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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롱 Feb 12. 2023

함부로 남의 꿈을 안된다고 말하지 말라.

"내 꿈은 돈 잘 버는 사장님이 되는 거다."

내 오랜 친구 BJ군은 초중고 때부터 사장님이 목표라고 입에 달고 살았다. 사장이 되기 위해서 문과에 진학했으며, (영어 9등급 수준의 노재능러인데, 문과를 가면 영어를 안 하는지 알았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울산대학교 경영학과를 간 건 맞지만 공부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니어서 남들처럼 스타트업을 졸업할 때 차리거나 준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건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길 원하는 스타일이었으며,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타입이었고, 10여 년 전 빅맥송 공모전에 참여하거나, 울산고래축제 노래대회에 나가거나 하는 등 기행을 많이 벌였다. (눈이 띄고 싶은 것도 하나의 이유였겠지만, 무엇보다 돈에 대한 욕심이 강했다.) 학교 축제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고, 단과대 축제도 많이 참여했다. 3등만 주야장천 했으며, 이미 학교 유명인이었다.


그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가지 일을 많이 벌렸다. 겨울에는 군밤을 팔겠다고, 여기저기 발품을 팔며, 노점 상인들에게 너스레를 떨며 다가가서 정보를 얻고선 자기만의 사업을 위한 도전을 했고, 스승의 날이라던가 어버이날이 되면 모교 고등학교 앞에 가서 꽃다발을 어딘가에서 가져팔기도 했다. 자기 졸업식에서는 하라는 졸업은 안 하고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팔았다.


자전거 야바위도 했다. 핸들이 반대로 된 자전거를 하나 만들어 왼쪽으로 틀면 오른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틀면 왼쪽으로 가는 자전거를 만들었다. 1회 도전에 2천 원. 5m 가기. 성공하면 5만 원. 이 야바위 장사로 제법 짭짤한 수입을 얻기도 했다. 울산대 홍대 해운대 일산해수욕장 광안리 해수욕장 등 전국을 다니면서 장사를 했다.


이것저것 투자비가 적은 사업만 하다 보니 망하는 사업은 없었다. 로우리스크 하이리턴이 그가 바라는 사업유형이었다.

 



그런 그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점포를 내는 것이 아닌, 노점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BJ군의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보통 일반적인 회사로 입사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런 그의 선택을 만류하는 친구도 있었고, 그의 무모한 도전을 "넌 할 수 있다"고 응원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그가 노점을 시작할 때 1년 내로 망할 수도 있다며  실패했을 때 어쩔거냐고, 그의 결정을 만류했지만 이미 그는 모든 것을 결정한 상태였다. 그는 본인의 성공에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미래의 일 따윈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사업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졸업 후 삼산동 길거리에서 군밤을 팔던 그에게 옆에서 모자와 개옷, 이니셜반지를 팔던 노점상이 셀카봉을 팔아보면 어떨지 권유했다고 한다. 바로 다음 날 그는 군밤을 때려치우고 셀카봉 판매하기로 했다. 그렇게 그는 사부(옆에서 물건팔던 노점상)와 만났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장사를 시작한 그는, 물건 수급부터 판매장소, 마진률, 고객을 대하는 법 등을 4개월 간의 트레이닝을 통해 사부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사부의 추천을 통해 울산대학교 앞 바보사거리에서 셀카봉과 핸드폰케이스 장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본격적으로 노점사업에 뛰어들었다. 바보사거리에 자리잡은 그. 건물주를 비롯해, 근처 다른 가게들도 갑자기 등장한 노점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는 고객들에게 늘 웃으며 대했으며, 그 특유의 뻔뻔함으로 주변 상인들과도 친해졌다. 1년 365일 내내, 갑작스러운 기상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항상 노점을 열었으며, 하루에 하나도 팔지 못할 때도 포기하지 않고 장사를 지속했다. 장사가 잘 안 될 때쯤에는 업종 변경을 위해 솜사탕도 팔고, 포켓몬고가 유행일 땐 간절곶에서 보조배터리도 팔았다.(우리나라에 정식 런칭이 안되었을 땐 간절곶에서만 이상하게 포켓몬고가 되었다.) 여름철에는 슬리퍼도 떼와서 팔았지만 악성재고로 많이 남았다.(건물 사장님이 신발가게를 하셨는데 땡처리 당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졸업 후 8년간 한 자리에 있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엔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연애도 안 했다. 오로지 돈만 보고 성실하게 일했다. 그러나 보니, 울산에서 구하지 못하는 폰케이스는 다 울산대학교 앞 바보사거리 노점상에 가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2022년 말. BJ군은 노점을 그만두었다. 내가 그가 처음 노점을 시작했을 때 1년 만에 실패할 것 같다고 예상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였고, 그는 끈질기게 노력해서 성공했다. 외제차에 명품으로 휘감은 그런 모습은 아니었지만, BJ군은 스스로를 늘 대견스러워했다.  그는 8년간 한자리에 있었기에,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신만의 신념이 있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불법노점상이 아니다. 그가 노점을 그만 둔 건 실패해서도 힘들어서도 아니다.  이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정식으로 사업자도 내고 물건 디자인도 직접 만들어서 판다. 상표등록도 했다. 3자 물류라는 시스템을 배워와서 중국 업체를 통해 물건을 제작하고, 네이버스토어에서 팔고, 배송하는 온라인 판매업을 시작했다. 아직 작은 규모긴 하지만 그는 어엿한 사장님이다. 언젠가 그 규모가 커져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알법한 사업체가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함부로 남의 꿈에 대해 안된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이건 지난 10년간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깨닫게 된 사실이다. 난 주변에서 무모한 도전을 할 때, 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플랜을 짜라고 말하는데, 이는 안정성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사업이라고 하는 영은 안정성보다는 도전정신과 선두주자가 될 용기 같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닐까?


언젠가 BJ군이 더 큰 사업체를 차려 사무실을 임대해 그의 사무실에서 자장면을 시켜 먹는 내 버킷리스트를 이룰 때까지, 그를 계속 응원한다.(여담이지만, 그는 내 버킷리스트를 듣고 사무실은 안빌릴거라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이 글은 그의 검수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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