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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결정론

태어난 곳이 중요하다.

by 닥터브룩스

또다시 '총, 균, 쇠'를 꺼내 들었다.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다 보면, 우리가 우연히 태어난 지리적 위치가 인간의 우월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된다. 이는 유전자의 우수함이나 개인의 뛰어난 능력 때문이 아니다. 단지 특정 환경적 조건들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결과일 뿐이다. 이러한 조건을 받아들인 사람은 자연스럽게 우월성을 갖춘 존재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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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Lummi.aiⓒMariana Pedroza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같은 표현으로 계층을 나누는 논의는 본질을 흐릴 뿐이다. 수저의 색깔은 개인의 우수함이나 열등함을 반영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연의 산물이며, 운 좋게 특정 환경에서 태어난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종종 착각에 빠지기 쉬운 존재다. 마치 자신이 우월한 유전자나 특별한 존재감을 타고난 것처럼 오해한다.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모든 것은 우연과 행운의 결과임을 인정하고, 겸손한 자세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원리는 사회나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예컨대, 조직 내에서의 성공을 살펴보자. 어떤 구성원이 뛰어난 능력과 매력적인 외모를 겸비했다고 가정해 보자. ‘능력’과 ‘외모’는 성공의 핵심 요인으로 여겨지지만, 이는 주로 주관적 판단과 우연에 기반한다. 그는 상사의 주목을 받아 승진 기회를 얻고, 조직 내에서 빠르게 높은 위치에 오른다. 과연 그의 성공은 전적으로 그의 능력 덕분일까? 능력은 객관적 사실로 보이기 어렵다. 주관적 판단이 크게 개입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모는 어떨까? 외모 역시 어느 정도 객관적 기준이 존재할 수 있지만, 주관적 평가가 강하게 작용한다. 결국, 능력과 외모 모두 우연과 행운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헤일로 효과(halo effect, 후광효과)’로 설명한다. 외모나 첫인상이 좋은 사람은 능력과 성격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출처: Nisbett & Wilson, “The Halo Effect,” Cognitive Psychology, 1977). 가령, 외모가 준수한 직원이 상사의 호감을 얻어 승진 기회를 쉽게 얻는 경우는 흔하다. 이는 객관적 능력이 아니라 주관적 인식과 우연이 작용한 결과다.

더 나아가 능력의 바탕이 되는 요소들을 분석해 보자. 뛰어난 학업 성취, 원활한 의사소통 능력, 부드러운 성격, 건강한 체력, 부유한 가정환경 등은 소위 ‘능력’이라 불리는 것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얻어진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가령, 어떤 가정에서 태어날지는 누구도 선택할 수 없다. 태어나 보니 부유한 가정의 일원인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외모 역시 마찬가지다. 외모는 노력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주어진 선물과 같다. 우연적으로 얻어진 화려한 포장지 같다고나 할까.


조직 내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과정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회사생활에서 흔히 ‘라인을 탄다’는 표현을 듣는다. ‘라인을 탄다’는 표현은 네트워크나 기회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예컨대, 상사의 신뢰나 영향력 있는 멘토를 만난 사람은 승진의 궤도에 오른다. 하지만 이는 노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특정 프로젝트에 배정되거나, 우연히 상사와 좋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계획된 결과가 아니라 운이다. 이 ‘라인’이 튼튼한 동아줄이냐, 썩은 동아줄이냐에 따라 승진의 속도와 방향이 달라진다. 일단 적절한 라인을 타면, 그 흐름을 따라 비교적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주변에서는 이런 사람을 알아서 ‘키워준다’는 인식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올라간 성공이 과연 온전히 자신의 능력 때문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흔히 “운도 실력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사람은 점차 자기 객관화를 잃고 자기 합리화에 빠지기 쉽다. 이 과정에서 인지부조화나 자기 편향, 심지어 “나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비현실적인 다짐 같은 심리적 오류가 동반되기도 한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이를 ‘결과 편향(outcome bias)’이라 부르며, 성공의 원인을 과도하게 개인 능력에 돌리는 경향을 지적했다. (출처: 생각에 관한 생각, 2011). 이는 성공한 사람은 이를 자신의 능력으로 여기며 자기 합리화에 빠진다. 한 고위 임원이 자신의 성공을 ‘열심히 일한 결과’로 정당화하지만, 초기 기회나 네트워크가 없었다면 그 자리까지 오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예롤 들어 볼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운 좋게 좋은 지리적, 사회적 환경에서 삶을 누리고 있다면 그 자체에 감사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 균, 쇠’에서 제시한 지리적 결정론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그의 지리적 결정론은 성공이 유전자나 능력이 아니라 환경과 우연에 좌우됨을 일깨운다. 금수저든 흙수저든, 조직 내 승진이든, 능력과 외모의 평가든, 모두 지리적·사회적 행운의 산물이다. 환경과 우연이 인간의 성공과 문명의 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은 이를 자신의 우월성으로 착각하며 자기 합리화와 인지부조화에 빠진다. 이를 극복하려면 자신의 위치를 겸손히 성찰하고, 운이 준 기회에 감사해야 한다. ‘총, 균, 쇠’는 문명의 역사를 넘어, 우리의 삶과 성공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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