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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롱 Feb 04. 2023

우물 안 개구리

나는 세상물정 모르던 우물 안 개구리였다.

보통의 관계. 고등학교까지는 나와 유사한 환경에서 자라온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것이 당연하게도 세상의 이치이자 진리라고 생각했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교감이 부족했고, 그러한 사실들을 인지하지 못 한 채로 대학에 진학했다.


2007년 봄, 나는 내 대학친구들을 만났다. 타지에서 와서 조금은 어리바리를 타던 나에게 부산생활이라는 것을 알려준 친구들이었고, 그들은 나를 이 좁디좁은 우물에서 나올 수 있게 물을 채워주었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은 친구들과의 어떤 대화에서 알게 되었고, 그때 나타난 충격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정도의 수준으로 내게 다가왔었다.


"학생이 공부에만 전념하면 되지. 왜 이렇게 근로장학생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모르겠어."

"왜긴 왜야 학자금 대출 때문이지. 졸업하고 몇 년 동안 갚아나가야 할 걸."

"학자금 대출? 그게 뭔데? 보통 등록금 같은 것 아버지 회사에서 전부 지원 나오는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그건 대기업 같은 데니까 나오는 거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다 학자금 대출을 받고 학교를 다닌다고. 일부라도 회사에서 지원 나오면 그건 복 은 거지! 난 네가 부럽다."


나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학자금 대출이라니? 학자금은 아버지 회사에서 보통 지원 나오는 것 아닌가? 아직 어렸던 나는 단 한 번도, 타인의 환경요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울산 동구의 70% 이상의 학생들은 나와 같았을 것이다. 그때의 이야기를 상기해 낼 때마다 정말이지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그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의 무지에서 나온 발언에 친구들은 웃으며 담담하게 이야기해 주었겠지만, 조금은 상처를 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 이야기를 후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다시 한번 한 적이 있다. 

"내가 대학교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인데, 등록금 지원 나오는 거. 보통 사람들은 해당되지 않는다면서? 나는 정말 몰랐어"

"보통은 그렇지. 그런데 아마 울산 동구에 사는 애들은 보통 아버지가 거의 다 H 중공업이나. H 자동차 다니셔서 그런 거 생각 못할걸. 우리야 4년 동안 학자금 지원 나오니까 그냥 학교 다니는 거지. 죽자고 4년 공부하는 사람은 또 별로 없을지도 몰라. 어떻게 보면 부모님 덕에 혜택 본 거지."

확실히 그랬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은 앞 출발선에 서있는 것. 다만, 그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만큼 우리는 급하지 않았기에, 쫓기지 않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혜택을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 지 못했고, 그 이점을 제대로 활용치 못했다. 오히려 도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물정 모르던 학창 시절의 경험들은 결국 10년간의 ㅈ소기업 생활로 바닥을 경험하면서 대신 알게 되었으니까(브런치북 ㅈ소기업이야기 참고).


우리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이야기해 보고 경험하며 식견을 넓혀야 한다. 언제까지고 내가 알고 있는 내용들만이 항상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다. 내가 모르는 세계, 모르는 지식, 못해본 경험들을 타인과의 대화와 독서 등을 통해 채워나가게 되었을 때, 우리는 우물 위에서 누군가 밧줄을 내려주어 나가게 도와주는 것이 아닌 수위를 높여서, 물을 계속해서 채움으로써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요즘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새로운 경험들을 계속해보고 싶다. 나만의 작은 우물에서 좀 더 큰 물로 나아가고 싶다. 그렇게 계속 우물로 천천히 급수는 이루어지고 다. 우물물이 오버플로우 될 때까지. 내가 그 오버플로우의 흐름에 합류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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