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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제19회 보령 의사 수필 문학상 (2023년) 응모작

by 시카고 최과장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는 서양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관용적 표현이다. 한국 결혼식에서도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라는 비슷한 표현이 쓰이고 있다.


그날은 비가 올 듯 말 듯한 흐린 날씨의 한 평범한 날이었고, 외과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날이었다. 밤사이에 새로 입원한 환자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환자는 81세 백인 남자 환자로, 얼굴에 산탄총에 의한 총상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와, 기도확보를 위해 호흡관을 넣은 후에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였다. 최근에 이 환자의 부인이 넘어지면서 고관절 골절이 되었는데, 골절 접합수술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던 중에 의료 보험회사로부터 보험금 지급을 거부당하고 당장 퇴원하라는 통보를 받고, 재활치료도 받지 못하고 퇴원하여 집에서 진통제만 복용하고 있었다고 했다.

노년기 환자들의 낙상으로 인한 골절은 수술, 진통, 재활이 다 같이 잘 진행되어야만 다른 합병증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자, 이 노부부는 이러한 처지를 비관하여 동반 자살이라는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지게 된 것 같았다.


먼저, 환자가 부인을 총으로 쏘고, 그다음에 본인을 쏴서 동반 자살을 마무리하는 죽음의 계약을 맺은 것이다. 환자가 부인을 총으로 쏴서 사망하게 만드는 데에는 성공적이었지만, 자신을 쏠 때에는 조금 주저를 했던 것인지 빗나가고 말았다.
문제는 이 총이 산탄총이었던 탓에, 환자의 얼굴 부위의 중간과 아랫부분의 뼈와 살이 뭉개지고 출혈이 조금씩 계속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응급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부인은 이미 사망한 뒤였고, 환자는 얼굴이 많이 손상된 채로 발견되었지만 그래도 의식이 있었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노부부가 함께 자필로 쓴 유서가 발견되었는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의료보험 회사의 횡포를 견디기 힘들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고…’
‘59년이 넘는 우리의 결혼생활이 비록 이렇게 끝나게 되었지만, 묘지에 꼭 나란히 옆에 안장해 달라’는 간절한 마지막 소원도 적혀 있었다고 한다.




호흡관을 넣어 환자의 기도 확보에 성공했지만, 제대로 된 신경학적 검사를 위해, 진정제나 마취제는 전혀 쓰지 않았다. 협진 요청을 했던 신경외과 팀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혹시나 있을 정신상태 변경을 감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경학적 검사상 환자는 비록 얼굴에 심한 총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뇌를 다치지는 않아 의식이 온전한 상태였다.

뇌를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 이 환자의 경우에는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는데, 이러한 모든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100% 인지하고, 모든 고통, 두려움 혹은 자신의 아내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등등을 실시간으로 계속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구강 악안면 외과에서는 손상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환자의 나이까지 고려하면 안면재건술로 복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소견을 전해왔다.


환자에게는 3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이 있었는데, 노부부의 비보를 듣고 병원으로 달려와서 회의실에서 대기 중이라고 했다. 환자의 현재 상태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병실을 재방문했을 때에는, 승압제 약물을 써야만 혈압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환자의 서서히 계속되는 출혈과 이전의 심장수술을 받았던 전력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했다.

“환자분, 지금 제 말이 들리면 제 손을 한번 꼭 쥐어 보세요”
내 손을 한번 꼭 쥐는 환자...
“환자분, 가족들이 도착했다고 해서, 이제 나가서 가족회의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가족회의를 마치고, 다시 와서 결과를 알려드릴게요”
내 말을 분명히 들었을 텐데, 환자에게서는 반응이 없었다.


환자 가족회의는 호흡관 등으로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환자가 갑자기 의사 표현이 가능하게 된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를 유추해 보는 과정으로, 가족회의에서 모든 가족원들이 합의된 결론이 나오게 되면 그것으로 환자의 치료 방향이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회의이다.

그렇게 환자 상태를 재확인하고 환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가는 도중 여러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처음에는 은혼식, 금혼식을 넘는 다이아몬드 혼식을 앞둔 환자가 왜 부인을 살해하는 안타까운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죽음이 노부부사이를 갈라놓을 까봐 두려워서 오히려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환자 자녀들이 혹시나 부모님의 비극적인 사건이 본인들 탓이라고 죄책감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회의실에 들어섰는데, 내 예상과는 정반대로 환자의 자녀들은 모두 화가 엄청나게 나 있었다.
그들은 저 살인마 (그들의 아버지)가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해 버려서 너무너무 화가 난다고 했으며...

