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론, 기억 그리고 정리

추상적 탐구 방법

by 닥터브룩스

머릿속이 안개처럼 뿌옇다는 느낌, 무언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생각의 윤곽 앞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분명 무언가 할 말이 있고, 풀어내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것이 명확한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그저 '노이즈'처럼 흩어져 머릿속을 부유하는, 마치 표상처럼 말이다. 종종 이런 상태를 '생각이 없다'거나 '정리가 안 된다'라고 치부해 버리지만, 어쩌면 이것은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구체화'되기 직전의 순수한 '잠재적인'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안개 같은 상태가, 이 '인지적 노이즈'를 바라보며, '생각'이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이 혼돈 속에서 어떻게 명료함을 길어 올릴 수 있을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이런 생각의 과정들을 '추론', '기억' 또는 '정리'라는 요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추론'이란 어떤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짐작이며, 이는 구체적인 사실에서 일반적인 원칙을 이끌어내는 '추상화'의 과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반대, 즉 추상적인 잠재력(노이즈)을 명확한 '구체화'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생각에는 근본적으로 수많은 노이즈가 끼어있는데, 이런 노이즈를 다루는 명확한 방법이나 방향을 잘 모르는 것처럼 느낀다. 이 지점에서 '기억'의 역할을 떠올렸다. 추론이든 구체화든, 그 모든 정신적 작용의 원재료는 결국 '기억'이라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학습, 경험, 사유, 오감을 통해 축적된 모든 것이 '기억'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기억이란 재료가 없다면 어떠한 추론도, 어떠한 구체화도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Gemini_Generated_Image_vq3honvq3honvq3h.png


재료가 되는 '기억'과 가공 행위인 '추론'을 연결하고 제어하려면, '정리'라는 요소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추론은 저장된 기억을 특정한 논리(방향)에 따라 가공하는 행위'다. 그리고 이 가공을 통해 나온 결과를 다시 '기억' 속에 넣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골라내는 '정리'의 단계가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정리된 결과는 다시 기억으로 들어가고, 이 강화된 기억은 다음번 추론의 더 나은 재료가 된다. 이것은 '기억에서 불러내어 추론하고 추론한 결과를 정리하여 다시 기억에 넣는' 끝없는 되먹임(Feedback Loop) 과정을(마치 학습의 과정처럼) 거치게 된다. 겉보기에는 단순하고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이 순환이야말로, 인간의 뇌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더 나은 사고 모델을 구축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순환 시스템'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지능이란 어떤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이 순환을 끊임없이 수행하는 '과정' 그 자체일 것이다. 이러한 '인지적 순환 시스템'의 원리는 놀랍게도 오늘날 가장 진보된 기술과 태고의 자연 현상 속에서 동일하게 발견됨을 알게 될 것이다.


첫 번째 사례는 우리가 잠시 언급했던 '디퓨전 모델(Diffusion Model)'이라는 이미지 생성 AI 기술이다. 이 모델의 작동 방식은 우리의 사고 과정을 그대로 빼닮았다. 디퓨전 모델은 완전한 무작위 '노이즈' 이미지에서 시작한다. 이는 우리가 느꼈던, 가능성만 가득한 '인지적 노이즈'와 같다. 이 AI가 이 혼돈 속에서 '눈 오는 거리의 빨간 차'와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프롬프트'라는 명확한 '방향(의도)'과, 이전에 학습한 방대한 '기억(훈련 데이터)'을 바탕으로, 노이즈를 단계적으로 '정리(제거)'하는 알고리즘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AI가 처음부터 완성된 이미지의 청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AI는 그저 매 단계에서 '이 노이즈가 내 기억 속의 "빨간 차"와 더 비슷해지려면 어떻게 정리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할 뿐이다. 즉, 명확한 이미지는 계획에 따라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노이즈를 점진적으로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창발(Emergence)'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억'은 방향을 제시하는 가이드가 되고, '정리'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실제적인 행위가 된다는 점이다.


