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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Nov 23. 2024

늦가을엔 화담숲이죠

아들이 월요일에 갑자기

"엄마! 올해 체험학습을 많이 안 쓴 것 같아.

 금요일에 학교 하루 쉴래요.

 체험학습 신청서 써 줘요!"

라고 했다.

"학교가 너 안 가고 싶을 때 안 가는 곳이 아니야!

학원도 두 개나 가야 하는데 뭔 소리야!"

라고 해야 하지만,,,,


나는 어릴 때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학교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아이였다.

우리 때 학교는 지극히 엄격하기만 했고, 너무나 획일적인 방식으로 아이들을 대했던 곳이라서 나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아이들은 학교가 감옥 같기만 했었다.

한 마디로 학교는 재미가 없었다.

학교는 재미로 다니는 곳이 아니야!라고 어른들은 말씀하셨지만,

나는 정말로 매일매일 학교를 빠짐없이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했었다.

지금처럼 다양한 학교가 존재하는 시대였으면 아마도 제도권 학교가 아닌 대안학교 같은 곳을 가고 싶어 했을 것 같다.

학교에서 학습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나 사회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자질들을 습득할 수 있기에 학교는 필요하지만, 꼭 제도화된 기관에서만 그런 기술들을 배우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교 수업도 중요하지만, 여행이나 다양한 경험들이 아이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세상을 유연하게 바라보는 힘을 길러준다고 믿는다.


자주 안 가겠다고 하는 아이가 아니라서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로 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가까운 화담숲을 방문하기로 하고 예약사이트를 들어갔다.

화담숲은 단풍철이면 평일에도 예약하기가 힘든 곳이다.

운 좋게도 금요일에 표가 남아 있었고, 그 어렵다는 모노레일 좌석도 딱 2매 남아 있었다.

후다닥 예매를 하고 금요일 예약 시간에 맞춰 방문을 했다.


살짝 쌀쌀한 기운이 있었지만 그래도 날이 너무 좋았다.

다른 해였으면 단풍이 이미 다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을 시기지만,

올해 날이 계속 따뜻하다 보니 단풍이 늦게 들어서인지 아직도 남아 있었다.


화담숲에 여러 번 방문해 봤지만 이 앙증맞은 모노레일은 처음으로 타 봤다.

아들이 오래 걷는 걸 힘들어해서 1-3구간 까지는 모노레일로 이동하고,

3 정거장에 내려서 3-40분 정도 걸어 내려오는 코스로 잡았다.



내려오는 길에 아기자기한 테마들이 많아서 즐겁게 감상하며 걷기 좋았다.

날씨가 너무 맑고 따뜻해서 산책하기에 딱 좋았다.

아들도 신이 났는지 뛰기도 하고 콧노래도 부르며 걸었다.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산책길이었다.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처음 들어왔던 입구가 가까워졌다.


출구 쪽에 운치 있게 생긴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과 카페가 있었다.

12월을 앞두고 있는 시기라 사람이 미어터질 정도로 많지도 않았고,

모노레일을 이용해서 적당히 운동되는 정도로 걸어서인지 상당히 상쾌하고 즐거운 여정이었다.

남자아이라 그런지 아들은 단풍이나 가을 풍경에 큰 감흥을 보이진 않았지만,

학교를 쉬고 엄마랑 놀러 와서 그런지 엄청 즐거워했다.


둘이서 점심으로 중식당에 들러 수타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다.

먹는데 진심인 아들이 "오잉! 광주에도 맛집이 있었네~"라며 말끔히 먹어 치웠다.

점심을 먹고 이천으로 이동했다.

아는 사람만 찾아올 수 있는 카페에 들렀다.

2층 창가에서 보면 온통 밭만 보이는 카페인데 힐링이 되는 곳이다.

초콜릿 쿠키와 생강차, 아이스티를 시키고 휴식을 취했다.

아들에게 슬쩍 학원에는 가는 게 어떠겠냐고 물어봤는데,

그동안 열심히 다녔으니까 오늘은 쉬고 싶다고 칼차단을 했다.


오늘 아들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남긴 말은 이거다.

"엄마!

 다른 애들 학교에서 수업할 때 놀러 오니까 너무 좋다!

 엄마가 다른 엄마들처럼 안 하고 나를 이해해 주니까 너무 행복하다!

 그래서 말인데,,,

 12월에도 체험학습 내고 민속촌 다녀오자!"


그래 이놈아!

중학교 가면 맘대로 못 놀러 다닐 테니까 지금 맘껏 즐겨라.

넌 진짜 복 받은 줄이나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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