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맥락을 중요시하는 이유

맥락은 중요하다.

by 닥터브룩스
맥락(context)이라고 하는 것이 크게 보면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먼저 테스트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이 있죠. 텍스트가 생산되고 공유되고 소비되는 방식과 관련된 맥락이에요. 또 하나는 내가 텍스트를 대하는 방식과 이 사람이 텍스트를 대하는 방식, 즉 각자가 텍스트에 접근하는 맥락이 있어요. 이 두 가지가 사뭇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 유튜브는 책을 집어킬 것인가 / 김성우x한기호 지음




왜 말은 종종 오해받을까. 분명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같은 언어로 대화하고 있는데, 어째서 상대방은 자신이 의도한 바와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대화가 끝난 뒤 곱씹어보아도 자신의 단어 선택이 크게 잘못된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문제는 '말'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을 둘러싼 다른 무언가에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늘 '맥락' 속에서 살고 있다. 진부하게 들릴 수 있는 문장이야말로, 우리가 겪는 소통의 대부분의 문제를 설명하는 열쇠가 된다. 맥락이라는 거대한 용기(容器) 안에서 태어나고, 관계 맺고, 소통한다. 말과 글, 행동은 모두 그 용기의 모양에 따라 형태가 잡힌다. '불'이라는 한 글자의 단어가 붐비는 극장에서 외쳐질 때와, 연인과 함께 있는 벽난로 앞에서 속삭여질 때, 그 의미와 무게는 완전히 달라진다. 단어는 신호(Data)에 불과하지만, 그 신호를 의미 있는 정보(Information)로 바꾸는 것은 온전히 맥락의 힘이다.


그렇다면 이 '맥락'이란 놈은 대체 무엇인가. 단순히 대화가 일어나는 장소나 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게 봐서는 곤란할 것 같다. 맥락은 그 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그물망이다. 그것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객관적인 '외적 맥락'과, 내 안에 잠재된 주관적인 '내적 맥락'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외적 맥락이 대화하는 상대방, 주변의 소음, 사회의 문화적 규범이라면, 내적 맥락은 자신의 과거 경험, 현재의 감정 상태, 대화의 숨겨진 의도, 심지어 방금 전 마신 커피의 쓴맛까지 포함한다. 이 두 가지 맥락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지점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자신을 표현한다. 우리가 소통에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이 '맥락의 불일치' 때문이다. 자신의 내적/외적 맥락을 기반으로 A라는 의미를 전달했지만, 상대방은 자신만의 또 다른 맥락을 기반으로 A'로 해석해 버리는 것이다. 종종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다른 맥락' 속에서 홀로 외치고 있는 셈이다.


이쯤에서 맥락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맥락 속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하나의 비유를 가져올 수 있다. 만약 '삶'이 수영하는 사람이라면, '맥락'은 그 사람을 둘러싼 '물'이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첫째, 물 없이는 수영이라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 즉, 맥락 없이는 삶이라는 것이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맥락이라는 매개체 안에서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다.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는다는 행위조차, '지적 호기심', '업무의 필요성', '잠들기 전의 습관' 같은 수많은 맥락의 물결 위에 떠 있다. 고요한 방에 혼자 앉아 '맥락에서 벗어났다'라고 생각하는 순간조차, 그 '고요함'과 '고독' 자체가 강력한 맥락으로 작용하여 당신의 사고를 깊어지게, 혹은 외롭게 만든다. 결코 물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치명적인 질문이 하나 발생한다. 물이 있어야만 수영을 할 수 있다면, 결국 수영하는 사람(삶)은 물(맥락)에 의해 완전히 좌지우지되는 의존적인 존재가 아닌가. 거센 파도(맥락)가 밀어붙이는 대로 떠내려가야 하는 것이 운명인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의 삶은 맥락에 '의존'하지만 '종속'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놀라운 역설이 존재한다. 물에 의존하지만, 동시에 물속에서 독립적인 행위를 한다. 물에 떠밀려 다니는 코르크 마개와, 물을 가르며 나아가는 수영하는 사람은 엄연히 다르다. 수영하는 사람은 물의 저항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가고, 스스로 방향을 '선택'한다. 심지어 수영하는 사람이 팔다리를 저을 때마다 '물결'이 생긴다. 이 물결이 바로 삶이 맥락을 '창조'한다는 것의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말 한마디가 대화의 분위기라는 맥락을 바꾸고,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가 내일의 상황이라는 맥락을 새롭게 빚어낸다. 맥락에 영향을 받지만, 동시에 존재 자체가 다음 순간의 맥락이 된다. 이처럼 삶과 맥락은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고 생성하는, 역동적인 상호작용 그 자체다.