두 번째 사례는 인공지능의 영역을 넘어, 수십억 년간 작동해 온 '자연'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바로 '진화(Evolution)'이다. 진화의 메커니즘 역시 본질적으로 동일한 피드백 순환이다. 여기서 '노이즈'는 유전자의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에 해당한다. 이는 어떤 방향성도 없는 순수한 잠재적 혼돈이다. 그리고 '기억'은 부모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체'라는 검증된 데이터베이스이다. 그렇다면 이 무작위적인 노이즈를 '정리'하는 원리는 바로 '자연선택'이다. 특정한 환경(방향성) 속에서, 생존과 번식에 불리한 돌연변이(불필요한 노이즈)는 '정리'되어 사라지고, 유리한 돌연변이(유의미한 신호)만이 살아남아 다음 세대의 '기억'(유전체)으로 저장된다. 이 과정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새롭게 '정리'되어 저장된 유전체는 다시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추론(적응)'의 과정을 거치고, 또다시 돌연변이라는 '노이즈'와 자연선택이라는 '정리'의 순환을 반복한다. 이 단순하고 지루해 보이는 수억 년간의 '되먹임' 과정 속에서, 단세포 생물이라는 원시적 '기억'은 눈, 날개, 그리고 인간의 뇌와 같은 경이롭고 구체적인 '지혜'를 창발 해낸 것이다. 진화가 그랬던 것처럼.


AI와 자연, 이 두 상이한 분야의 거대한 시스템은 우리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고도로 복잡하고 구체적인 지혜는, 명확한 청사진에서 단번에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혼돈(노이즈)을 명확한 '방향성'(의도 또는 환경)을 가지고 끊임없이 '정리'하는 피드백 순환 속에서만 탄생한다는 것이다. 결국 '생각한다'는 것은 명료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반짝이는 능력이 아니라, 머릿속의 혼돈을 '정리하는'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는' 행위 그 자체이다. 칸트가 주장한 표상, 즉 머릿속의 이미지를 가져와 '생각'이라는 처리 과정을 통해서 정리하는 것처럼 말이다. 종종 머릿속의 '노이즈'로 복잡한 머릿속이 되는 이유는, 디퓨전 모델이나 자연선택과 달리, 이를 구체화할 '방법'이나 '방향'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나, 그 '방법'과 '방향'을 너무 거창하게 오해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방향'이란, AI의 프롬프트나 자연의 생존 조건처럼, 스스로에게 던지는 '명확한 질문' 또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머릿속이 안개처럼 뿌옇게 되었을 때, '왜 이렇게 답답하지?'라는 막연한 물음은 그저 더 많은 노이즈를 만들 뿐이다. 대신 '지금 이 답답함을 구성하는 단 하나의 감각은 무엇인가?' 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은 무엇인가?'라고 자문하는 것이 바로 자신만의 '프롬프트'가 될 것이다. 이 명확한 질문이 혼돈에 방향성을 부여하는 첫 번째 '정리'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방법'이란, 다른 무엇도 아닌 '정리'라는 '행위' 그 자체이다. 생각이 모두 '정리'된 후에야 비로소 글을 쓰거나 말을 할 수 있다고 믿지만, AI와 자연은 정반대로 말한다. '정리'하는 행위 자체가 곧 '생각'을 구체화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이다.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고 구체적인 실천은, 그 혼란스러운 노이즈 상태 그대로, 흰 종이에 '단 하나의 문장'을 단순한 행위인 '그저 적어보는 것'이다. 그 문장이 아무리 형편없고 조악하더라도 상관없다. 그 첫 문장이 바로 우리의 '인지적 노이즈'에 가해지는 '정리' 작업인 셈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렇게 적힌 문장은 더 이상 노이즈가 아니라 '기억'이 되어, 우리의 눈앞에 '구체화'된 재료로 존재하게 된다. 그저 단순하게 적게 된 문장이라는 새로운 '기억'이 '추론'을 이끌어내고, 다시 그것을 다시 문장으로 '정리'한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뇌를 똑똑하게 만드는 순환 시스템'의 실제적인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뇌가 똑똑해진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이 지루해 보이는 과정을 통해서 복잡한 머릿속이 좀 더 단순환된 머릿속이 될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혼돈 속에서 명료함을 창조해 내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배움과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