단 현상의 끝이라 여겨지는 지점 그 이후를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퍽 자유로워진 것 같다. 

<행복한 결말>은 없다. 그보단 행복이라 느끼는 나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지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보랏빛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달빛 또한 아름답다는 것, 좋은 사람들과 막연하지 않은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 삶은 이어지기에 끝이 아니라 그다음을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게 여겨진다.

삶과 이야기는 분명히 다르지만, 요즘의 이야기들은 결말을 '열린'상태로 두기도 하고, 주인공이 어떻게 살아갈지 결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시리즈물로 끝없이 이어가기도 한다. 

나의 2022년 '결'도 마무리하고 덮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음 '기'를 이어달리기할 [시즌 35]의 나에게 어떤 소망카드를 펼쳐볼지, 마음을 활짝 열어둔 채로 편안하게 맞이해보려고 한다. 이맘때 자주 뱉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라는 말은 <나의 해는 이어서 계속됩니다>라는 말로 바꾸어봤다. 

우선은 우리 모두 휴식의 시간을 갖고 다음 이야기를 준비해보도록 하자. 

긴 이야기와 달리기 모두 충분한 휴식은 필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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