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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롱 Mar 02. 2023

당근마켓 국룰

네고 좀 해주세요.

discount sir...interested.

누구나 똑같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한푼이라도 저렴하게 물건을 구매하고 싶어하는 욕구 말이다. 그가 나에게 보내온 첫 메세지는 "흥미있으니 할인 좀 해주세요" 였다.


새 제품을 살때 한푼이라도 저렴하게 사기 위해 온갖 카드와 쿠폰을 사용하고 가격비교 사이트를 경유해서 할인을 받듯이, 중고제품을 구매할 때  "네고 좀 해주시면 안됩니까?"라는 멘트는 국룰이다. 네고를 해주든 안해주든 일단 말하고 보는 것이다. 해주면 좋고 안해줘도 그만. 판매자가 기분 좋으면 만원 아니 오천원이라도 더 빼줄 수도 있는 인심에 기대는 것이다.



당시 판매자가 올린 scr2 사진


나의 첫 당근마켓 중고거래 물품은 자전거 였다. 네고 따윈 하지 않고 12만원에 올라온 그대로 구매했다.


이전부터 중고나라를 통해서 카메라 렌즈라던가 DSLR이라던가 태블릿PC라던가 각종 물품들을 많이 택배로 거래해왔지만, 당근마켓이라는 지역별 중고거래 플랫폼이 등장하고 부터는 직거래를 좀 더 선호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중고나라 시절에도 직거래를 하고 했는데, 약속해놓고 연락이 안된다거나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인간들이 많았던  내가 중고나라식 직거래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원인이기도 했다.)


자전거는 SCR2라고 불리는 검은색 바디에 적색 레터링이 새겨진 입문용 로드바이크 였는데, 자전거 '사서 운동도 하고 그래야지' 라는 마음과 함께 디자인이 너무 멋져 앞뒤 가리지 않고 판매자에게 연락해서 바로 거래를 하게 되었다. 로드바이크라고는 1도 타보지 않았던 터라, 타고 돌아오는 20분 거리가 많이 험난 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불과 3주만에 당근마켓에 올라갔다. 나의 짜리몽땅한 팔다리 기장은 L사이즈의 이 녀석을 타기엔 너무 짧았고 고통을 유발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울산에서 근로하는 외국인 노동자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고향에서 돈을 버는 것보다 한국의 H중공업에서 돈을 버는 것이 아마 상상을 초월한 급여였기에 가족들을 놔두고 여기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는 터였다. 그도 사람이기에 출퇴근을 위해 자전거가 필요했지만, 비싼 자전거를 구매할 순 없기에 절로 중고거래플랫폼을 찾았고, 내가 올린 매물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판매자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discount sir... interested.

판매자와 구매자의 밀당

그는 패기있게 네고를 요구했지만 판매자(나)는 단호했다. 할인안됨. 전화번호를 주면 사러갈게요. 집주소를 알려달라고 그가 타이핑을 치던 찰나에 이미 판매자는 네고 불가능. 만약 니가 네고 원하면 딴거찾아봐라. 라고 응대했다. 그의 네고 요청은 실패로 끝났다.



손짓발짓으로 거래장소를 안내해주었다.


그는 네고가 실패했지만 물건은 사러 왔다. 도보 10분거리에 위치한 거래장소까지 12만원짜리 자전거를 사기 위해 택시를 타고. 택시비의 지출이 그에게 있었기에, 그런 점을 감안해서  12만원짜리 자전거를 12만원에 팔았다(?).


택시타고 외국인이 직거래 장소까지 직접왔으니 네고를 해줄법도 하지 않냐고..?

그건 개인의 문제고, [당근마켓 직거래는 구매자가 내집 바로 앞에 오면 베란다에서 구매자가 온걸 확인하고 나간다] 라는 신조를 가진 나에겐 그런 이유로 네고를 해줄 이유따윈 없었다.


결국 이 이야기에서 기분좋은 엔딩이나 네고를 해준 감격스러운 이야기 따위는 없다. 당근마켓을 통해 나는 네고 없이 물건을 구매했고, 네고없이 물건을 산가격에 팔았다. 네고 시도가 항상 먹히는 건 아니다.




당근마켓에서는 네고는 국룰이다.

다만, 네고를 해주는게 국룰이 아니고, 네고를 시도한다는 게 국룰이니, 일단 "깍아주세요...제발" 한번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나는 네고 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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