특히, 환자의 3명의 아들들은 저 사람을 본인들 아버지라고도 부르지 말라고 하면서 엄청 격앙되어 있었다. 저 사람 (그들의 아버지) 이 그렇게 원했던 대로, 이루지 못했던 자살이나 마무리나 해주라면서... 3명의 아들들은 가족회의를 길게 끌고 갈 생각도 없이 그대로 회의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으로, 미국에 살면서도 내가 아직도 한국적인 관념에 너무 젖어 있었나 하면서 크게 놀라게 되었다.




환자의 딸은 회의실에서 나와 아버지를 잠깐 볼 수 있느냐고 묻고 병실 앞까지 왔지만, 차마 들어가지는 못하고 이따금씩 환자 쪽을 바라보면서 담당 간호사에게 몇 가지 질문만 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환자의 아들들 말대로…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면, 환자는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범죄자이자…

종교적인 기준으로는, 자살을 시도한 종교상의 커다란 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와 이 환자가 의사-환자 관계인 것에는 변함이 없었고, 나는 환자에 대한 의사로서의 책무를 다해야만 했다. 가족회의상 환자의 가족들이 모두 환자의 연명치료를 원지 않았으므로 생명을 연장하는 모든 치료요법은 중단되어야 했다.
아직도 환자의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환자의 딸에게 다가가, 치료중단을 한번 시행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치료중단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환자와 함께 병실 내에 있기를 원하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환자의 딸은 자기는 괜찮다고 하고 계획대로 시행해 달라고 하면서 도망치듯이 중환자실을 빠져나갔다.


이 환자의 경우에는 이미 호흡관을 통해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고, 승압제를 써야만 혈압이 유지되고 있으므로… 인공호흡기계 혹은 승압제를 끄는 것만으로도 금방 연명 치료 중단의 목적이 이루어질 듯했다.
비록 가족회의에서 환자의 치료방향이 이미 결정되긴 했지만, 마취 혹은 진정제가 전혀 투여되지 않고 있었던 환자는 여전히 의식이 있었으므로 환자와의 소통을 통해 최종 확인 과정을 거쳐야 했다.
“환자분, 가족회의 결과에 따라서 환자분 이제 편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제 손을 한번 세게 잡아서 알려 주세요”
이미 승압제의 용량이 꽤 높아져 혈압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환자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오더를 입력하였고, 이러한 조치를 시행한 지 채 2분도 채 되지 않아, 환자의 혈압은 수직 하강했고, 혈압은 더 이상 잡히지 않았다. 환자 병실 앞에서 지켜보다가 들어가 사망 선언을 하는 것으로, 이 환자에 대한 나의 마지막 책무를 마무리지었다.




미국 의사 자격시험 (USMLE)를 준비하면서 시청했던 행동과학 비디오 강의가 떠올랐다.
결혼식에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우리의 사랑은 영원하리라’는 결혼 서약서의 문구가 무색하게, 실생활에서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 순간 남남으로 끝나는 것이 부부관계이지만, 그에 반해 의사-환자 관계야 말로 진짜 죽음만이 갈라놓을 수 있는 관계로 부부관계보다도 훨씬 더 심오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의사-환자 관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강의였다.

그때는 이 말을 무심코 웃으며 지나쳤던 기억이 났다.


그 환자와 나의 관계는 죽음이 갈라놓았기 때문에, 이제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비가 올 듯 말 듯한 흐린 날씨가 되면 그 할아버지 환자가 떠오른다. 유서에서 그렇게 간절히 요청했는데도 불구하고, 자녀들이 할아버지 환자 혼자만 쓸쓸히 안장했을까 봐 나는 지금도 걱정이 된다.


죽음만이 의사-환자 관계를 갈라놓을 수 있으리라고 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난 요즈음에도 가끔씩 그 할아버지 환자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의사-환자 관계 또한 죽음마저도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나이티드 헬스케어 CEO 총격 피살 사건의 전말을 듣자마자 제가 제일 먼저 떠올린 환자가 바로 이 안타까운 사연의 할아버지 환자였습니다. 그 당시에 처음 이 환자에 대한 보고를 들었을 때는 보험비 지급을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동반 자살까지 계획할 정도일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살펴보니 사랑하는 가족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인간적인 치료도 받지 못해,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버티는 것을 보다 못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지금도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할아버지 환자는 아마 제가 남은 의사 생활을 다 마칠 때까지 계속 떠오를 듯한 환자인 듯합니다.


이와 같은 환자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민간 의료보험 회사의 부당한 보험비 지급거절은 단순히 한 개인의 삶을 파탄 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대가족 전체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는 아주 질이 나쁜 범죄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나이티드 헬스케어 CEO 총격 피살 사건을 계기로, 미국 민간 의료보험에 대한 개혁 및 제도적인 보완이 실행되어 이와 같은 비극적인 일이 생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소망입니다.


시카고 최과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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