이 역동성을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맥락이라는 물을 흐르게 하고, 때로는 거친 파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매 순간 직면하는 '상황(Situation)'과 '조건(Condition)'이다. '상황'이 우리가 서 있는 무대 그 자체라면, '조건'은 그 무대 위에서 작동하는 구체적인 변수이자 제약이다. '회의에 참석 중이다'는 것은 상황이다. 여기에 '자신이 발표할 차례인데 자료가 없다'는 조건이 더해지는 순간, 그 상황은 완전히 극적인 맥락으로 돌변한다. 이 조건이라는 트리거가 맥락의 성격을 결정하고 선택을 강요한다. 어쩌면 '맥락 속에서 산다'는 말의 가장 깊은 의미는, 이처럼 매 순간 닥쳐오는 상황을 직시하고, 그 안의 조건을 따져보며, 그것을 수용할 것인지 혹은 거부하고 저항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러한 운명은 뇌의 작동 방식, 즉 심리학적 관점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심리학에는 '점화 효과(Priming Effect)'라는 것이 있다. 가령 누군가에게 '먹다'라는 단어를 먼저 보여주고(조건), 'SO_P'라는 빈칸을 채우게 하면(상황), 그 사람은 'SOAP(비누)'가 아닌 'SOUP(수프)'를 떠올릴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인간의 뇌는 이처럼 먼저 주어진 아주 사소한 맥락에 의해 다음 생각의 물길이 결정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이 미묘한 '조건' 하나가 자유의지라고 믿었던 '선택'에 강력하게 개입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맥락을 예측하고 해석하는 기계에 가깝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이 말한 '시스템 1' 즉, 직관적으로 빠르게 판단하는 뇌의 영역은, 사실 이 맥락 정보를 순식간에 처리하여 생존에 유리한 결론을 내리도록 진화한 결과라고 한다. 우리가 어떤 정보를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믿는 순간조차, 뇌는 이미 그 정보가 제시된 '틀(Frame)'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똑같은 수술의 성공률을 '생존율 90%'라고 말할 때(긍정적 맥락)와 '사망률 10%'라고 말할 때(부정적 맥락), 환자의 선택은 극명하게 달라진다. 정보는 동일하지만, 그 정보를 감싸는 맥락이 우리의 뇌신경망을 다른 경로로 활성화시켜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르게 한다. 인간의 뇌 자체가 이토록 맥락 의존적으로 진화해 왔다는 사실은, '선택의 운명'을 지녔음과 동시에 그 선택이 얼마나 맥락에 쉽게 흔들리는지를 증명한다.


이러한 맥락의 힘은 인간의 창의성이라는 영역에서 가장 극적으로 발현된다. 예술의 역사는 곧 맥락을 창조하고 전복시켜 온 역사다. 1917년 마르셀 뒤샹이 남성용 소변기에 'R. Mutt'라고 서명한 뒤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에 출품했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만약 그 소변기가 화장실 배관공의 창고에 있었다면(원래의 맥락), 그것은 그저 '데이터'로서의 소변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뒤샹은 그것을 '미술 전시회'라는 새로운 상황에 던져 넣고, '이것도 예술인가?'라는 도발적인 조건을 부여했다. 이 극단적인 맥락의 전환을 통해, '샘'은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 즉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되었다. 이 사례는 맥락이 단순히 우리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넘어, 그 맥락을 의식적으로 비틀고 재창조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발명'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뒤샹은 물(맥락)에 휩쓸린 것이 아니라, 물줄기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물결'을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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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917, 마르셀 뒤샹 '샘(Fountain)'


현대 사회로 넘어와, 이 맥락의 힘은 더욱 교묘하고 강력한 형태로 우리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매일같이 들여다보는 소셜 미디어나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을 생각해 보자. 이 알고리즘은 거대하고 강력한 기술적 '맥락'이다. 그것은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도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맥락을 생성하는 기계'다. 이 기계는 나의 과거 시청 기록, '좋아요' 클릭, 머문 시간(내적 맥락)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지금 나에게 보여줄 맞춤형 피드(외적 맥락)를 치밀하게 구성한다. 이것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물'이다. 이 물은 너무나도 편안하고 내 취향에 딱 맞게 설계되어 있어서, 그저 추천의 흐름대로 즐겁게 떠내려가기 쉽다. '좌지우지'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기서도 '선택'은 작동한다. 무심코 누르는 '클릭' 하나, 혹은 의식적으로 누르는 '관심 없음' 버튼 하나가 바로 그 물속에서 우리가 일으키는 '물결'이다. 그 작은 선택들이 알고리즘이라는 맥락을 미세하게나마 재조정하고, 다음 순간의 맥락을 바꾼다. 이 강력한 기술적 맥락 속에서도, 그것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거나, 의식적으로 저항하거나, 혹은 현명하게 이용하는 방식을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있다.


결국 '맥락'이라는 물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 물은 '상황'과 '조건'이라는 힘에 의해 끊임없이 요동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방향을 정하고 물결을 만들어야 하는 '선택의 운명'을 지닌 존재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겪는 소통의 문제, 관계의 어려움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저마다 너무나 다른 물속에서, 너무나 다른 물결을 일으키며 헤엄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분명해진다. 자신의 말의 뜻만 고집하며 상대방이 왜 이해하지 못하냐고 탓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대신, 지금 자신이 어떤 물(맥락) 속에 있는지, 그리고 상대방은 어떤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상대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의 '말'이 아니라 그가 처한 '맥락'을 보려 노력해봐야 할 것이다. 나아가, 내가 지금 일으키는 이 물결이 상대방에게는 어떤 파도가 되어 닿을지를 상상해야 한다. 그것이 맥락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함께 헤쳐나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수영법일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물속에서 어떤 물결을 만들고 있는가.

그저 떠내려가고 있는가, 아니면 힘차게 물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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