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롱 Feb 06. 2023

가끔은 쉬어가야 할 때

하소연 좀 하겠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더하면 사표를 낼지도 모르니까 연차 좀 쓰고 한 3일 쉬다 오겠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분들에게 선언했다. 지난 1월은 너무 바빴다. 예산이 들어온 시기이기도 했고, 그 덕에 밀린 공사부터, 갑작스럽게 망가진 설비들을 고치다 보니 운영하는 센터도 휴관에 돌입하고 그 시기에 대규모로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개수를 세어보니 1달 사이 17건 정도의 공사를 맡게 되었고, 휴관하는 일주일 사이에는 크고 작은 공사 합쳐서 못해도 6-7개의 공사를 맡았으니 진이 빠질 법도 했다.


그런데 이런 일 자체가 사표를 유발한 건 아니고, 공공기관 특성상 시도 때도 없이 불만을 터뜨리는 블랙컨슈머들과 내부의 적인 말 안 통하는 팀장, 과장 들이 바로 사표유발자들이다.


약 일주일 만의 휴관을 마치고 수영장을 다시 개관했다. 그동안 수영장 설비의 많은 수리/교체가 있었고, 수영장 사다리의 파손으로 전체 물갈이까지 이루어졌다. 다만, 10년이 다되어가는 시설 덕에 급수관 내부의 상태는 매우 안 좋아 혹여나 흙탕물이라도 올라올까 수중청소기까지 날밤 까며 돌려가지고 나름 괜찮은 수질을 형성해 놓은 상태였다.(100프로 깨끗한 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개관 당일 들려온 건 늘상 나오는 블랙컨슈머들의 흔해빠진 민원. 물이 차갑다/뜨겁다/더럽다 등을 비롯해, 한 게 없는데 뭐 하려고 휴관하냐? 휴관했으면 시설을 확 바꿔야지, 이러려고 니들 월급 주는 거다. 등등의 거지발싸개 같은 민원들이었다.


평소라면 흘려들었을 민원이었지만, 최근 한 달간 많은 업무량에 따른 스트레스와 보이지 않는 노력을 폄하당하니 기분이 확 저하되었다. 다행스러운 건 내가 공직자라는 옷을 입은 후로 참 유해졌다는 것이다. 공직자가 되기 전의 나를 생각해 보면 벌써 민원인이고 나발이고 대판 붙었을 건데, 공직자라는 입장때문에, 그저 속으로 삭히고 있는 걸 보니 참 인간되었다. 장롱군. (이전에 써논 글 같았으면 벌써 에피소드가 추가되었을 텐데.)


이러한 스트레스와 화를 견디다 못해 사무실로 찾아올라가 팀장 과장님을 불러 모으고 "팀장님 과장님 회의 좀 합시다"고 소집하곤 민원응대 포기 선언을 했다.

전 오퍼레이터니까 오퍼레이트만 하겠습니다. 근로계약서에도 운영보조가 제 업문데 무슨 민원 응대까지 다합니까? 말도 안 통하는 민원인들은 팀장님, 과장님이 책임지고 응대해 주세요. 저한테 맡기면 조만간 대판 붙어서 기관 이미지가 박살 날 것 같거든요. 아니면 사표 던지고 나갈 수도 있구요.


하소연 아닌 하소연이었다. 그리고, 돌아서면서 마지막 일침까지 잊지 않고 가하고 나왔다. 늘상 사고가 터지거나 민원이 발생면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는 양 부하직원이 잘못해서 문제가 터졌다고 핑계만 대는 팀장(상습범). 이번에도 왠지 그럴 것 같은 촉(?)이 들기에 팀장이 나를 팔아 민원인에게 읍소할 것 같은 느낌 99%. 불안한 예감은 언제든 틀리지 않는 법.

그리고 팀장님. 민원인들이 뭐라 하면 또 부하직원이 잘못했다고 말하시기만 해 보세요. 팀장님이 평소 하신 거 제가 전부 대자보로 만들어 센터 중앙에 붙일 겁니다.


내 말을 듣고 괜스레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으로 나를 바라본 팀장이었지만, 속으로는 뜨끔했을 거다.

사실 인사평가나 승진 덕에 할 말 못 하고 사는 게 공공기관 보통의 부하직원들이겠지만, 나는 아니다. 평가가 좀 떨어지면 성과급 얼마 깎이면 되고, 진급도 없는 공무직이니, 난 평생 주임이다. 진급할 일도 없다. 팀장 과장님의 평소 말 안 되는 오더에 맨날 찾아올라 가서 반발하니 더 깎일 평판이 남아있기는 할까? 불합리하고 납득이 안 가는 일은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NO라고 말하는 게 나다. 내 할 말은 하고 살아야 좀 덜 억울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징계 좀 먹지 뭐. 잘리기야 하겠는가. 그리고 불합리한 지시에 거절하는 건 징계건수도 아니다.면접 때도 으레 이 질문이 나오지 않는가?(요즘 속마음)

아니면 내가 팀장 과장 면전에 사표를 던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내 입사과정이 험난했기에 차마 그럴 순 없다.


아무튼 사무실에서 팀장 과장에게 민원을 토스하고 나서도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아 자칫하면 사고 칠까 싶어, 연차를 내기로했다. 대체휴무 하루에 연차 하루 그리고 원래 휴일 하루. 총 3일. 3일간의 휴식으로 멘탈을 정비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한다.




회사에 또라이가 동료로 있어서 사표를 내고 싶으면 내가 더 또라이가 돼서 상대를 내쫓으면 된다.

라고 생각하며 회사 생활을 한다. 하지만 상대가 고객이니, 쫓아내진 못하고 사표를 내면 나만 손해일 것 같고, 다시 ㅈ소기업으로 가는 건 못하겠으니, 연차다. 연차뿐이다. 그렇게 오늘도 마음속에 사직서를 한 장 또 찢어버렸다. 지금이 바로 쉬어가야 할 때이다.




구독하기와 라이킷, 댓글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물 안 개구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