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로남불 2 (두 번째 이야기)

수세장의 추억

by 시카고 최과장

마취과 레지던트 1년 차 말 무렵에 일어난 일이다.

야간 당직이었던 날 수술시간이 비교적 길었던 정형외과 수술에 배정받아 환자에게 전신마취를 걸고 계속 환자의 상태 및 활력징후를 관찰하고 있었다.

당시에 나는 중국계 마취과 전문의 선생님인 닥터 송의 감독하에 전신 마취를 진행하고 있었다.
수술시간이 비교적 길었던 케이스라, 환자의 소변량을 체크할 수 있게 Foley Catheter 가 방광으로 삽입되어서, 매시간마다 소변량을 기록하고 플라스틱 병에 소변을 모아두고 있었다.

Foley_Urine_Bottle.jpg 환자의 오줌을 모아 놓는 Foley와 이를 비워 놓은 플라스틱 통

보통 그렇게 모아둔 환자의 소변은 수술이 다 끝난 후에, 다른 수술실 폐기물등과 같이 버려지게 되므로, 그러한 플라스틱 소변통은 그냥 수술실에 놓고 가면 수술실 청소하시는 분들이 알아서 치워주시고는 한다.




한창 수술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닥터 송이 수술실 안으로 들어오셔서 별문제 없이 마취과 잘 진행되고 있는지 여쭈어 보셨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게 다 괜찮은데, 수술시간이 길어지고 환자 소변 배출량이 많아서 환자 소변을 비울 수 있는 플라스틱 병이 하나 더 필요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닥터송은 환자의 소변으로 꽉 차있는 플라스틱 병을 수술실 출입문 바로 밖에 있는 수세장에다가 비워 버리고 빈병만 가지고 돌아오셨다.

(필자 주(注):수세장 (手洗場): 수술용 가운과 장갑을 착용하기 전에 외과 의료진과 Scrub nurse 수술 간호사가 손을 씻는 곳)

“이제 됐지…?”

그렇게 마취가 무사히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한 닥터송이 수술실을 나가자,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었던 듯한 수술실 담당 순회 간호사 (Circulating Nurse)가 득달같이 달려오더니, 나에게 물었다.

“환자 소변을 수세장에다가 버리다니, 완전히 미친 거 아닌가요?”


surgery_scrubbing_washing.jpg 수세장에서 외과적 손 씻기 (Surgical Scrubbing) 를 시행 중이다


순회 간호사의 관점도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수술실 앞 수세장은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진이 단순히 손만 씻는 공간이 아니고, 외과의사들이 앞으로 펼쳐질 수술에 대한 전개를 미리 머릿속에 정리하거나, 서로의 의견도 교환하는 어떻게 보면 매우 경건하기도 한 그러한 장소이다.


닥터송이 다시 수술실에 돌아오자,

“환자 소변을 외과의사들이 깨끗하게 손 씻는 청결한 공간인 수세장에 환자 소변을 버려도 괜찮을까요?
순회 간호사가 막 뭐라고 하던데요…”

“당연 괜찮지… 원래 소변은 무균상태잖아? 더러운 것을 수세장에다가 버린 것도 아닌데 뭘…”


생각해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긴 했다.

그렇게, 문제없이 그 정형외과 수술 케이스를 마치게 되었고, 이때 있었던 일은 그냥 작은 에피소드로 여기고 지나갔다.


그로부터 한 달이 다 지나가기 전에 우연히 수술실 밖 복도를 지나가고 있던 나는 수술실 앞 수세장에서 바쁘게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 간호사는 그때 환자 소변을 수세장에 버렸다고 닥터송을 미친 X 취급을 하던 그 순회 간호사였다.

왜 이렇게 바쁜가 하고 봤더니, 수세장에서 본인의 발을 열심히 씻고 있었다.

Foot_Wash_00.jpg

수술실 앞 수세장에 환자 소변을 버렸다고 난리 치던 그 양반이 수세장에서 아예 대놓고 발을 씻고 있었다.

내가 분명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신경을 1도 쓰지 않고 남은 양 발을 모두 씻기를 마치고 유유히 가버렸다.




그랬다.

머나먼 이역만리 미국 병원에서도 '내로남불'은 어디에서나 자행되고 있던 흔한 만행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수술실 앞 수세장에 환자 소변을 버리는 행위나 발을 씻는 행위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몰상식한 행위이다.

하지만 남한테는 엄격하고 나한테는 관대한 이중 잣대의 행위인 ‘내로남불’을 행한 순회 간호사가 좀 더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수술실 앞 수세장에서 그 순회 간호사가 그때 꼭 발을 씻어야만 했던, 내가 몰랐던 이유가 있었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미처 피워보지 못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