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라앉을 것인가, 다시 부상할 것인가.
2025년 6월 9일에 시작한 애플의 연례 개발자 행사인 WWDC(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 2025가 끝났다. 일주일간 이어진 행사는 개발자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비개발자들도 관심을 가지는 행사다. 그런 행사가 올해는 예년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듯하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혁신적 '그' 변화나 시장을 뒤흔들 만한 '그' 발표가 부재했고, '그' 부재가 뚜렷이 드러나면서 애플의 미래에 대한 회의론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애플이 하루빨리 '이'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출처: apple.comⓒ2025
현재는 인공지능(AI)이 모든 기술의 중심에 자리 잡은 시대다. 애플이 앞서 언급된 '그'와 '이'인 AI 분야에서 뒤처진다는 평가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애플 역시 최근 몇 년간 AI를 언급해 왔지만, 더 이상 애플의 변화가 시장을 충격으로 몰아넣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애플의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앞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애플은 새로운 기술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기술이 어느 정도 성숙한 시점에 맞춰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입해 왔다. 대화면 전략, 풀스크린 경험, 고화소 카메라 기능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전략은 지금까지 꽤 성공적이었다. 늦게 시장에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소비자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판매 실적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예를 들어 대화면 시장에 늦게 뛰어든 아이폰6와 플러스 모델은 2014년 출시 이후 약 2억 2천만 대를 판매하며 초대박을 쳤다. 이렇듯 애플은 항상 뒷심이 강한 회사였다.
애플은 생태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이튠즈를 필두로 한 음악 생태계를 설계했고, 이후 애플 뮤직으로 발전했다. 2001년 1월, 스티브 잡스가 아이튠즈를 발표했으며, 2003년에는 뮤직 스토어를 도입해 0.99달러에 음악을 구매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애플은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영혼’을 먼저 구성한 뒤,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몸체'인 하드웨어를 만들어냈다. 아이팟을 대세화시키기 위한 음악 생태계 확장 전략이었다.
스마트폰 앱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앱스토어는 2007년 아이폰 출시 이후 2008년 공식 출범했다. iOS SDK를 기반으로 한 앱스토어는 개장 첫 주에 1,000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대박을 쳤다. 현재 애플 앱스토어에 등록된 앱 수는 약 210만 개에 달한다. 아이튠즈와 달리, 아이폰은 하드웨어를 먼저 출시한 뒤 소프트웨어를 준비한 전략이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스티브 잡스는 통제력을 강조했고, 이는 애플이 폐쇄적인 앱 정책을 고수했던 이유다. 그러나 외부 개발자들의 반발과 내부 경영진의 설득으로 앱스토어가 탄생했고, 이는 스마트폰 대세화를 위한 앱 생태계 확장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애플 앱스토어 전략도 유럽연합에 의해서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기기 생태계도 빼놓을 수 없다. 애플 기기는 애플 계정 중심으로 자동 연결되며, ‘Continuity’ 기능을 통해 Mac, iPhone, iPad, Apple Watch, AirPods, Apple TV, Apple Vision Pro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원활한 작업 인계, 파일 공유, 끊김 없는 스트리밍 경험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기기 대세화를 위한 확장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유기적 결합을 통한 대세화 전략이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AI 생태계를 잘 준비하지 못한 점이 뚜렷해 보인다. 애플이 2024년부터 ‘Apple’s On-Device and Server Foundation Language Models’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신통치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25년에는 더 개방된 모델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실패라고 단정 짓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애플 밖의 AI 세상은 이미 폭풍 성장을 거듭하고 있어, 점점 더 애플에게는 가혹한 환경이 되고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지 않는 한, 애플의 AI 정책은 실패했다고 보는 견해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또한 예전 앱스토어 구축에 큰 역할을 해줬던 개발자들이 적극적으로 애플 기기 안에서의 AI 생태계 구축에 발 벗고 나설지도 의문이다. 굳이 애플이 아니더라도 경우의 수는 많다. 혹시 그때 OpenAI가 출시한 GPT Store를 보면서, "아 저건 우리가 했어야 했는데∙∙∙" 하며 애플이 그 생각을 하면 탄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AI 전략을 낙관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첫째, 생태계 전략 및 확장 경험이다. 애플은 혁신이 없다는 평가를 뒤집은 경험이 많다. 대화면 전략을 늦게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폰6와 플러스 모델이 2014년 출시 이후 약 2억 2천만 대를 판매하며 대박을 쳤다. 음악 생태계를 구축해 음악 감상 경험을 바꾸어 놓았고 스마트폰 앱생태계를 통해서 일상생활에는 없어서는 안 될 기가 되어 버렸다. 이제 늦은 감이 있지만 AI 앱 생태계 차례다. 이런 애플은 늘 뒷심이 강한 회사다.
둘째, 개발자 협력 관점이다. 애플은 개발자 지원에 강점이 있다. 개발자 사이트(developer.apple.com)는 항목별, 기기별로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발 문서와 영상도 풍부하다. 개발자 연례행사인 WWDC는 1983년부터 매년 개최되며, 전 세계 개발자와 경쟁사가 주목하는 행사가 되었다. 그만큼 앱생태계에서는 개발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현재 AI 서비스들도 OpenAI, Gemini, Perplexity, Claude 등도 LLM 서비스 개발을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 개발 SDK를 제공하고 있다. 왜냐하면 특정 한 회사가 200만 개가 넘는 앱을 모두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에게 있어서 반드시 3rd party 개발자들이 AI 관련 SDK를 활용해 애플의 AI 앱 생태계를 구축해 주는 것이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셋째, 기기 생태계의 강점을 들 수 있다. 현재 AI 서비스 기업들은 자신들의 AI를 지원할 전용 기기가 부족하다. OpenAI는 조니 아이브의 ‘io’를 인수했고(출처: Jony Ive to lead OpenAI’s design work following $6.5B acquisition of his company), 구글은 풀스택 AI 생태계를 가지고 있고 자사의 'Pixel' 기기를 통해 자체 모델 강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아직 기기 경쟁력이 약하다. 반면 애플은 이미 탄탄한 기기 생태계를 갖추고 있지만 풀스택 AI가 없다.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는 모양새는 아닐까.
스마트폰은 이미 인간의 필수품이 되었다. 필수품인 스마트폰에 AI를 잘 이식한다면, 그것이 곧 시장의 1등 제품이 될 것이다. 만약 스마트폰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AI 서비스 기기가 등장한다면, 애플의 영광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 이런 위기의식이 애플로 하여금 AI에 더욱 공을 들이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애플은 지금까지 생태계 구축과 확장, 개발자 협력, 기기 생태계의 강점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도해 왔다. AI 시대에도 이러한 전략적 강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AI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애플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며 적응할 수 있을지, 기존 생태계 전략을 AI와 어떻게 융합될지, 그리고 앞으로의 도전이 얼마나 성공할지가 관건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