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전달을 위한 자기만의 이해 방식
“해석학을 통해 리쾨르는 인간의 자기 이해가 ‘어떻게 ‘ 일어나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어떻게’에 해당하는 것이 해석이요, 그 해석을 주제로 삼아 연구하는 학문이 해석학이다. 이해의 문제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해석학은 인문학적인시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해는 앎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석이 낳는 앎은 인간의 자기 이해 또는 삶의 이해를 다루는 것이므로 자연과학적 앎과 다르다. 인간의 자연과학의 지식을 통해서 자기를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은 뇌 과학이나 진화생물학 등 밖에서 주어진 지식이 아니라 자기의식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한다.”
-폴 리쾨르의 해석의 갈등 읽기, 양명수 지음
폴 리쾨르는 해석학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 곧 자기 이해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여기서 ‘어떻게’에 해당하는 것이 해석이며, 이를 연구하는 학문이 해석학이다. 해석학에서 말하는 이해는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자기의식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세계를 해석하는 앎이다. 이는 뇌과학이나 진화생물학처럼 외부에서 주어진 지식과는 다르다. 해석은 단순히 자료를 변환하는 기술이 아니라, 경험과 맥락 속에서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이다.
해석과 분석은 흔히 함께 쓰이지만 목적과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해석은 현상이나 언어 표현의 의미를 밝혀 이해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를 들어 외국어 해석은 텍스트를 모국어로 이해하게 하고, 법률 해석(유권해석)은 규범의 뜻을 분명히 하여 사건에 적용하며, 예술 작품 비평 역시 창작 의도와 맥락을 해독한다. 반면 분석은 대상을 구성 요소로 분해해 구조와 성질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분석이 '발견 중심'이라면, 해석은 '의미 구성 중심'이다. 분석이 구조적 전제를 마련하면, 해석은 그 위에 의미를 조직하고 설명한다. 이 관계를 알면 대상을 다룰 때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계속 이어야 하는지 분명해질 것이다.
해석은 본질적으로 해석자, 즉 해석하는 사람의 경험에 뿌리를 둔다. 해석하는 사람은 자신의 관점, 가치관, 언어 습관, 과거 경험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해석을 위해서는 자기 이해가 필수적일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중시하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한계는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면 해석은 쉽게 편견이나 공허한 일반론으로 흐르게 된다. 반대로 자신의 전제를 투명하게 인식할수록 해석의 논리와 언어를 정합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해석–자기 이해–가치 전달'은 따로 떨어진 단계가 아니라 하나로 이어지는 의사소통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Lummi.ai ⓒ Nika
예를 들어 이 흐름을 상품 이해에 적용해 보자.
원두의 산지, 고도, 원두 가공 방식, 로스팅, 추출 변수, 감각 노트 등을 분석하면 각 요소가 맛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구조로 드러낼 수 있다. 여기에서 해석자는 “이 원두의 시그니처는 고도차가 큰 산지의 밝은 산미를 미디엄 로스트로 단맛과 신맛의 밸런스를 끌어올린 맛”이라는 의미 구조를 세울 수 있다. 자기 이해 단계에서는 '균형을 우선하는가, 개성을 우선하는가' 같은 자신의 취향과 철학을 자각할 수 있다. 가치 전달 단계에서는 '산뜻한 산미를 일상적으로 즐기고 싶은 분께, 우유와도 잘 어울리는 깔끔한 단맛'처럼 소비자의 언어로 설명하며, 테이스팅 노트나 브루잉 가이드로 원두를 선택하여 맛을 볼 수 있는 사용자 경험의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
디지털 제품 기획에서도 비슷하다. 가입, 초기 설정, 핵심 작업, 성과 확인 단계에서 사용자 이탈 지점을 분석하고, 반복 요청 기능과 장애 요인을 식별한다. 예를 들어 초기 가치 인식이 늦어 이탈이 발생한다면 해석은 '이 제품의 핵심 가치는 3분 내 성취 경험 제공'이라는 의미 정의로 이어진다. 자기 이해를 통해 '빠른 피드백 전달이 약속임'을 확립하고, 가치 전달은 샘플 데이터 자동 주입, 3단계 가이드 투어, 즉시 성과 지표 표출 같은 설계로 구체화될 수 있다. 그래서 메시지는 '설정보다 사용자 경험이 먼저'라는 일관된 언어로 전달되게 할 수도 있다.
이렇듯 해석은 텍스트나 사물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미를 타자에게 건네는 다리 역할을 한다. 자기 이해는 그 다리를 지탱하는 기초이고, 분석은 다리가 건너갈 지형을 측량하는 작업이다. 세 요소가 순차적으로 이어질 때 메시지는 힘을 얻고 설득이 경험으로 전환된다.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이자 기획과 전략 수립의 도구다. 시장 포지셔닝, 브랜딩 톤 앤 매너, 고객 여정 설계, 정책 메시지 구성 등에서 분석–해석–자기 이해의 정렬은 일관성과 설득력을 높인다.
다만 이 과정에도 함정이 있다.
과도한 분석은 의미 구성을 지연시켜 타이밍을 놓치게 하고, 자기 이해의 빈곤은 해석을 관습적 문구로 탈색시킨다. 또한 가치 전달이 수용자의 언어를 외면하면 의미는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실천 현장에서는 통용가능한 적정 수준의 분석, 해석 가설의 설정과 검증, 피드백을 통한 반복적 보정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순환 구조로 운영하게 되면 해석은 시간에 따라 정교해지는 살아 있는 체계가 될 것이다.
결국 가치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면 “그저 좋다”는 단정만으로는 부족하다. 분석은 구조를 드러내고, 해석으로 의미를 구성하며, 자기 이해를 통해 관점과 언어를 정합적으로 선택해야만 한다. 이렇게 해야 대상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뿐 아니라, 그 의미가 누구에게 어떤 장면에서 유효한지를 제안할 수 있다. 해석과 자기 이해, 가치 전달은 분리된 능력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 속에서 서로를 강화시켜 주는 도구이며, 소통과 기획 전반을 견인하는 실천적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