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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Aug 28. 2023

덕질과 무관한 덕질

-그래봤자 덕질

이번 주 토요일에 신수원 감독의 13년 감독 인생을 돌아보는 <신수원 감독전>을 다녀왔다.

아리랑시네센터에서 진행이 되고 있어서 오랜만에 서울로 외출을 했다.

신수원 감독은 2010년부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 독립영화계의 대표적인 여성 감독이시다.

<명왕성>, <마돈나>, <유리정원>, <젊은이의 양지> , <오마주>까지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계신다.

독립영화는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현실상, 이렇게 꾸준히 작품을 찍기가 참 어려운데 감독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예리하게 다루며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연출을 주로 하셨다.

토요일에 상영된 <유리정원>은 장애가 있는 여성 과학도가 자신의 연구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연인과 사회에 상처받고, 사회로부터 스스로 고립된 자연 속에서 홀로 유유히 연구를 계속해 나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소재로 하고 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닌 젊은 과학도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지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놓지 않는다.

그녀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작가조차 자신의 성공을 위해 거짓된 모습으로 그녀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운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고, 결국 그녀는 그 어느 곳에도 이해받지 못하고 자연 속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2017년에 개봉해서 큰 흥행을 이루진 못했지만, 모든 면에서 상당히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나무가 울창한 숲 속을 배경으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연출력이 돋보이고, 주연 배우들의 완성도 높은 연기가 작품에 흡인력을 주는 영화이다.

이미 두세 번 본 영화였지만, 큰 스크린으로 다시 감상하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보이고 전체적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었다.

나의 배우가 주연한 영화라서 배우에 초점을 맞춰 감상했던 5년 전과는 달리 연출이나 음악, 배경 등의 여러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보였다.

그동안 나이가 들면서 관점이나 시선의 폭이 넓어져서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감상한 <유리정원>은 너무나 좋았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님과 배우님과의 GV가 있었다.

일 년 만에 배우님과 다시 만났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 시간 동안 하면서 독립 영화감독으로서의 고충과 애환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배우도 상업 영화든 독립 영화든 매력적인 소재이고, 자신의 역할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둘이 다시 한번 작품을 같이 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만날 때마다 느꼈지만, 감독님은 너무나 선하시고 따뜻한 분이시다.

소위 말하는 돈이 되지 않는 영화를 꾸준히 제작해 오시는 걸 보면 보면, 그분이 얼마나 강단 있고 뚝심 있는 분이신지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시는 분이신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지치지 않고 무언가를 해 나간다는 것은, 삶과 인생에 대한 열정과 신념 없이는 불가능하다.

감독님이 존경스러운 부분이 그것이다.


GV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상영관 밖에 테이블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싸인을 요청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니 사인회가 됐다.

나는 제천에서 만났던 덕후들과 영화가 끝나고 저녁을 함께 하기로 해서 같이 있다가 자연스럽게 줄을 서고 사인을 받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한강 시인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챙겨 가서 그 책에 사인을 받았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책을 건넸다.

쓰고 싶은 멘트를 간단히 넣어 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잠시 주춤하길래 장난스럽게

(갑작스러운 요청에 버퍼링이 왔겠지요.)

"할 말이 없구나.." 했더니, 펜에 힘을 주면서

"아닌데. 있는데."

하더니 야무지게 꾹꾹 눌러서

 "글에 항상 감동받아요. 문과 감성 파이팅!"이라고 써 줬다.

둘이 함께 "문과 파이팅!"을 외쳤다.

(둘 다 문과이니까.)

다른 덕후가 둘이 사진도 한 장 찍어 주었다.

배우는 예쁘게 나왔는데 나는 오징어처럼 나왔다.


사인회가 끝나고 덕후들이랑 1층에 있다가 배우님이 차를 타러 내려오길래

잘 들어가시라고 인사도 나누고 헤어졌다.

차에 타서 창문을 내리고 손을 휘휘 저으며 끝까지 인사를 건넸다.

참, 좋은 사람.

참, 예쁘고 고운 사람.

내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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