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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Aug 23. 2023

알약열전

지난주에 아이가 목이 부어 열이 많이 났다.

밤에 목 통증으로 인해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열이 39도까지 오른 첫날은, 꼬박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병원 문을 열자마자 진료를 받으러 동네 가까운 병원으로 갔는데 하필 병원이 휴가인지 문을 닫고 있었다.

운전을 해서 아이가 태어난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로 갔다.

영유아들 사이에 초등학생은 우리 애 하나였다.

유아시절 아이는 병원에 갈 때마다 온갖 난리는 다 치는 아이였다.

나 혼자서는 감당이 안 돼서 항상 동행인을 불러 같이 가야 했다.

진료실 앞에서부터 안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써서 둘이서 진료실로 밀어 넣어야 했다.

울며 발버둥을 치는 아이를 진료하기 위해 병원 인력들이 총동원돼야 했다.

내가 앉아서 아이를 무릎에 올리고 내 다리로 아이 하체를 고정시키고, 두 팔로 아이 양팔을 잡고 있으면 간호사가 아이 얼굴을 잡아 고정시키고 선생님은 아이 입을 열게 하려고 애를 써야 했다.

코나 귀를 봐야 하는데 아이가 기겁을 해서 카메라를 넣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잔병이 많아서 병원을 수시로 가야 했는데 그때마다 병원은 우리 아이로 인해 비상이었다.

난리를 치르고 진료가 끝나 진료실 문을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물을 뚝 그치고 해맑게 웃었다.

그렇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다녔던 병원이었다.

간호사분들이 아이가 로비에 들어 서면 "00이 왔구나" 하면서 "다들 준비해!"라고 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아이가 커 가면서 그런 소란이 잦아들었고 의연하게 진료실로 들어가 선생님의 지시에 척척 알아서 해내게 되었을 때, 애기 때부터 계셨던 나이 지긋한 간호사 분이 "우리 00이 다 컸네!" 하시며 뿌듯하게 바라보셨었다.

그분들이 다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진 지금까지 우리 아이는 종종 그 소아과를 방문하고 있다.

아이에게 "네가 태어난 고향이야."라고 말을 하면, 아이는 빙그레 웃는다.


진료를 봤더니 역시 목이 많이 부었다고 했다.

코로나도 아직 많이 나오고 하니 코로나일 수도 있고, 무더위에 에어컨을 많이 트니 그로 인해 목감기가 온 걸 수도 있다고 하셨다.

열이 지속되면 코로나 검사를 해 보라고 하셨다.

알약을 먹을 수 있냐고 하셔서 그렇다고 했다.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와 먹이려고 했다.

약은 총 4개였다.

두 개는 아주 작은 크기였고, 하나는 원 모양을 반으로 자른 것이었는데 그것도 크기는 작았다.

나머지 하나는 길쭉한 모양이었는데 크기가 좀 컸다.

아이에게 잘 삼킬 수 있냐고 했더니 할 수 있다고 했다.

하나씩 꿀꺽 잘 삼키고 마지막 길쭉한 약을 넣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꿀꺽했는데, 그것이 안 넘어간 모양이었다.

거기다 입 속에서 물과 함께 녹았는데 맛이 썼는지 아이는 그대로 뱉어 버렸다.

약봉지에서 그 약만 골라 다시 아이한테 주었다.

아이는 꼭 삼키겠다는 비장한 표정으로 약을 털어 넣었다.

그런데 넘기다 목에 걸렸는지 컥컥하더니 그대로 뿜어냈다.

"아니! 목을 뒤로 젖히면서 목구멍을 열고, 뒤로 탁 하면서 꿀꺽 넘겨야지, 앞으로 숙이면서 하면 그게 넘어가니! 아이고야."

하면서 아이를 타박했다.

그렇잖아도 두 번씩이나 안 넘어가서 불편하고 짜증 나는데 엄마까지 뭐라 해대니 아이가 울컥하면서

"안 된단 말이야, 나더러 어쩌라고!"

소리를 질렀다.

가루약으로 받아왔어야 했어.

생각을 하면서 다시 약봉지를 열어 약을 꺼내 가위로 반을 잘라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시범을 보이면서 연습을 시키고 하나씩 천천히 삼키게 했다.

꿀꺽. 하나가 잘 넘어갔다.

아이 얼굴에 안도감이 흘렀다.

남은 하나를 건내주었다.

고개를 뒤로 탁, 꿀꺽! 하나도 잘 넘겼다.

"잘했어! 아들, 봐봐 할 수 있지?"

아들 얼굴에 웃음이 일었다.


어렸을 때 나도 잔병치레가 심했다.

감기를 달고 살았고, 친구 집에 가서 뭐라도 먹고 오면 꼭 체해서 밤새 고생을 해야 했다.

아빠가 약을 숟가락에 올린 후 물을 넣어 잘 풀어서 입 속으로 넣어주면, 그 쓴맛 때문에 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토해낼 때가 많았다.

한 번, 두 번.

그것을 삼켜야 한다는 부담감과 무섭게 지켜보는 아빠의 눈 때문에 그 시간이 너무 무서웠다.

여러 번 삼키지 못하고 뱉어 내면, 급기야 아빠는 그것도 못 삼키냐고 화를 내셨다.

그러면 또 울면서 눈을 찔끔 감고 그것을 삼키느라 눈물 콧물 다 뽑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나도 약을 삼켜야 하는 그것이 너무 싫었었다.


그렇게 아이는 알약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연습을 하면서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

어른이 되어서는 알약을 잘 먹을 수 있게 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알약은, 특히 크기가 제법 되는 알약은, 혹시나 저것이 목구멍에 걸려 기도를 막고 숨을 못 쉬게 되어 질식하지 않게 될까 하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그런 두려움을 안고 약을 손바닥에 올려 입에 털어 넣고 적당한 양의 물을 마신 후 숨을 한 번 고르고 나서, 목을 뒤로 젖히면서 탁! 꿀꺽! 삼키는 동작으로 약을 위장으로 보내 버린다.

알약을 잘 먹게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알약은 그럭저럭 잘 먹게 되었지만,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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