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0일 토요일 이야기
토요일 하루를 돌아보며 글을 써 본다. 일종의 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일기를 잘 쓰는 편이 아니다. 내 일상을 누군가와 나누는 것에 나는 영 익숙하지 않다. 모두가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지만, 항상 여름방학 과제로 주어지는 그림일기는 개학 전날 몰아서 쓰는 몫이었다.
그 이후로 일기라는 것을 써 본 기억은... 언제쯤이었을까? 그나마도 벌써 10년 가까이 전이다. 내가 처음 회사에 들어가며 사회생활을 하던 시절의 일기다. 우리 회사는 사실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잘 모르는 종류의 회사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업무일지를 바탕으로 해서 이 회사에서의 경험을 책으로 써 보겠다, 이런 거대한 망상을 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습관이 되지 않았으니, 그게 제대로 될 리 있었겠나.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서야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은, 일종의 하루를 기록하는 시간을 남겨 보겠다는 생각이 문득 다시 들어서다.
특히, 글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으로서, 내 오늘 하루 글쓰기가 어땠는지를 돌아보는, 일종의 글쓰기 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일단 시작해 보자.
주말. 새벽 두 시에 자고 정오에 일어난다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유일한 날. 하지만 나는 그런 날인데도 새벽 두 시에 잠든 후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다. 고작 네 시간의 수면. 그런데도 뇌 속에서는 아드레날린이 치미는 느낌이다. 도저히 더 잠들 수 없을 게 뻔해 보였다.
커피를 한 잔 내렸다. 요즘의 루틴이다. 나는 아침 여섯 시 반 정도에 일어난다. 내가 출근 버스를 타는 것은 대략 오전 일곱 시 사십 분 정도. 1시간 10분 정도의 여유시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이 중 씻고, 그루밍을 하고, 옷을 골라 갖추는 등에 드는 시간은 못 잡아도 30분 정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40분 정도다.
그래서 나는 그 40분의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아침을 커피로 시작하는 것이다. 신혼 이후 창고에 박혀 있던 커피 머신을 꺼내고, 커피 캡슐을 구하고,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익혔다. 아직 간혹 빼먹기는 하지만, 이제는 일종의 아침 루틴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습관처럼 커피가 들어가고, 씁쓸한 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메우면서 카페인이 혈관을 돈다. 확실히 각성 상태에 접어든 나는 그때부터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내가 오늘 쓸 수 있는 글은 무엇이 될 것인가?
사실, 온전히 글에 쏟을 시간은 많지 않다. 퇴근하고 나면 거의 여덟 시에 가깝고, 요즘 감량을 위해 저녁을 간략하게 오트밀이나 시리얼 등으로 대체하고 있는 덕분에 그나마 시간이 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정해놓고 있는 7천 자를 온전히 채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 7천 자로 정했던 소설 작업은 거의 진도를 빼지 못하는 채다. 그 대신, 나는 브런치를 연다. 브런치스토리에 최소한 하루에 한 개의 글은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게 내가 요즘 세운 결심이다. 커피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글을 연다.
지난밤 썼다가 불금에 무슨 글을 내냐며 발행을 취소했던 글이 화면에 뜬다. 나는 화면에 뜬 글을 검토하고, 오타를 검수한다.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걸 아침 여섯 시에 낸다고 해서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브런치에서 며칠 전 본 글이 떠오른다. 토요일 오전 일곱 시에 정기적으로 글을 올릴 때마다 구독자가 줄어든다고 했다. 내 구독자는 거기 비하면 비길 것도 못 되지만, 그래도 그 기억은 남은 채다. 나는 이따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난 이후를 생각하며 다시 글을 닫는다.
이번에는 글을 쓰는 데 있어 맞춤법의 중요성에 대한 글이었다. 솔직히, 네 편째의 글인데도 아직 마음에 차지 않는다. 맞춤법에 대한 피상적인 수준의 언급만 이어간 것 같다. 마음에 차지 않지만, 일단 내어 놓는다.
그리고 커뮤니티를 한 바퀴 돈다. 인어공주 논란은 아직도 커뮤니티를 가득 메운다. 나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지만, 머릿속에서 완전히 정리가 된 바가 없다. 간략하게, 내가 무엇을 쓸 것인지 다시 결심한다. 이번에는 할리 베일리와 인종차별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오후, 배우자는 친구의 집들이를 향한다. 내가 글을 쓸 조용할 시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대신, 내가 시작하는 것은 집안일이다. 빨래를 넣고 돌린다. 물에 젖은 빨래를 보며 인어공주의 레게 머리 논란이 떠오른다. 그래, 이걸 한 꼭지로 추가해 밀어 넣기로 결심한다.
대략 세 개의 꼭지, 그리고 마지막 결론을 정한다. 그게 브런치의 호흡일 것 같으니까. 나는 집안일을 대략 마치고 나서 할리 베일리에 대한 글을 모두 쓰고 어디로 내보낼지 고민하다 사회란으로 보낸다. 브런치의 주류 코너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거기가 제일 맞을 것 같으니까.
이렇게 해서 토요일의 글은 총 두 편이 되었다. 내일은 다시 무엇을 쓸 것인지, 고민된다. 그리고 떠오른다. 내 글쓰기를 일종의 일기처럼 정리해 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
오늘 글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카페인으로 인한 각성 속에 대강 검토를 마쳤던 첫 글은 더욱 그렇다. 할리 베일리에 대한 글도 영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아침의 커피처럼, 내게 글쓰기는 이제 루틴이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일단 쓴다. 쓰고, 내가 작정한 분량이 되면 내보낸다. 이것이 나의 글쓰기 루틴이다.
이게 루틴이 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루에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무조건 원고를 몇 장 이상 작업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래야 할 것 같다. 회사에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중이니, 점심을 빠르게 먹고, 그 시간을 글쓰기에 돌려도 좋을 것 같다.
기억하자. 루틴. 만들기 어렵지만, 루틴이 한 번 잡히면 그 루틴만 따라가도 글을 계속 연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