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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거북이 Feb 28. 2020

화내지 않는 엄마가 정말 좋은 엄마일까?

나의 기억에 엄마는 화를 거의 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빠가 작은 일에도 짜증과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이다 보니, 엄마가 화를 내지 않는 게 꽤 편안하게 느껴졌다. 크게 소리도 지르지 않았고, 동생과 싸운다고 혼을 내지도 않고 체벌도 잘하지 않았다. 지금껏 기억 속엔 '화내지 않아 좋은 엄마'로 자리 잡았다.


나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 과거 엄마의 모습들이 불현듯 떠오르며 나의 모습과 비교가 되기도 하고 겹쳐지기도 한다. 우리 집 아이만 그런 건지... 애들은 항상 밤에 자려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꼭 아쉬운 게 생기나 보다. '엄마, 물 먹고 싶어.' '엄마, 쉬 마려워.' '엄마, 다리가 간지러워.' 그때마다 속에서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때로는 흔쾌히 물을 떠다 주기도 하고, 화장실도 같이 따라가 주고, 가려운 부분에 연고도 발라주곤 한다. 그러나 지치고 힘들 땐 짜증 나는 목소리로 '엄마 귀찮아. 못 일어나.' '네가 혼자 다녀와.'라고 하기도 한다.


내가 6살쯤이었나...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다. 그 당시 나는 한동안 새벽에 울면서 목마르다고 물을 달라고 하면서 잠을 깨곤 했다. 거의 매일. 그때마다 엄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을 한잔 떠주었고, 나는 물을 마시고 바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는 몇 달간 매일매일 새벽에 물을 떠다 주면서 짜증을 단 한 번도 낸 적이 없었다. 와, 얼마나 대단한가! 엄마 본인도 한창 잠에 빠져 있을 시간에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매일 물을 떠다 주는 것이 얼마나 번거롭고 귀찮은 일인가! 그런데도 짜증 한번 내질 않았다.


요즘 육아를 하면서 화내지 않기의 기준에 보자면, 우리 엄마는 최고의 엄마이다. 새벽에 자다 깨서 물을 달라고 매일매일 울어도 그걸 다 받아주고 해주는 엄마. 나라면 절대 그렇게 못할 걸 해 내는 멋진 엄마. 하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어쩌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개월을 짜증 한번 안 낼 수 있지? 그리고 몇 달간 울면서 물을 달라고 하면 아이가 어디 아픈지 걱정이 되진 않았을까? 과연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니 흔히들 저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마냥 '화 안 내는 좋은 엄마'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엄마는 '화 안내는 감정이 둔한 엄마'였다. 둔감한 엄마... 그래서 엄마는 몇 개월 동안 화도 내지 않았고, 아이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어디 아픈 곳이 있어서 저러는지 고민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새벽마다 물을 한잔씩 건네줬을 뿐이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니 더 이상 울면서 물을 달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지나게 되었다.


화가 날만한 상황인데 화가 나지 않는 것, 혹은 화를 내지 않는 건 보기에 좋아 보일 수 있어도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반응은 아니다. 게다가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서 충분히 화가 날만한 일에도 화를 내지 않거나,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감정 인식하게 된다. 즉, 기분이 나쁠 법한 상황에도 자기감정이 뭔지도 모르고 감정을 잘 느끼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껏 자라오면서, 엄마와 나와의 관계에서는 이런 걸로는 전혀 화를 내지도 짜증을 내지도 않았고 그냥 넘어갔기 때문에. 이렇게 정서의 둔감성이 학습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냥 화를 내지 않고 참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고 생각진 않는다. 희로애락과 같은 보통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아이들도 집에서 경험하고 겪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렇게 행동했을 때 엄마와 아빠가 좋아했고, 화를 냈고, 슬퍼했고, 싫어했다.'는 것을 아이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아이도 총천연색의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니까. 그래서 오늘 내가 아이와 트러블이 있었다고 해서, 화를 냈다고 해서 너무 좌절하지 말자. 아이는 그런 경험을 하면서 감정의 힘을 키우고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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