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또 다른 이름, 책임
이번 글은 ‘선택과 책임 그리고 의무’라는 글과 ‘선택의 무게'에 이어 3편쯤 되지 않을까 싶다. 본의 아니게 '선택'과 '책임'이라는 주제로 글을 몇 편 써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임을 진다는 것 그리고 그 책임을 다 하는 것에 관해 어떤 판단의 기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책임은 법적 책임, 도덕적 책임, 사회적 책임, 직업적 책임, 개인적 책임, 집단적 책임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일부 책임은 법적 제재를 동반하며, 다른 책임은 법적 강제력이 없더라도 사회적 비난을 초래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사회적 규범으로서의 책임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도덕적 책임과 개인적 책임에 초점을 맞춰 보고자 한다. 또한 이를 통해 책임감이 개인의 행동과 사회적 관계 형성에 주는 영향과 심리학적 관점에서도 그 동기를 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판단된다.
책임은 그 책임을 질 수 있을만한 수준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같은 논리는 도덕적 책임에도 적용된다고 본다. 그것은 개인의 양심, 윤리적 원칙, 또는 사회적 통념에 기반한 도덕적 가치 기준에 따라 행동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법적 강제력이 없더라도 개인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행동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친구가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상황을 생각해 보자. 진실을 말하는 것은 가족의 권리를 존중하는 도덕적 선택일 수 있지만, 친구의 신뢰를 지키는 것도 중요한 윤리적 의무이다.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거짓말은 나쁜 행위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어떤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악을 행사할 수도 있고, 반면 다른 사람에게는 상대적인 악을 행사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정당화될 수 있는 부분이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판단력은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서 발현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판단 하에 절대 악과 상대 악을 분별하는 것도 여러 가지 해악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해악이 결정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도덕적 책임은 절대적 선악과 상대적 선악 사이에서 갈등을 유발하며,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타인의 권리, 감정, 상황을 고려한 배려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심리학적으로 도덕적 책임은 사회적 계약 이론과 연관된다. 이 이론은 개인이 상호 신뢰와 사회적 규범을 바탕으로 행동할 때 공동체의 안녕과 개인의 도덕적 정체성이 강화된다고 본다. 예컨대, 직장 동료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 의무를 넘어 사회적 신뢰를 유지하는 계약의 일환이다. 이러한 신뢰는 내면적 동기를 자극하며, 이는 자기 결정성 이론의 핵심 요소인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과 연결된다. 자원봉사자가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경우, 이는 사회적 기여에 대한 만족감(내면적 동기)과 타인에 대한 윤리적 의무(도덕적 책임)의 결합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거짓말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것이 설령 착한 거짓말이라도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신용을 기본으로 한 사회에 속해 있다. 서로가 서로를 믿는 신뢰 사회라는 것이다. 신뢰는 도덕적 책임의 핵심 동력이다. 신뢰는 상대방이 자신의 기대에 부합하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 믿음에는 인간의 관계성과 자율성을 기반으로 동작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기대에 부합한 상대방의 행동이 '관계성'이고 상대방을 믿는 자신의 의지를 '자율성'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자율적인 의사를 표현하며 상호협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뢰는 작은 믿음의 축적을 통해 형성된다. 예를 들어 매일 동료와의 약속을 지키는 작은 행동이 쌓여 신뢰를 구축한다. 그러나 신뢰는 단 한 번의 배신으로 무너질 수 있다. 오랜 친구가 중요한 비밀을 누설하거나 직장에서 동료가 약속을 어기면 신뢰는 급격히 손상된다. 이는 신뢰가 도덕적 책임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그 취약성을 드러낸다. 신뢰는 1초가 쌓여 1분이 되고, 1분이 쌓여 1시간, 1일, 10일, 100일, 1년이 되듯 점진적으로 형성되지만, 단 한순간의 배신으로 무너질 수 있다. 상대방을 향한 신뢰나 자신을 향한 신뢰는 한결 같이 작은 믿음들의 합인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뉴스에서도 “이럴 수가…수십 년 친구의 배신”라는 제목의 뉴스를 접하곤 한다. 수십 년의 세월도 하루가 쌓여서 되었을 것인데,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쌓기는 오래 걸리고 힘들어도 무너뜨리는 것은 한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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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책임은 자신의 행동과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건강 관리, 재정 관리, 시간 관리, 대인관계 관리 등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하는 것은 건강에 대한 개인적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이는 외부의 강제 없이 내면적 동기, 즉 건강한 삶에 대한 욕구에 의해 지속된다. 또 다른 예로, 대학생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학생은 시험 준비를 위해 학습 계획을 세우고, 아르바이트 시간을 조정하며, 친구와의 약속을 적절히 관리한다. 이러한 선택은 관계성과 자율성을 통해 개인적 책임이 발휘되는 사례이다. 개인적 책임은 자기 결정성 이론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 이론은 자율성(스스로 행동을 선택하는 능력), 유능성(목표 달성에 대한 자신감), 관계성(타인과의 소속감)을 통해 내면적 동기가 강화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재정 관리를 위해 저축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자율성(스스로 계획을 세움), 유능성(계획을 실행할 능력), 관계성(가족의 안정적 미래를 위한 노력)을 반영한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은 내면적 동기가 외부 보상보다 강력한 행동 동기임을 강조하며, 개인적 책임이 자기 주도적 삶의 핵심임을 밝힌 바 있다. 개인적 책임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도 연결된다. 매일 아침 30분씩 책을 읽는 습관을 유지하는 사람은 점차 자신에 대한 신뢰를 쌓으며, 이는 유능성 요소를 통해 내면적 동기를 강화한다. 또한 매일매일의 작은 목표 달성으로 인해 자기 효능감이 생겨 어떤 목표든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반복되는 작은 목표가 곧 특정상황에서의 큰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실천이 문제다.
도덕적 책임과 개인적 책임은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한다. 도덕적 책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윤리적 의무를 강조하며, 개인적 책임은 자기 주도적 행동을 통해 내면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환경 보호를 위해 일회용 제품 사용을 자제하고 재활용을 실천하는 사람은 도덕적 책임(환경에 대한 윤리적 의무)과 개인적 책임(스스로의 행동을 관리)을 동시에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사회적 계약 이론(사회적 신뢰 유지)과 자기 결정성 이론(내면적 동기의 지속)을 통해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위로부터 오는 강제력도 아니고 옆에서 오는 간섭과 잔소리도 아니고 밑에서 달려드는 도전과 반발도 아니다. 오롯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기반으로 도덕적 가치와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점을 개인적 차원, 즉 자신의 내부에서 시작하여 외부로 확장하여 책임감의 범위를 점진적으로 넓히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개인의 내면적 신념과 가치 확인은 타인과의 관계성과 자율성을 통해 비로소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책임감은 단순히 의무를 다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이는 내적 여유와 확장된 사고방식을 요구하며, 개인과 사회를 모두 풍요롭게 한다. 진정한 책임감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내면적 역량과 그 가치를 믿는 신념이 지니고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의 가치는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