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나이티드 헬스케어 CEO 총격 사건을 보면서
미국 유나이티드 헬스케어 CEO인 브라이언 톰슨 총격 사망사건을 미국 대학병원 전문의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대문 사진은 미국 뉴스에서 제공되는 사진과 소셜 미디어에서 밈으로 공유되고 있는 사진을 포토샾으로 편집해 봤습니다)
2024년 12월 4일 아침,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미국 최대 의료보험 회사인 유나이티드 헬스케어의 CEO가 괴한의 총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총격사건의 가해자는 사건 발생 5일 후에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체포된 후 뉴욕시로 호송되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일단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이 생기게 된 점은 우선 매우 안타깝습니다.
제 관점에서 보자면, 총격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잘못된 시스템 / 제도에 의한 커다란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거 같습니다.
총격사건의 피해자인 브라이언 톰슨은 한 가족의 가장이자 샐러리맨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열심히 일해서 CEO까지 승진을 했습니다. 영리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면 할수록 포상과 승진을 보장받는 시스템 내에서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미국 민간 의료보험의 대표적인 악마로 여겨져 총격을 당해 사망했습니다.
총격사건의 가해자인 루이지 맨지오니는 척추 전방 전위증 (spondylolisthesis)과 라임병을 앓고 있어서 사건 발생 1년 반전에 척추 유합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고 이후 보험회사의 보험금 지급 거절이 총격사건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아닌가 추측되고 있습니다. (가해자는 유나이티드 의료보험에 가입했던 적이 없었다고 경찰이 발표하긴 했습니다)
총격사건이 일어난 후의 미국 Social Media 나 대중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아마도 일반 대중들은 단순히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었던 일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겼을 뿐 아니라, 총알에 ‘Deny’, ‘Depose’, ‘Defend’ 등의 명백한 메시지를 남기는 등, 평소 미국의 민간 의료보험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은 미국인들의 심금을 제대로 울린 여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총격사건의 가해자인 Luigi Mangione는 민중의 영웅으로 불리며, ‘의적 로빈후드’에 비견되거나, 총알의 새겨져 있던 3’D’ 단어들은 도시 담벼락에 그려지는 Graffiti 에도 자주 등장하고, 가해자의 트위터 계정은 팔로워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법정 소송 비용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 계좌는 20만 달러를 훨씬 넘겼으며, 가해자인 루이지가 펜실베이니아에서 뉴욕시로 호송된 후에 범죄 포토라인에 잠깐 섰던 것을 ‘예수의 체포’에 비교하여 ‘성(聖) 루이지의 시성(諡聖)식’이라고 칭하기도 (혹은 비꼬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한국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미국 사람들이 왜 이렇게 범죄자에 열광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공공 의료보험이 잘 갖추어진 한국에서는 아마 상상도 할 수 없을 듯합니다만, 미국 민간 의료보험 회사의 횡포에 당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총격사건 가해자인 루이지를 두둔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피해자가 사망한 총격사건을 두고 열렬히 환호하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만, 이 총격사건으로 인한 파장이 미국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총격사건의 파장으로 인한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총격 사건 직후에 '앤썸 BC/BS'에서 긴급하게 발표하여 전면 백지화된 정책을 들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미국의 민간 의료보험 회사인 ‘앤썸 BC/BS’는 원래 이 총격사건이 발생하기 한 달 전쯤에 2025년 2월부터 미국 동북부 (뉴욕, 코네티컷) 지역에서 수술을 항목별로 분류해서, 본인들이 설정한 수술시간을 넘겨서 진행된 수술건수에 대해서는 의료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새로운 정책을 시행한다고 발표해놓고 있었습니다.
일단 환자마다 다를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전부 무시하고, 천편일률적으로 수술마다 적정한 수술시간을 정해 놓는 것은 야만적인 기준을 자기 마음대로 정해놓고 사람을 죽이던 악당 프로크루스테스에 비교할 만큼 전무후무한 악행입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 '테세우스의 모험'에 나오는 그리스의 강도로,
길가는 행인을 아무나 잡아와 자신의 철침대에 누이고는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추어 늘려서 죽였다고 전해지는데,
결국 본인도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동일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출처 - 위키백과)
그래도 첫출발은 비영리 건강보험이었던 BC/BS 가 다른 영리 보험사들은 생각도 못하던 가장 악랄한 정책을 제일 먼저 앞장서서 시행할 생각을 하다니...
이러한 정책이 발표되자, 미국 외과 학회와 미국 마취과 학회에서는 환자 안전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극구 반대해 왔지만 막무가내로 시행될 위기에 놓여있었습니다.
만약 이 정책이 그대로 시행된다고 하면...
1) 수술 중에 예상치 못한 출혈이나 유착등으로 수술 시간이 길어지면, 해당환자에게 보험금 지급이 거부되어 그 손해는 환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도 있고...
2) 수술진은 이미 설정된 수술 시간에 맞추기 위해 허둥지둥 서두르다 더 큰 합병증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나이티드 헬스 CEO 총격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 만에, 유나이티드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회사였던 앤썸에서 해당 정책을 전면 백지화한다고 긴급 발표 헸습니다.
한국의 옛 속담이 정말 기가 막힌 게, 이런 경우에 딱 맞도록 전해져 내려오고 있던 속담이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라는 속담이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이번 총격사건을 계기로 영리 기업의 사익(私益)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도, 환자(소비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미국 민간 의료보험에 대한 개혁이 강력히 요구되고 있는 것도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이전까지는 미국 의료보험 회사들이 그냥 보험 가입자(=환자)들의 불편과 분노는 그냥 무시하면 되겠거니 하고 그냥 추상적으로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유나이티드 헬스케어 CEO 총격 피살사건으로 자신들이 실질적으로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이제야 피부에 와닿았나 봅니다.
총격 사건 발생직후 여러 미국 의료보험회사의 홈페이지에서는, 경영진 인적 사항을 알리는 페이지를 긴급히 내린 듯합니다.
따라서 이번 총격사건을 보는 제 관점은 총격사건 피해자 혹은 그 회사를 조롱하는 각종 소셜 미디어의 밈들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으로 초래되는 긍정적인 변화는 매우 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위에 달았던 이글의 제목에 대한 자문자답 (自問自答)을 해보자면, 루이지 맨지오니는 살인자가 맞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아무도 시도 못한 미국 건강 보험 개혁에 대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를 영웅으로 보는 것 또한 맞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견해이자 결론입니다.
이번 총격 사건을 비교적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해 주신 유튜브 영상 세 가지를 링크합니다.
(1) 김지윤의 지식Play
https://youtu.be/_a9dtoWrmgU?si=2kmaeJVFUP-c4AmJ
(2) 크랩 KLAB
https://youtu.be/QPtg12L5S1g?si=fJXibbWuJSONjRG3
(3) 슈카월드
https://youtu.be/Zc1CKgVCj0k?si=iSE6hpNt5GgL69Xu
이어지는 다음 글로는 총격사건이 발생한 이유로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 미국인들의 '의료보험 회사의 보험비 지급거부' 사례를 지켜보면서 제일 먼저 떠올랐던 과거의 제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올려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