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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관계와 경험의 집합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

by 닥터브룩스

“지금 이야기하는 우리들의 연상세계도 그렇습니다만 나는 ‘나’의 정체성이란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겪은 일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난 사람과 겪은 일들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나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과 일들로부터 격리된 나만의 정체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관계다’를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독방은 내게 최고의 철학 교실이었습니다.”

―『담론』, 신영복 저


나는 오늘날 나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은 어떻게 확립되는지, 그리고 그 정체성은 올바른 것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저자가 말하는 ‘겪은 일들’이 곧 경험일 것이고, 개인적인 아픔이 개입된 편견조차 결국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 판단의 준거틀을 구성하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정체성은 관계와 경험의 집합체라고 생각한다. 정체성을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겪은 일들의 집합'으로 정의하며, 이를 '나는 관계다'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이 관점은 정체성이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와 경험의 축적임을 강조한다. 어린 시절 친구와의 우정, 가족과의 갈등, 직장에서의 성공과 실패 등은 모두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는 퍼즐 조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들은 단순한 기억을 넘어 나의 가치관, 판단 기준, 행동 방식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인간의 정체성이 사회적 상호작용과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고 보았다. 그의 정체성 발달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다양한 삶의 단계에서 관계와 경험을 통해 자아를 정의하며, 이는 특히 청소년기와 성인 초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한다. 즉, 정체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와 경험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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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Lummi.aiⓒRicardo Matos


또한 경험과 편견은 곧 판단의 준거틀로서 작용할 수 있다. 저자는 개인적인 아픔이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언급하며, 이는 판단의 준거틀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신뢰를 저버린 경험은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편견조차도 정체성의 일부로, 우리의 판단 기준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가령 어린 시절 가난을 경험한 사람은 돈에 대한 태도나 소비 습관에서 그 흔적을 드러내고, 이는 편견이 단순히 부정적인 오해가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된 나만의 준거틀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가 언급한 '사람을 중심에 두는 준거틀'은 기계적이거나 수치적인 기준이 아닌, 인간의 경험과 감정을 우선시하는 관점이다. 예를 들어 도시의 복잡함을 평가할 때 인문학적 준거틀은 건물의 높이나 교통량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 관계를 중심에 둔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복잡성이 증가할수록 사람 중심의 기준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정체성이 경험과 관계의 산물이라면, 그 정체성이 '올바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의 정체성이 내 삶의 맥락과 조화를 이루고, 타인과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정체성이 특정 경험(실패나 상실)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다면, 이는 새로운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 반대로, 다양한 경험을 포용하며 열린 태도로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사람은 더 유연하고 건강한 자아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정체성을 '자아 이해(self-understanding)'로 정의하며, 이는 개인의 내러티브와 사회적 맥락이 얽혀 형성된다고 본다. 즉, 나의 정체성이 올바른지는 내가 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 이해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에 달려 있다. 저자의 독방 경험은 이러한 자아 이해를 심화하는 계기였다. 독방이라는 극단적 격리 속에서 그는 자신을 둘러싼 관계와 경험을 성찰하며, '나는 관계다'라는 깨달음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복잡한 사회는 정체성 형성에 새로운 도전을 제시한다. 디지털 기술과 소셜 미디어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 겪는 일의 범위를 확장했지만, 동시에 피상적인 관계와 정보 과부하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에서 보이는 '이상적인 나'는 실제 경험과 괴리된 정체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은 앞서 말한 '사람 중심의 준거틀'을 잃어버릴 위험을 낳게 된다. 디지털 공간에서 우리는 종종 수치화된 '좋아요'나 팔로워 수로 자신을 평가하며, 진정한 관계와 경험을 간과하기 쉬워진다. 또한,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는 정체성의 안정성을 위협할지도 모른다. 직업, 거주지, 사회적 역할이 자주 바뀌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AI와 자동화로 인해 직업이 바뀌는 상황에서, 한때 자신을 '엔지니어'로 정의했던 사람은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 이 역시 정체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관계와 경험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일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은 내가 만난 사람과 겪은 일들의 집합이며, 이는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의 산물이다. 저자의 '나는 관계다'라는 말은 정체성이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본다. 개인적인 아픔이나 편견조차도 경험의 일부로, 우리의 판단 준거틀로 형성하며 작용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디지털 환경은 정체성 형성에 새로운 도전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람 중심의 인문학적 준거틀을 유지하며, 경험과 관계를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 나의 정체성이 올바른지는 그것이 나와 세계, 타인과의 조화를 얼마나 잘 이루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독방이 신영복교수에게 최고의 철학 교실이었다면, 우리가 삶 속, 특히 일상에서 겪는 경험 역시 우리를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매일의 교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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