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함께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2반 전하영에게
"외교관 하영이"
중학 시절 엄마의 핸드폰에 저장된 네 카톡 이름이야. 너를 향한 엄마의 사랑과 기대가 그대로 담긴 이름이지. 반가워 외교관 하영아. 국제 구호 활동가가 되고 싶었던 하영아! 꿈을 위해 노력하며 세계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내딛던 하영아! 너는 공기 들이마시듯, 깃털처럼 가볍고 새처럼 자유롭게 춤추는 사람! 플래시몹 동아리와 파워댄스부를 이끌며 춤추던 하영아! 너는 틀림없이 '작은 새 너른 날갯짓'으로 세계적인 구호 활동가가 되었을 거야!
너는 꿈을 위해 외대 외교 통상학과에 진학하고자 했지. 고1 겨울 방학에 외대 '외교 통상 스쿨' 다닌 이야기는 들을수록 감동이었어. 2주에 50만 원이라는 적잖은 비용을 엄마는 흔쾌히 대 주셨더구나. 엄마는 중학교 때부터 너를 외교관이라 부를 정도로 네 꿈을 열렬히 지지하셨으니까. 혼자 너와 동생을 키우시며 큰딸인 너를 친구처럼 의지하셨지. 우리나라와 세계를 품는 너른 날갯짓으로 날고 싶은 엄마와 딸이었구나.
네 가슴에 돌을 던지고 파문을 일으킨 책이 인상적이었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갈라파고스, 2007)를 읽고 너는 분노 같은 감정을 느꼈다지? 이 세계의 굶주리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구나. 아~ 하영아! 너는 내 가슴에 그렇게 훅 들어와 버렸어. 그건, 나와 같은 책을 읽고, 같은 느낌을 나눈 사람을 만난 기쁨이었어. 게다가 춤 좋아하는 것까지 우린 같았어. 우리 마주보고 춤추며 책 수다 떨자꾸나, 하영아!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는 2000년부터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 조사관으로 활동하는 사람이지. 기아 실태와 그 배후의 원인들, 이러면 참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로 들리잖아? 그런데 그는 대화 형식으로 알기 쉽게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지? 술술 읽혔어, 그치? 이 분야에 무관심하고 잘 모르던 우리도 마음을 열게 해 주었잖아. 게다가 하영이에게는 국제 구호 활동가의 꿈을 심어 준 고마운 책이더구나.
저자가 가진 문제의식은 어찌 보면 참 단순한데 현실은 왜 이리 복잡할까? 생각해 봐.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 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다잖아. 프랑스 곡물 생산만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대. 세상에! 믿을 수 없었어. 그럼 전 세계 식량 생산량을 생각하면 식량과잉 시대라는 말이 이해되겠지? 그런데 어떻게 이 세상에 하루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어서 죽을 수 있냐 이거야. 말이 안 되잖아?
다국적 기업과 강대국 위주로 돌아가는 냉엄한 시장 질서가 문제라잖아. 국제적인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이 참 설득력 있게 들렸지? 그것에 앞서 인간의 의식 변화가 절실하다는 것도 공감했지. 하영아,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가 인간이라는데, 정말일까? 너무나 모순되고 절망적인 세계 시장 질서를 생각하면 과연 그럴까 싶다가도, 이 문제를 공감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희망을 보게 되는구나.
하영아, 이 대목 기억하지? 국제구호활동가 하영이를 그려보며 미소를 짓게 하는 대목이야.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희망은 서서히 변화하는 공공의식에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천만 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수억 명이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로,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현재는 그 주범이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경제질서라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22쪽
사람들의 공공의식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불합리한 세계경제질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대. 저자는 바로 거기에 희망이 있대. 나는 어떻게 읽히는 줄 알아? 바로 거기 하영이가 있었다. 하영이가 바로 변화하는 공공의식의 증거였으니까. 세계경제질서의 문제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하영이였지. 넌 국제 구호활동가가 됐을 거야. 틀림없이 이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경제질서에 균열을 내며 사람을 살리는 삶을 살았을 거야.
외교관 하영아!
책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 현실과 왜 이리 겹쳐 보일까?
왜? 단순한 문제의식인데 현실은 이리도 복잡하고 지리멸렬하냔 말이야. 왜?가 자꾸 말을 걸어 오지? 하영이도 왜?라고 묻고 싶었다고? 응, 그래 그래. 왜? 왜? 왜 희망을 말하지 않느냐고? 왜 희망을 말하냐고? 그래, 하영아, 물어야 해. 나도 계속 묻고 있어. 왜 이리도 진전이 없는 걸까? 왜 우린 달라지지 않는 걸까? 우리도 공공의식이 변하고 있는 거지? 더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더 명확히 인식하는 거지? 더 많은 사람들이 왜?라 묻고 있는 거지?
왜 7주기가 다가오는데 진상 규명은 안 되는가? 왜 청와대는 우리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는가? 왜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나서지 않는가? 왜 7주기가 되도록 시간을 끌어야 했는가? 왜 우리는 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가? 왜 해경 수뇌부 9명은 무죄판결을 받았는가? 왜 해경은 그날 구조하지 않았는가? 왜 그날의 전원 구조는 '계획된 오보'인가? 왜 박근혜는 7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가? 왜 우리는 지금 다시 촛불을 들 수밖에 없는가?......
하영아! 정말 미안해. 네가 너무너무 그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