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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레드넛 Jul 04. 2023

글 쓰는 하루 보내세요 23일 : 복귀

2023년 7월 3일 월요일 이야기

피곤하다. 원했던 것이건 아니건 나는 2박 3일의 출장을 다녀왔고, 주말 모두 온전히 쉬지 못한 채 일을 해야 했다. 정말 피곤하다. 그런 상태로 월요일에 복귀했는데, 우리 팀의 팀장님은 사정이 생겨 연차를 쓴 상태다. 내가 사실상 부팀장으로서 팀장 대행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행히 싹싹하고 눈치 빠른 막내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의 부담을 꽤 덜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팀장 대행으로서 결정을 내려야 할 일들, 진행해야 할 일들, 들어가야 할 회의가 있다. 이 모든 것을 마치고 나니, 정말 기진맥진해서 쓰러질 지경이 된다.


중간에 전날 쓰지 못한 일기를 겸해 글을 썼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사치로 느껴질 지경이다. 사실, 오늘은 글에 손조차 대지 못한 채 이것 해라, 저것 해라, 그것 처리해라 하는 식에 머물러야 했다. 깊은 피로감에 깨물린 기분이다.


주말이었던 2일 오후를 꼬박 바쳐 작업한 기획안은 우리 부서장님 손에서 하나하나 분해되고 찢겨 사실상 새것이 된다. 내가 작업한 흔적은 일부 어휘와 문장에서 남을 뿐이다. 순간 자신감이 파삭 소리를 내며 부스러지는 느낌이다. 내가 꽤나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모자라다는 사실만 드러난 느낌이 된다. 


심지어, 내가 오전에 저지른 실수를 당연히 하지 않았을 실수라 여기며 후배를 책망하다 나의 실수임을 발견하기까지 한다. 정말 최악이다. 며칠 일에서 손을 놨다고 해서 아주 망가진 것 같다. 그렇게 최악의 기분 속에서 하루를 마무리지어간다. 






그리고 입사 동기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는 나보다 먼저 결혼했고, 아이 두 명의 아버지다. 육아휴직이라는 과감한 선택으로 직장을 잠시 떠났다 돌아와 이번에 나와 함께 승진을 한 동기다. 주변 사람들의 신망도 깊고, 나와 다르게 외향적인 면이 있어 사람들은 그 동기를 따른다. 혼자 일하는 것을 즐기는 전형적인 외로운 늑대 스타일인 나와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그 동기의 한 마디 덕분에 의기소침했던 기분이 다시 회복된다.


"나였다면 네가 지금까지 겪어 온 부서들을 버티지 못했을 거야. 너도 참 대단하다."


그래, 다시 자신감을 찾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저 간단한 말 한마디 덕분에 내가 자신을 되찾는다. 그래, 나는 이것보다 더한 질곡도 다 헤쳐내고 여기까지 왔다. 한 번의 실수는 한 번의 실수일 뿐이지, 그게 앞으로 나를 계속 붙들고 있게 둘 수는 없다.


다시 기운을 내고, 내 원래 루틴을 찾아 움직인다. 기획안을 준비할 시간이다. 최종 기획안의 컨펌이 마쳐진 늦은 저녁, 나는 메신저 창을 두근거리며 연다.


내가 설계한 방향의 기획안이 일부 문구와 단어가 수정된 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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