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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롱 Feb 02. 2023

SPA브랜드 쇼핑하기

이상한 맛

"어서 오세요. 에잇세컨즈입니다. 7만원이상 구매하시면 카카오톡 행사하기로 7천원 할인해드립니다"

옷을 아무리 정리하고 버려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옷은 옷장에 가득 차있고, 맨날 꺼내 입는 옷들 위주로 입다 보니 스타일은 고정되어 버리던 찰나라 '새 옷을 좀 사야겠다'라고 생각한 김에, 모처럼 휴무일이라 의류매장을 방문했다. 방문과 동시에 직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귓속의 고막에 도달했다.


명품매장도 아니고(관심도 없고), 어느샌가 다가와서 영업하는 직원이 있는 보세 옷가게도 아닌 SPA 브랜드였기에, 나는 조금이나마 마음 편히 가게를 둘러볼 수 있었다. 올해 이 브랜드에서 추구하는 스타일은 무엇인지 대충 둘러보며 나에게 필요하고 내 스타일의 옷을 판매하는지를 살펴보던 중 자연스레 할인코너에 눈이 고정되었다.


정가 69,900원. sale 19,900원. XL 멀쩡해 보이는 초록색 가디건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 괜찮은데?' 녹색은 딱히 선호하는 색상이 아닌지라 유사계열의 옷이 없는데 흰색의 티셔츠와 매치하고 하의를 세미와이드 면바지로 코디하면 평소랑은 다른 스타일로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려있던 XL의 가디건을 뒤적이며, 뒤쪽에 걸린 100% 모델명이며 제품의 크기 상태가 같은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정가 69,900원 sale 29,900원. 세일가격이 상이했다.

3개의 같은 옷이 걸려있었는데, 하나만 19,900원이고 나머지 두 개는 29,900원이 아닌가? 이럴 수 있나 싶은 마음에 일단 원픽으로 초록색 가디건을 찜해놓고 누가 가져갈까 싶어 멀리서 지켜보며 고민을 시작했다. 괜시리 나쁜 짓 한 것같은 기분이 든건 덤이었다. 그리고 가디건과 매치할 법한 세미와이드 팬츠를 두어 벌 집고 피팅을 해본 후 재빠르게 아까 봐둔 19,900원짜리 가디건을 쇼핑가방에 넣고 계산대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계산대에 구매할 옷들을 올려놓고 일상적인 안내를 듣기 시작했다. 혹여나 하나만 19,900원인 옷이 직원의 실수로 표기된 거여서 29,900원을 받아야겠다고 말할까 싶어 걱정스러운 기분이 다행히 거래명세서에는 19,900원이 찍혀있었다. 3벌이나 구매하다 보니 7만원 이상이라 7000원 쿠폰을 사용한 건 덤 아닌 덤이었다.




새 옷을 구매했지만 무언가 더 구매하고 싶어 근처에 있는 다른 SPA브랜드인 유니클로와 H&M을 찾았다. 먼저 들렸던 에잇세컨즈에 비해서 유니클로는 흥미가 생기는 옷은 딱히 없었다. 2,3년 전 불매운동의 타격을 세게 맞고 많이 사라진 유니클로였지만 여전히 인기는 좋았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부터 디자인이 단순해지고 가격이 너무나 올라버려 과거의 영광만 남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 획일적이고 단순한 디자인들은 나람 이색적인 스타일을 선호하는 나에겐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H&M매장에 들어갔다. 아니? 이딴 옷을 판다고? 충격에 젖어 몇 개의 옷을 촬영해 친구 A군에게 전송했다. "옷 사러 왔는데 너라면 살래?" 

복고스타일의 촌스러운 디자인과 헬파이어 클럽이라뇨?

답장이 왔다. "으악" 친구가 답장해 온 외마디 비명이 내생각과 같았다. 어디 90년대에 입을 법한 촌스러운 카라티부터 헬파이어 클럽이라고 써진 중2병 걸린듯한 티셔츠라니. 때려죽여도 입을 용기가 없었다.(패션고자들이 편식은 심하다)

옆에서 발견한 포켓몬 후드티

그리고 옆에서 발견한 포켓몬 후드티. '병신 같지만 가지고 싶어. 입지 않겠지만 사고 싶다'라는 욕구를 어렵사리 이기고 '그래 오늘은 3벌로 만족하자.'라고 생각하며 H&M을 후다닥 뛰쳐나왔다.(장롱 특 : 이상한 거 좋아함)


오랜만의 쇼핑은 요즘 트렌드를 읽지 못하는 내가 맛본 이상한 맛이었다.(H&M이 이상한 건지 내 감각이 이상한 건지.) 그리고 같은 옷을 29,900원과 19,900원을 파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을 했다.(직원의 실수인지, 재고 처리 전략인지.)


@바로 3시간 전 오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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