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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Sep 21. 2023

겁 없는 초딩

우리 아들은 유치원 때까지 겁이 많은 아이였다.

유치원 친구들이랑 에버랜드에 가면 유아들이 타는 놀이 기구를 다른 아이들은 잘 타는데 우리 아이는 타지 않으려 했다.

하나도 무섭지 않은 회전목마나 코끼리 뺑뺑이 정도만 타고 마냥 뛰어놀기만 하다가 오곤 했었다.

입장료가 참 아까웠다.

처음 경험하는 것에 대한 불안지수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높다 보니 겁이 많아 보였다.

나는 원체 겁이 없는 스타일이라 그런 성향이 아빠를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우리 남편은 놀이 기구는 1도 못 타고 레이싱 카트만 타도 멀미를 하는 쫄보였기에 당연히 아빠를 닮아서 그럴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아이의 심리 발달 검사를 하면서 아이가 겁이 많아서라기보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 지수가 높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려 하고 그것대로 움직여서 불안을 낮추려 하는 성향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나의 성향이었다.

나는 불안을 느끼는 것이 싫어서 뭐든지 준비를 미리 하는 사람이다.

계획이 세워져 있고 그것에 따라 정리가 하나하나 되면 상당히 기분이 좋아진다.

반면, 뒤죽박죽이 되는 상황이 되면 내면에서 불안이 싹트면서 안정이 깨어진다.

그러면 나의 내면의 자기 체계에서는 불안을 유발하는 무질서의 상황들을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자 뇌 활동이 활발해지고 그것을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하는 활동들이 이어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 내면적으로 안정이 되는 상태, 평정심이 유지되는 상태를 찾아가게 된다.

인생사가 나의 예상과 예측대로 절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부터는 불안의 요소를 최소화시키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아들도 나랑 비슷하다.

숙제가 있으면 아무리 늦었더라도 꼭 하고 자야 한다.

아침에 준비물을 내가 깜빡하면 자기가 뭐가 빠진 것 같다면서 챙긴다.

장기간 여행을 갈 때마다 남편이나 내가 현관으로 나가도 남아서 집안 불이 꺼졌는지 문이 다 닫혔는지를 확인하고 나온다.

아이의 그런 꼼꼼함은 불안을 낮추려는 습관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그랬듯이.

이번에 친구네와 함께 체험학습을 쓰고 디스커버리 네이처 스케이프라는 곳을 다녀왔다.

실내에서 뛰고 달리고 매달리고 오르고 하는 놀이시설이다.

핸드폰 어플을 깔아서 QR코드를 읽으며 시설 곳곳에서 멸종 위기 동물을 찾아내고, 각각의 테마를 탐험할 때마다 포인트를 모아서 나중에 선물을 받는 시스템이었다.

남자아이들은 그런 활동을 참 좋아한다.

아이 둘이랑 엄마 둘이 함께 뛰어다니고 가는 곳마다 포인트를 얻기 위해 움직여야 하니 힘들기는 하지만 재미있었다.

체험 중에 키 120CM, 몸무게가 30kg 이상이어야 가능한 것이 있었다.

클라이밍이랑 번지였다.

두 아이는 조건을 충족하니 시켜보기로 했다.

아이 친구이자 내 친구 아들인 녀석이 겁이 많다고 했다.

처음에 안 하겠다고 했는데 우리 아들이 한다고 하니 같이 하겠다고 했다.

먼저 제법 높아 보이는 클라이밍을 하게 되었다.

안전 장비를 갖추고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몸이 비교적 가벼운 친구 아들은 금방 쭉쭉 올라가는데 무거운 우리 아들은 주저주저 못 올라가고 있었다.

스텝 누나가 손을 먼저 올려 잡고 다리를 하나씩 올리라고 설명을 해 줘도 중간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괜찮아. 천천히 포기하지 말고 올라가 봐! 할 수 있어!"

하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아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라가서 멋지게 휘리릭 내려왔다.

친구와 내가 잘했다고 멋졌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다음엔 번지를 했는데, 친구 아들이 무섭다고 우리 아들에게 먼저 뛰라고 했다.

우리 아들은 알았다고 하고 올라가더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번에 뛰어내렸다.

아래로 내려가 아들에게 무섭지 않았냐고 했더니 처음엔 조금 겁이 났는데 뛰니까 하나도 안 무서웠다며 재밌다고 했다.

우리는 박수를 치며 최고라고 해 주었다.

이제 아들은 그런 것에 두려움이 없는 초등생이 되었다.

아들은 겁이 많은 아이가 아니다.

단지 불안을 느끼는 것이 싫을 뿐이다.

그래서 나처럼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물론 살아가면서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 안절부절못하는 일이 많아지겠지만, 분명히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어떤 방법을 찾아가든 그것은 아들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지금처럼 힘을 낼 수 있게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꼭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이겨낼 힘이 생긴다.

두 아들은 세 시간을 뛰어놀고도 친구 집으로 가서 저녁까지 또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도 안 가고 친구랑 하루 종일 놀았으니 얼마나 좋았을까나.

학교에서 체험 학습도 못 가니 아이들 데리고 놀러 많이 다녀야 겠다.

일 년 중 가장 돌아다니기 좋은 가을이니까.

하늘만 봐도 좋은 가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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