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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Mar 20. 2021

말할래? 들을래? 쓸래? 읽을래?

토론, 아이도 어른도 말하기를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아이엠우먼> 영화토론을 두 번 째 진행했다.

안산 여성단체 '함께 크는 여성 울림'의

회원 12명이 줌 화상채팅으로 참여했다.

안산 여노 '이프'에서 이미 토론한 영화지만

역시 여성영화는 두 번은 토론해야 맛이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듣는 재미였다.

내가 토론진행을 참 즐기는구나,

말하고 듣는 맛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옛날과 달라진 아이들 국어 교과서 이야기다.

'국어'라는 과목명이 없어진 걸 첨 알게 된 때였다.

'말하기 듣기 쓰기'와 '읽기'로 책이 두 권이었다.

과목명이 달라졌구나,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말하기 듣기 쓰기, 그리고 읽기. 참 중요하니까.

책을 참 잘 만들었구나 감탄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교과서만 잘 만들어 놓으면 뭐 하나.

학교 현실을 알게 될수록 안타까움이 있었다.

교과서 만드는 사람 따로, 가르치는 학교 따로.

읽고 말하는 데 교과서는 활용되지 못했다.

말하는 시간은 없고 답을 쓰게 하는 식이었다.

말하기 하라고 만들어놓은 좋은 교재가 있지만

그렇게 말하기를 배워 본 선생님이 과연 있을까?

배운 적 없고 훈련되지 않은 말하기였던 것이다.

말하기가 없는데 듣기가 되며 쓰기가 됐을까?

읽기란 또 무엇인가?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http://bit.ly/ZBWq2



벌써 20년이 돼 가는 내 글을 하나 가져와 봤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말하기'에 힘쓰는 엄마였다.

뭐든, 지지굴굴, 재잘재잘, 웃고 놀고 떠드는 아이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내가 그렇게 못 누리고 살아서 그랬을 것이다.

아이들 문자 교육은 초등 입학 전에야 했다.

그러니 조기 교육도 사교육도 없는 우리 집에서

아이들은 말하고 듣고 또 말하고 노는 게 전부였다.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것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내 생각과 의견이 어떠냐고 물어주는 이 드물었다.

자기 목소리 내지 않으면 칭찬받는 문화였으니까.

내 진짜 의견을 말하려면 나는 가슴부터 벌렁거리고

상대가 날 판단할까 봐 주눅들고 할 말을 계산했다.

생각은 속에 갇혀 있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내 아이들이 그렇게 살게 된다 상상하면 끔찍했다.

자기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도록 지지하고 싶었다.

돌아볼수록 그거 하나는 내가 참 잘한 일이었다.





내가 왜 토론을 즐길까, 장황하게 늘어놔 봤다.

우선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충만해지니까.

말하고 싶은 사람이 말하는 걸 보는 즐거움이니까.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촉진하는 게 좋으니까.

<아이엠우먼> 영화의 메시지도 알고 보면

페미니즘 반대 진영 때문에 더 잘 드러났다.

양성평등법 개헌을 막아서 기쁘다는 여성이 있었고

그걸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래서 각각 말해야 드러날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말할래? 들을래? 쓸래? 읽을래?

상대가 듣기 좋으라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진 말자.

내 주장만 하면 세상이 어지러울까 겁내지 말자.

뒤섞이는 목소리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혼선처럼 보여도 그게 말하기요 듣기요 토론이다.

모두 같은 소리만 하고 같은 생각만 하면

그게 바로 지독한 혼선이고 진짜 두려워할 일이다.

우린 하나의 소리에 심하게 길들어 있었을 뿐이다.

아이도 어른도 말하기를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혼선


전영미(1978~ )



돌은 돌의 말을 하고

나무는 나무의 말을 하고

바람은 바람의 말을 한다.

당신은 당신의 말만 하고

나는 내 말만 한다


한데 뒤섞여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당신을 향하던 내 말은

당신에게 가기도 전에 뒤섞이고 만다


서로의 말은

한 번도 서로의 말인 적이 없다


당신의 말은 당신의 것


우리는

영원히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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