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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롱 Jan 10. 2023

어른과 늙은이

나잇값 좀 하세요!

"성격 많이 죽었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공직에서 일을 하고 나서 성격이 많이 유해졌다. 아주 많이. 20대에는 꽤나 불같은 성격이었다. 아니 지랄 맞은 성격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말 같다. 나는 본디 내가 납득되지 않는 일이면 내가 납득이 될 때까지 행하는 타입이며, 상사, 동료와의 트러블에서도 그러한 성격은 여전히 마찰을 유발한다. 즉, 나는 설득이 매우 어려운 사람이며 예전에는 친구들이 타협하는 걸 지레 포기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11년 지기 친구인 Y군이 있다. Y군은 나와 어른, 아니 늙은이들과의 마찰을 여러 번 목격했다. 나와 함께 다니면서 날 말리다가 언젠가부터는 체념했으리라.

보통, 나이가 드신 어른을 공경하고 그들을 예의 있게 응대해야 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어른들은 어느 정도 교양 있게 행동하고 남들에게 무언가를 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지만, 무례하고 예의 없는 늙은이들은 흔히들 말하는 진상이면서,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족속들을 일컫는다.


만약에 당신이 어떤 상황에서 나잇값도 못하는 늙은이, 대접해줄 가치도 없는 늙은이들을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보통의 사람들은 그냥 그들과의 마찰을 피하고, 모른 척할 것이며, 지나치면서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는 선택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성격이 보통 불같아야지. 매번 붙었던 그런 이야기를 록해 보고자 한다. 혹자들은 이걸 읽고 내가 예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잇값 못하는 인간을 어른으로 대해줄 만큼의 대인배가 못된다.




통도사 편

바야흐로 봄이 되기 직전이었다. 통도사 한편에는 곱디고운 붉은 홍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했으며, 친구 Y군과 나는 통도사를 찾았다. 전국의 많은 사진사들이 그곳을 찾았다. 평소와 같았으면, 아무와도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홍매화만 촬영하고 갔을 것을, 만나버렸다. 나잇값 못하는 늙은이를!

그 늙은이는 일행들과 함께 왔다. 눈치 없는 한 아줌마가 그의 파트너였다. 늙은이와 아줌마는 [눈으로만 감상하세요]라고 적힌 문구를 읽지 못하는 중국인도 아니고, 홍매화 가지를 손으로 잡으면서 못생긴 얼굴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정확히 나의 카메라 앵글을 가리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곱게 응대했다. 보자마자 지랄을 할 정도로 내가 싸이코는 아니었으니까.  "저기요, 사진 찍는데 나무는 건들지 맙시다. 사람들도 많은데"  이 한마디에, 나를 너무도 잘 아는 Y군은 "야 싸우지 마라, 절대로"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에 불만이 많았지만, 자기들끼리 숙덕거리며, 그 누구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카메라를 접으며 자리를 떴다. 늙은이들의 일행은 아는지 모르는지, 통도사를 전세 낸 듯이 계속해서 나무를 흔들며 신나게 사진을 찍어댔다. 내 이야기는 그들의 귀에 도달하지 못한 것 같았다. 눈치 없이 계속해서 나의 앵글 속에 들어오던 그들은 결국 Y군의 조언을 잊은 나의 입에서 험한 말을 들었고, 결국 상호 간에 언성이 높아졌다. 젊디 젊은 놈에게 욕한 바가지를 거하게 얻어먹더니,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리고는, "애미애비도 없냐?" 늙은이의 입에서 험한 말이 오갔다.

"니들같이 나잇살 먹고 눈치 없는 부모님은 없다 새끼야"

젊디 젊은 나의 대답에 주변의 눈치를 보던 그들 일행은 낯부끄러웠는지, 분에 찬 늙은이를 데리고 후다닥 통도사를 빠져나갔다. 그 사이 내 친구 Y군은 내가 부끄러웠는지, 저 멀리서 나를 모른 척하고 있었다.




