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권위와 자존심

권한에는 책임 뒤따른다.

by 닥터브룩스

조직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우리는 종종 '쿨한 리더'라는 배역을 맡은 연기자들을 마주한다. 그들은 타운홀 미팅이나 커피 챗 같은 캐주얼한 자리에서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여러분이 시키는 일만 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기존의 관습에 얽매이지 말고, 주도적으로 사고하고 과감하게 도전하라. 실패해도 좋다. 그 책임은 내가 진다." 이 말은 듣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한다. 드디어 자신도 부품이 아니라 하나의 주체로서 일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주문한 '주도성'과 '자율'을 실제로 발휘하는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거대한 벽에 부딪히게 된다.




어떤 구성원이 리더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비효율적인 보고 체계를 간소화하는 프로세스를 독자적으로 도입했다고 가정해 보자. 혹은 팀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 부서와 직접 협의하여 새로운 솔루션을 가져왔다고 해보자. 상식 적으로라면 칭찬받아 마땅한 이 '주도적 행위' 앞에서, 리더는 미묘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묻는다.

"왜 그걸 네 마음대로 결정했지?"

그 순간 공기는 차갑게 식어버린다.

"자율적으로 하라면서요?"

라고 반문하고 싶지만, 돌아오는 것은 "절차를 무시했다"거나 "조직의 위계를 흐트러뜨렸다"는 질책뿐이다. 어제까지 "틀을 깨라"라고 외치던 혁신가는 어디 가고, 오늘 자신 앞에는 깐깐한 관료주의자가 앉아 있다.


도대체 이 모순적인 현상은 왜 반복되는 것일까. 왜 조직에서 '자율'은 권장되는 덕목인 동시에 처벌받는 죄목이 되는 것일까. 이 기이한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리더라는 존재가 가진 권력의 속성과 인간 심리의 깊은 곳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적확한 개념은 '이중 구속(Double Bind)' 이론이다. 이 이론은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이 1956년 발표한 통신 이론으로, "개인이 두 개 이상의 상호 모순되는 메시지를 동시에 받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리적 딜레마에 빠지는 상황"을 가리킨다. 많은 리더들이 무의식적으로 구성원에게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명령을 동시에 내린다. 첫 번째 층위의 메시지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재가 되어라"다. 이는 현대 경영학이 요구하는 이상적인 인재상이자, 리더 자신의 세련됨을 과시하는 언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더 강력한 두 번째 메타 메시지가 숨어 있다. 바로 "리더인 나의 통제와 권위를 벗어나지 마라"는 것이다. 구성원이 첫 번째 메시지를 따라 주체적으로 행동하면 필연적으로 리더의 통제권(두 번째 메시지)을 침범하게 된다. 반대로 리더의 통제에 순응하면 "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는 수동적인 직원"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결국 구성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논리적 함정에 빠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조직 내에서 겪는 '자율의 역설'이다. 그들이 허용하는 자율이란 어디까지나 '리더 자신의 허락 하에 이루어지는 제한된 자율', 즉 '목줄 낀 자유'에 불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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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xels.com ©2021 Jorge Urosa


그렇다면 리더들은 왜 구성원의 진짜 자율성을 견디지 못하는 것일까. 뇌과학자 로버트 M. 새폴스키는 그의 저서, '행동'에서 "행위의 의미는 오직 맥락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라고 말했다. 구성원이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성과를 내는 행위 자체는 객관적으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행위가 리더의 개입 없이, 리더를 건너뛰고 이루어졌다는 '맥락'이 더해지면, 그것은 리더의 뇌에서 '위협'으로 재정의된다. 데이비드 록의 SCARF 모델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자신의 '지위'와 '통제감'이 낮아진다고 느낄 때, 물리적 생존의 위협을 느낄 때와 똑같은 공포 반응을 보인다. 구성원이 스스로 일을 처리해 버리는 순간, 리더는 자신이 조직 내 정보와 의사결정의 흐름을 장악하고 있다는 '게이트키퍼(Gatekeeper)'로서의 효능감을 상실한다.

"내가 없어도 일이 잘 돌아가네?"

라는 깨달음은 그들에게 안도감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했다는 '나르시시즘적 손상'을 입힌다. 그래서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화를 냄으로써 다시금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고, 상황을 통제하려 든다. 그들의 분노는 '절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쓸모'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대한 방어기제인 셈이다.


이러한 리더들과의 소통이 유독 힘든 이유는 그들이 보여주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식 태도 때문이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언제든 의견을 말하라"며 소통을 강조하지만, 막상 대화를 해보면 거대한 벽을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그들은 타인의 의견을 듣는 척(Pseudo-listening) 할 뿐, 실제로는 자신의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결론에 당신의 동의를 끼워 맞추려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종결 욕구(Need for Cognitive Closure)'로 설명한다. 불확실하고 복잡한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는 것은 뇌에 막대한 에너지를 요구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통제 욕구가 강한 리더일수록 이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네 말도 일리가 있지만, 결국은 내 방식대로 해야 조직이 산다"는 식으로 상황을 빠르게 단순화하고 종결지으려 한다. 그리스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가 침대 길이에 맞춰 나그네의 다리를 잘라냈듯, 그들은 자신의 빈약한 논리적 침대에 현실의 복잡함을 억지로 구겨 넣는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의 논리와 감정은 철저히 배제되고, 결국 학습된 무기력만이 남게 된다.


그렇다면 이 모순된 권위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그들이 말하는 '자율'과 '희생'이라는 단어가 실제로는 '복종'과 '통제'의 다른 이름임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설득하거나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 대신 '심리적 아이키도(합기도)'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리더가 모순된 논리로 압박해 올 때, 맞서 싸우기보다는 그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그가 "우리 조직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라고 말하면,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라고 그의 단어를 거울처럼 반사해 보라. 그리고 침묵하라. 자신의 말이 타인의 입을 통해 그대로 되돌아올 때,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논리적 허점을 돌아보게 된다.


또한, 무조건적인 거절 대신 '열린 질문'을 던져 그에게 문제 해결의 공을 넘겨야 한다.

"부장님이 원하시는 그 혁신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서, 현재의 제약 조건 속에서 제가 어떻게(How) 하면 될까?"

라고 물어라. 이는 거절이 아니라 도움을 요청하는 형식이기에 리더의 방어기제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그 스스로 무리한 요구임을 깨닫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마지막으로, 리더의 통제 욕구를 충족시켜 줄 '명분'을 제공해야 한다. 독자적으로 일을 처리한 것이 그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부장님이 평소 강조하시던 주도성을 제가 실천해 본 결과, 부장님의 가르침이 옳았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는 식으로 프레임을 재구성해 주는 것이다. 이를 협상학에서는 상대가 체면을 구기지 않고 물러설 수 있는 '황금 다리(Golden Bridge)'를 놓아준다고 표현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이 소모적인 신경전의 본질은, 당신이 무능해서도 아니고 예의가 없어서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통제'라는 갑옷을 입은 어떤 불안한 영혼들의 몸부림일 뿐이다. 장폴 사르트르가 말했듯, 타인은 지옥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지옥의 불길에 타버릴지, 아니면 그 불길을 이용해 나를 더 단단한 쇠로 제련할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리더의 이중적인 언어에 휘둘려 죄책감을 갖거나 자존감을 갉아먹히지 말아야 한다. 대신 그들의 심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관찰하고 분석하라.

"아, 저 사람은 지금 자신의 불안을 저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구나"

라고 대상화하는 순간,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주체적인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 조직이 원하는 부품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한 명의 존엄한 인간으로 남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부조리한 조직 생활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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