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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Sep 15. 2023

가을에 커피가 맛있는 이유


오래된 가을 / 천양희



돌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나 본 적이 있는가

새벽 강에 나가 홀로 울어 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같이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바람 속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이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



확실히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새벽에 느껴지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오늘 아들도 일어나면서  "아, 춥네. 가을이네." 했다.

오늘 아침엔 비까지 내려 아이 등교를 시키면서 칠부 반바지에 반팔 티를 입히고, 얇은 바람막이 잠바를 덧입혀 보냈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지긋지긋했는데 가을은 무더위 너머 위로 부지런히 오고 있었나 보다.

세상에서 시간이란 놈이 제일 부지런하다더니 정말 그렇다.

어느덧 9월도 중간을 넘어가고 있다.

아침에 아이 등교를 시키고 집안일을 해 놓고, 라디오의 클래식 방송을 들으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을 사랑하고 있다.

하루 중 그 시간이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입학한 해,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인해 역류성 식도염이 생겼다.

처음엔 가슴이 너무 아파서 심장질환이나 심혈관질환인 줄 알고 여러 검사를 했었다.

결국 내시경을 통해 식도염인 걸 알아내고 꽤 오랜 시간 동안 약을 복용했다.

병원에서 하지 말라는 것은 다 하지 않았다.

좀 나아지는 가 싶다가도 또 그렇고 그러다가 조금 나아지고, 괜찮아졌나 싶다가도 또 아프고.

의사 선생님이 커피를 끊으라고 하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호 식품을 끊으라니.

커피를 끊고 나니 세상의 즐거움 반이 날아간 기분이었다.

한동안 너무 우울했다.

그렇게 2년을 커피를 끊었는데 여전히 식도염은 좋고 나쁘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어차피 낫지 않은 거 그냥 먹고 싶은 걸 먹자고!

커피를 하루 한 잔만 마시고 있다.

우리 동네에 작은 카페가 있는데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넣고 위에 쑥크림이나 바닐라크림, 옥수수크림을 얹어 주는 커피를 판다.

아침에 걸어서 카페에 가서 쑥크림 커피 한 잔과 갓 구운 스콘을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와 커피와 스콘을 먹고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가을이 되면서 커피 맛이 더 좋아졌다.

통상적으로 커피의 원두는 12-3월에 수확되어 7-8월에 한국에 상륙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적당한 숙성 기간을 거쳐 도착한 원두를 로스팅해 먹는 시기가 가을이 되는 거라서, 이 시기에 마시는 커피가 가장 맛있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어느 블로거의 글에서 본 적이 있다.

근데 그런 커피가 아닌 인스턴트커피도 이상하게 가을에 더 맛있는 이유는 뭘까.

기온이 내려가고 습도가 낮아지면서 커피의 향이 더 좋게 느껴지는 건가 

같은 물 온도여도 여름보다 주변 기온이 낮아지니 상대적으로 커피가 따뜻하게 느껴져서 더 좋게 느껴지나

혼자서 과학적인 접근?을 해 가며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냥 기분 탓인 거 같기도 하다.

가을이 되면 누구나 여름보다 정신이 맑아지고 더위에 사라졌던 감성이 되살아난다.

차분해지면서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무뎌졌던 감각이 살아나면서 커피의 맛이 더 강하게 느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유가 어쨌든 요즘 마시는 커피는 너무 맛있다.

어제 건강 검진이 있어 내시경을 하고 왔는데 별다른 이상 소견이 없다고 하셨다.

다만 식도염 증상은 여전하니 2주일 분의 약을 처방해 주셨다.

어차피 낫는 병이 아니라고, 잘 다스리면서 살아가라고 하셨다.

디스크, 식도염, 불안증...

내 인생에 완치는 없고, 잘 다스리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뭐든지 적당히, 균형을 유지하라고 이런 것들이 내게 온 거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균형이니까.

그래도 커피를 마시지 말란 소리는 안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행복.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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