무궁화호 편

가을에 북천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경상도 친구들과 함께 코스모스를 찍고 돌아오려는 기차에 올라탔다. 북천의 코스모스는 매년 사람이 바글바글 거리기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기차를 타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기차를 타니, 우리 4명 중 Y군의 자리에 나이 드신 할머니 한분 앉아 있었다. 두 번 세 번 표를 확인해도, 우리 자리였다. 공손하게 다가가, 우리 자리임을 어필하며, 다른 자리로 옮기길 부탁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너희가 젊으니까 서서 가" 얼척이 없었다. 이번에도 어른이 아니라 늙은이였다.

Y군은 심성이 착다. 남에게 쓴소리 한 번 못한다. 정당한 권리를 지불했음에도 자리를 빼앗겼는데, "저분이 할머니니까 내가 참아야지"라는 태도를 보였다. Y군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신 나서서 내 친구의 권리를 찾아주고 싶었다.

"앉아서 갈 거면 돈을 내세요"


늙은이는 들은 척도 안 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상습범 그 자체였다. 더 심한 분노가 표출되려는 걸, Y군은 나를 말렸다. 통도사에서 내가 부끄러웠던 Y군은 결국 중간에 늙은이가 내릴 때까지,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했다. 그는 아마 평생 변하지 않을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착하다. 나쁜 소리를 못한다. 나는 가끔 그가 답답하다.




광안리 불꽃축제 편

2011년부터, 8년간 나는 Y군과 함께,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불꽃축제를 매번 촬영했다. 아침 9시부터 가서, 1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돗자리를 펴놓고, 화장실도 참아가며 웨이팅을 했다. 불꽃사진을 담겠다는 일념하나를 불사르며 우리의 청춘을 해수욕장에서 불꽃사진 촬영을 위해 기다리는데 보냈다. 8년의 시간 동안, Y군은 나를 너무 잘 알았다. 8년 동안 Y군은 내가 누군가와 트러블을 일으키질 않게 나를 잘 통제해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으면 에피소드도 아니고, 글을 쓸 건덕지도 아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저녁 7시 정도였다. 사람들이 서서히 해수욕장을 채워갔다. 백사장에서 10시간 정도 친구들을 기다리며 힘겹게 확보해 놓은 자리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뒤늦게 나타나, 사진을 찍기 위해 가득 찬 백사장 사이사이 빈 공간을 노리는 찍사 늙은이 들이었다. 아직 친구들이 도착하지 않은 우리의 돗자리를 보며, 그들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자리를 탐냈다. 먼저 와서 10시간 동안 기다린 우리의 자리를 노렸다. 당연히 그들의 권리인 것처럼. "아저씨, 여기 저희 자리니까 다른 데로 가세요"라고 좋게 말하자, "자리도 많은데 같이 합시다. 같이 사진 찍는 사람들끼리"라고 말한 게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늙은이들이 내가 조율해둔 삼각대를 건드렸을 때, 나의 변화를 Y군은 인지했다. Y군은 "싸우지 마라"라고 눈빛을 보냈지만, 이미 내 표정을 웃으면서 험한 말이 튀어나간 상태였다.

아저씨 나 알아요? 불만 있으면 10시간 먼저 와서 기다리던가요. 나잇값을 못하시네


언성이 높아지려 하자, Y군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나를 자제시켰다. 늙은이들은 세상에 모든 불만을 씨부렁거리듯 지랄을 하며 자리를 떴다. 10시간의 노력을 헛되이 쓸 뻔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세상에는 많은 어른이 있다.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권리를 찾아야지. 나이가 무슨 벼슬인 양 나대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일단, 진짜 어른이라 불리는 분들에게는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 외에 모든 늙은이들에게 말한다.


세상의 모든 늙은이들아 시대가 변했습니다. 제발 나잇값 좀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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